집요한 성실함으로 하루 한 칸씩… 광대한 화면 채워가다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2023. 4. 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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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낯섦’에 다가가기 위해 장치 마련
서사·형태적 연결된 회화 연작 선보여
한 칸에 하루 분배하며 오늘의 회화 수행
부분이 이어져 전체의 풍경으로 다가와
불완전한 경계들 매일 경험하는 삶 닮아
단칸 이미지는 기억 담은 아날로그 픽셀
탈각된 기억처럼 드문드문 여백 생겨나
아쉬운 부재 아닌 쉬어감 허락하는 포용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를 기웃대는 말간 하늘빛, 풀숲 무성한 틈새마다 조용히 나부끼는 모래알, 흙 내음.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란 좀처럼 지루할 틈 없는 놀이이다. 비단 시각 경험뿐 아닌 무수한 감각과 정서, 생각이 동원되는 바라봄에 관한 이야기다. 관점을 달리할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어떠한 규모의 세상도 한눈에 지각되지 않는 법이라서 그렇다. 시야에 담기는 세상은 늘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제한된 해상도의 이미지로서.
‘2월부터 11월까지’(2022) 이미솔 제공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러한 바라봄을 화폭 위에 다시금 펼쳐 놓는 행위이다. 그리는 이에 의하여 경험된 감각의 채도와 정서의 명도, 기억의 밀도가 붓끝에 묻어난다. 겪어본 시야와 익숙한 관점에 안주하는 순간 그림은 쉽게 지루해진다. 처음의 낯섦을 대면하고자 한다면 보기의 태도와 그리기의 습관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생경하게 바라보고 끈질기게 그려내기 위하여, 이미솔(30)은 나름의 규칙을 고안했다. 작업의 지속을 위한 자신과의 약속이자 일상의 삶과 회화를 연동시키고자 마련한 장치이기도 하다. 2020년에는 ‘꼬리 무는 그림’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서사적, 형태적 연결고리를 지닌 소품 회화를 연이어 제작했다. 2021년부터는 ‘근면성실장치’라고 이름 붙인 회화 연작을 선보이고 있다. 후자의 근작은 전체의 화면을 격자무늬 구획으로 나눈 뒤 하루 한 칸씩 그림을 채워가는 방법으로 완성된다. 소박하지만 집요한 성실함으로, 광대한 화면을 촘촘히 잠식해 나아가는 일이다.

이미솔은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서양화전공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에이라운지(2022), 예술공간 서:로(2020), 가창창작스튜디오(2020) 등에서 개인전을 선보였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대구문화재단 가창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선정된 이력이 있으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올해 10월에 을지로 소재 전시공간 ‘상업화랑’에서 개인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2022년 3월’(2022)
◆한 칸의 하루, 더할 나위 없는

화면을 매일의 구획으로 나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2022년 3월’(2022)은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에 수직 수평의 선을 그어 30개의 작은 부분들로 나누어 작업한 회화다. 한 달의 시간을 한 칸의 하루로 분배하여, 어제를 의식하고 내일을 상상하면서 오늘의 회화를 수행하는 일이다. 시선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나아간다. 처음과 끝이 명확한 시간의 테두리 안에서 작은 날들을 섬세하게 감각하는 과정이다.

한편 ‘2월부터 11월까지’(2022)는 총 100개의 소형 캔버스를 나열하여 구성한 작업이다. 부분의 집합이 전체의 풍경을 암시한다. 날마다 대하는 화면이 서로 동떨어져 있다 보니 그날의 그리기에 보다 몰입하게 된다. 조금 더 긴 시간을 호흡하며 분리된 매일을 기록하는 일이다. 열 달의 시간, 백 일의 기록이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둔 채 어긋나듯 이어지며 하나의 환영을 만들어 낸다. 작가의 시간은 부분에서 전체로 흘러간다. 화면 간격마다 띄운 여백이 몇몇 순간들을 말 줄임표처럼 감추어 둔다.

날마다 같은 크기의 그림은 역설적으로 매일의 다름을 눈에 띄게 드러낸다. 하루에 한 칸씩 제한된 규칙이 도리어 우연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작업의 속도가 정해둔 일과에 늘 알맞게 떨어지지 않는 탓이다. 때로는 하루가 보통의 날보다 길어 평소보다 넘치도록 응시해야 한다. 유난히 짧게 지나간 어느 날 못다 채운 공백은 직관적 붓질로서 메워내기도 한다. 붓에 실린 감정의 동요가 시간을 가쁘게 밀어낸다. 한 달을 하루로 소분하거나, 하루씩 열 달을 손꼽아 쌓는 과정은 나날이 변화하는 주위의 색채를 보다 민감하게 감각하도록 이끈다. 이미솔의 하루는 손바닥만 한 규모로, 다만 매번 다른 채도와 질감으로 생동한다. 나뭇가지의 하루, 잎사귀의 하루, 쌓인 낙엽들의 하루가 저마다의 자리 위에 안착한다.
‘2022년 6월’(2022)
◆세상의 해상도를 조율하기

도심 가장자리에서 발견한 야생 식물들의 군집이 화면에 주로 등장한다. 이미솔은 근처의 산에 올라 자연을 만지고 바람을 맞은 습관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일상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적당히 낯선 들판의 일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2022년 3월’의 화면이 소재로 삼은 것은 빛바랜 수풀이다. 특별할 것 없는 대상의 30가지 면모를 꾸준히 탐구하는 시선은 때로 뒤편의 하늘을 향하고, 때로 전경의 꽃송이를 본다. 무던한 모양은 물감에 묻어두고 눈길 가는 요소는 더 또렷이 당겨온다.

