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곳에 수도 둔 고구려와 고려… 미래 한국의 삼경제(三京制)는?[안영배의 웰빙풍수]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2023. 4. 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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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명당은 3수로 이뤄진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의 장군분.
고구려는 수도가 세 군데 있었다. 중국 당나라때 편찬된 ‘북사(北史)’는 고구려가 수도인 평양성 외에 국내성과 한성에도 별도로 도읍을 두었으며, 이를 삼경(三京)이라고 부른다고 기록했다. 또 고구려 왕은 한 수도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세 곳을 돌면서 나라를 다스렸다고도 했다.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자부하는 고려 역시 삼경제(三京制)를 따랐다. 고려 숙종(재위 1095~1105년) 때의 인물인 김위제는 ‘도선기’라는 예언서를 근거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려 땅에는 세 곳의 서울이 있습니다. 11, 12, 1, 2월에는 중경(中京·개성)에서 지내고 3, 4, 5, 6월은 남경(南京·한양)에서 지내며 7, 8, 9, 10월을 서경(西京·평양)에서 지내면 36개국이 와서 조공할 것입니다.”

고려 왕이 4개월마다 돌아가면서 세 곳 수도에 머물러야 나라가 융성해진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고려 숙종은 김위제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양에 남경 궁궐을 건설한 다음 때때로 머물기도 했다.

이러한 삼경제는 중국 역대 나라의 도읍체제와는 확연히 달랐다. 중국의 경우 주(周)나라 이후 수도를 두 곳에 두는 양경제(兩京制)를 주로 운영해왔다. 그래서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삼경제는 단군조선(고조선)의 삼한관경제(마한,진한,변한) 통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선조들은 왜 삼경제를 채택했을까. 이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그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동아시아 최고의 천문 관측 수준을 자랑했던 고구려 사람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고분벽화에 정밀하게 새겨 두었다. 이중 고구려 무용총(춤무덤), 각저총(씨름무덤)의 별자리 그림에는 북쪽 하늘의 북두칠성 옆에 ‘북극삼성(北極三星)’이라고 불리는 세 개의 별이 강조돼 있다.

북극삼성은 3개의 북극성을 가리킨다. 이는 지구 세차운동에 의해 북극성의 위치가 달라짐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이다. 현재는 작은곰자리의 폴라리스가 북극성이지만, 2000년 전인 기원 전후 시기에는 작은곰자리의 코카브가, 기원전 3000년 경에는 용자리의 알파별(투반)이 북극성이었다.

고구려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따르는 천손족(天孫族)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따라서 하늘의 뜻이 표현된 별자리를 매우 중요시했고,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는 3개의 북극성을 고분에 새겨 놓았던 것이다.

북극3성은 가운데 별이 북극대성으로 매우 밝은 2등성 별이다. 하늘의 최고 주재자인 태일신(太一神)이 상주한다고 하여 천제성(天帝星)으로 받들어진다. 북극대성 왼쪽의 별은 천제의 적자인 태자(太子)로 불리고, 그 오른쪽 별은 서자(庶子)라고 불린다. 고구려 사람들은 세 별을 ‘의도적으로’ 선으로 연결시켜 놓음으로써 서로 깊은 관계가 있음을 표시했다.

이러한 북극삼성은 지상에서 3개의 도읍으로 구현된다. 가운데 중심 별은 주도(主都)로 표현되고, 나머지 2개 별은 부도(副都)로 삼았다. 즉 고구려인들이 3곳의 수도를 운영한 것은 ‘하늘의 뜻’을 받든 것이었다.

자미원 기운 담긴 경복궁의 자미당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은 하늘의 자미원을 표방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북극3성 대신 하늘의 3원을 염두에 두었다. 3원은 북쪽 하늘에서 1년 내내 보이는 주극성(週極星)들을 자미원(紫微垣), 천시원(天市垣), 태미원(太微垣)의 3원(垣·담장)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다. 조선은 3원 중에서도 가장 으뜸 별자리인 자미원 기운을 한양 도성에 끌어들였다. 그 증거가 자미당(紫薇堂)이라는 건물이다. 경복궁 내 교태전과 자경전 사이에 있던 자미당은 세종대왕 당시 침소로 이용됐고, 고종 때는 왕과 신하가 정사를 논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자미당은 일제때 훼손된 이후 지금 한창 복원작업이 진행중이다.

이처럼 경복궁 일대가 자미원 권역이 됨으로써 서울 광진구 일대는 자연스럽게 천시원 영역, 은평구 일대는 태미원 영역으로 설정됐다. 조선 세조 때 지관인 문맹검의 천문풍수론에 이같은 내용이 자세히 언급돼 있다(조선왕조실록 참조).

그런데 천시원과 태미원에도 제좌(帝座·임금 자리) 등 통치자를 상징하는 제왕의 별이 하나씩 배치돼 있다. 이에 따라 조선왕조는 천시원의 낙천정(광진구 자양2동)과 태미원의 영서역(은평구 역촌동 일대)에 각각 별궁인 이궁(離宮)을 세우는 구상을 했다. 실제로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천시원 터에 별궁을 짓고 지내기도 했었다. 3경제 체제의 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와 고려의 삼경제나 조선의 3원체제 등은 사실상 풍수 원리이기도 하다. 원래 풍수는 하늘의 별 기운과 지상의 땅 기운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보아 ‘감여(堪輿)’라고 불렸다. 즉 하늘의 별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光)과 기(氣)가 지상에 내려옴으로써 비로소 명당의 기운인 정기(精氣)가 생긴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하늘의 이치를 알아야만 땅의 이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게 풍수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실제로 하늘의 3수 이치에 의해 지상에서 명당 터로 상징되는 진혈(眞穴) 역시 3개 혹은 3의 배수로 형성된다. 고려 이전 시기에 지어진 고찰이나 유적들을 보면 대체로 이런 3수 명당 혈의 구성 원리를 따라 배치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한반도는 서울과 평양이라는 2개의 수도가 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1394년 한양이 수도 기능을 한 이후 620여 년에 만에 통치권자의 집무실이 한양도성을 빠져나오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대통령의 집무 공간 이전을 두고 아직도 설왕설래하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수도의 변천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래 통일 한국이라는 거시적 시각으로 보자면 다시 삼경제의 부활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세종시와 계룡시를 포함한 범대전권이 주도(主都) 역할을 하면서, 서울과 평양 혹은 다른 도시들이 부도 역할을 하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서울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만도 아니다. 현재 땅의 수용 능력을 넘어선 서울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장기적으로 서울이 더 오래도록 발전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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