주어진 장면을 어떠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얼마나 세밀하게 그릴 것인지 결정하는 일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세상의 해상도를 회화의 방식으로 조율하는 과정이다. 실재하는 장소의 원근은 회화의 화면 위에서 흐트러진다. 장면을 확대하여 들여다볼수록 하루는 길게 늘어진다. 미시세계를 탐험하는 시선은 같은 시간을 세밀하게 쪼개어 낸다. 축소하여 멀리 볼수록 그 하루는 간략해진다. 거시세계를 내다보는 관점은 관조적인 마음을 이끌어낸다. 온전히 관측할 수 없는 세상의 부분을 탐험하며, 시야의 조리개를 다채롭게 조절해가는 일이다.

이미솔의 아날로그 회화는 디지털 매체와의 긴밀한 협업하에 제작된다. 포토샵 등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후가공한 풍경 사진이 회화의 소재가 된다. 그는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오차들로부터 회화의 의미를 발견한다. 촬영 및 편집 중에 끼어드는 직관적 선택과 손으로 그리는 몸짓 가운데 일어나는 우연한 사고들이 보편적 풍경이 고유한 그림으로 탈바꿈하도록 한다. 이미지가 맞닿는 지점에서 형태와 색채는 완벽하게 연결되지 않으며 다소 어긋난 채다. 불완전한 경계 처리가 분절된 하루의 구획을 두드러지도록 한다.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그림 사이 관계는 삶 속에서 경험하는 매일의 모습과 다름없다.

◆아날로그 픽셀들과 비운 공백들

이미솔은 수평적으로 나열되는 매일의 병렬구조에 관심을 둔다. 개별적 하루의 밀도보다 반복된 하루들의 부피에 주목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피드 위에 차곡히 축적된 매일의 이미지가 하나의 격자무늬 정체성을 이루어내는 것처럼. 나열된 단칸의 이미지들은 마치 그의 기억을 구성하는 아날로그 픽셀들 같다. 조각조각 쌓여가는 기억의 한 지점을 포착한 장면 같기도 하다. 화면은 디지털 시대 한가운데서 회화라는 아날로그 매체를 고집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닮았다. 시야의 조리개를 조정하는 과정 속에서 하루는 매번 다른 그림이 된다. 날마다 다른 감도와 색온도로서 빼곡히 채색한 픽셀들 사이 비워둔 공백이 종종 보인다.

‘보스턴에서 온 풍경’(2021)은 24개의 개별 캔버스로 구성한 작품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가족이 매일 같은 장소를 촬영해 보내준 풍경 사진이 소재가 됐다.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장면의 모습을 여러 조각으로 분할하여 날마다 한 부분씩 그려 나갔다. 간혹 사진을 전달받지 못하는 날이면 그 하루의 자리를 비워두었다. 구멍 난 정보처럼, 탈각된 기억처럼 여백이 드문드문 생겨났다. ‘2022년 6월’(2022)은 날마다 변화하는 밤의 미묘한 색채를 포착하고자 30개 개별 캔버스로 구성한 작업이다. 마찬가지로 비워진 공백마다 설치 장소의 벽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장자리의 픽셀 다수가 소거되면서 전체의 화면은 정형화된 사각의 틀에서 벗어난다. 두 작품의 빈칸들은 비정형의 결과물을 유도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한편 하나의 캔버스 위에 구획을 나누어 그린 ‘2022년 3월’에서는 쉬어간 빈자리가 초벌의 붓 자국을 말갛게 드러낸다.

공백들이 유연한 숨을 쉰다. 아쉬운 부재라기보다 쉬어감을 허락하는 포용이다. 몇몇 하루를 미지의 괄호 속에 넣어둔 채 이튿날의 그리기가 지속된다. 못내 비좁은 한 칸의 여백이 때로 버겁도록 광활할지라도, 줄곧 머무르지 않으며 내일을 밟아가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란 그로써 의미 있는 유희이다. 하루와 하루 사이 이지러진 경계를 감각하면서, 불충분하기에 고유한 기억의 픽셀들을 모아 가면서. 매번 다른 진폭으로 생동하는 하루를 붙들고자 하는 회화는 그러한 바라봄을 위한 노력일 터다. 동시대의 마음으로 익숙한 재료를 쥐고, 매일의 끈질긴 그리기를 고민하는 여정의 한가운데서 말이다.

박미란 큐레이터·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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