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확장억제 성과 논란…'말의 성찬'이 부른 후과

남승모 기자 2023. 4. 2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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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국빈 초청으로 이뤄진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워싱턴 정상회담이 끝났습니다. 시작 전부터 미국 기밀문건 유출과 우크라이나 무기 제공 가능성 언급 등 각종 논란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번 회담은 두 정상의 공동성명 채택 등 성과 발표 후에도 좀처럼 파장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논란의 중심은 양국 정부가 최고 성과로 내세운 새로운 확장억제 공약 '워싱턴 선언'입니다.
 

'정권 종말' 언급 이례적 천명에도 국내 분위기 싸늘


워싱턴 선언은 지금까지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일부로 다뤄온 확장억제 공약을 별도 선언으로 떼어내 발표할 만큼 양국이 공을 들인 결과물입니다. 핵심은 '한미 핵 협의 그룹' 신설입니다. 두 나라 차관보급 당국자들이 분기마다 만나 핵과 전략무기 운용에 대한 계획 등을 논의하는 기구로 정보 교환은 물론 미국의 핵 전력과 한국 재래 전력의 효율적 운용을 협의하고, 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훈련도 함께 하게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확장억제 강화와 그 실행 방안은 과거와 다른 것"이라며 "북핵에 대한 국민의 우려는 많이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측에서도 북한의 한국에 대한 모든 핵 공격은 즉각적이고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바이든 대통령 역시 회견을 통해 "북한이 미국이나 동맹·파트너들에게 핵 공격을 하는 건 용납 될 수 없으며 그렇게 한다면 그게 어떤 정권이 됐든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핵 사용권을 쥔 미국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정권 종말'을 직접 언급한 건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강한 의지를 천명한 거란 해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확장억제 공약을 가장 반겨야 할 국내 여론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한마디로 기존에 있던 확장억제 공약과 다른 게 뭐냐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얻은 것도 없이 오히려 미국이 원하는 자체 핵 개발 포기만 더 확실해 해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어떨까요? 지난해 9월 개최된 한미, 외교·국방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 내용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당시 한미 양측은 핵 우산 작동 과정에 우리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협의 내용을 체계화 해 정보공유, 전략자산 전개, 전략 대화 등 6개 분야로 나눠 구체적인 북핵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미국은 유사시 핵을 포함한 모든 능력을 동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워싱턴 선언에서는 "한미동맹은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이 가능하도록 협력하고, 한반도에서의 핵 억제 적용에 관한 연합 교육 및 훈련 활동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양 정상의 약속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한미동맹은 핵 유사시 기획에 대한 공동의 접근을 강화하기 위한 양국 간 새로운 범정부 도상 시뮬레이션을 도입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과 한국 국민들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가 항구적이고 철통 같으며, 북한의 한국에 대한 모든 핵 공격은 즉각적, 압도적, 결정적 대응에 직면할 것임을 재확인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는 핵을 포함한 미국 역량을 총동원하여 지원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라고 밝혔습니다.
 

워싱턴 선언…기존 확장억제와 뭐가 다른가


이번 워싱턴 선언의 표현이 보다 구체적이고 길긴 하지만 두 협의 결과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핵 정보 공유와 기획 등을 함께하고 유사시 핵을 포함한 미국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겠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사실상 거의 같은 내용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아무 성과가 없는 걸까요? 그렇진 않아 보입니다. 지난해 10월 정부 고위 관계자는 "확장 억제의 작동 프로세스에서 우리의 제도적 발언권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번 선언에서 신설하기로 한 '한미 핵 협의 그룹'은 우리 목소리를 미 핵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간 우리가 최우선 과제로 꼽았던 사항을 달성한 걸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 핵우산으로 불리던 확장억제가 미국의 선의에 기대 그냥 믿고 의지해야만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합의로 우리는 미국이 핵 전략이 어떻게 기획되고 운용되는지 같이 보고 의견도 내며 정보도 공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실효성이 얼마나 될지는 운영을 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개념상 전과는 달리진 겁니다. 윤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 때 "미국이 핵 자산에 대한 정보와 기획, 그에 대한 대응 실행을 누구와 함께 공유하고 의논한 적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확장억제 방안이고 그래서 더 강력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비록 나토처럼 직접 핵무기를 공유하는 건 아니지만 나토식 모델을 바탕으로 핵에 관한 정보와 전략, 기획을 함께하는 이른바 '한국형 확장억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국내 여론이 이토록 싸늘한 데는 그런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정상회담 며칠 전 미국 고위당국자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 당국자들과 대중의 기대, 그리고 확장억제 약속의 현실 모두를 충족할 수 있는 충분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강도높게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보도 이후 국내에서는 정상회담에서 이른바 '한국형 핵 공유'가 논의될 거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따라 한국에 핵을 재배치 하진 않더라도 유사시 우리 요청에 따라 즉각 배치하도록 할 수 있단 겁니다.

우리 정부 쪽에서는 핵 전개를 넘어 핵 보복을 명시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핵으로 보복 대응하는 방안을 문서화하는 안을 두고 한미가 막판 조율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간 미국이 약속했던 북한 핵 공격 시, 핵을 포함한 미국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정도를 넘어 '핵 공격에는 핵으로 보복'하겠다는, 한층 강한 메시지인 셈입니다. 한미 양측에서 나온 이런 발언들은 갈수록 높아지는 북한 도발에 불안해 하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한미가 내놓은 결과물은 이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미국 쪽에서는 '충분한 조치'가 있을 거라고 했지만 전략자산 배치가 좀 더 강화됐을 뿐 핵공유 같은 눈에 띄는 조치는 없었고, 우리 정부 쪽에서 추진 중이라던 핵 보복 명문화도 실제 선언문에는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정리하자면, 정상회담 결과에 자신감을 가졌던 한미 양국이 우리 국민의 기대치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를 지나치게 혹은 성급하게 이를 홍보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실질적으로 거둔 성과마저 묻히게 만든 셈입니다.

차라리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지키면서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전제 하에 최선의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발표 전까지 신중한 입장을 취했더라면, 양국 정상 차원에서 미국의 핵 전략에 우리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게 만든 '워싱턴 선언'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운 대목입니다. 한국 내 여론이 싸늘하게 돌아가면서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성과로 꼽았던 '한국 핵 개발 포기' 역시 장담하기는 어렵게 됐습니다. 물론 한국이 핵 무장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적어도 한국 내 핵 무장 여론은 얼마든지 다시 높아질 수 있습니다.

사실 핵 문제에서 애초 '충분한 조치'란 있을 수 없습니다. 프랑스는 나치 치하에서 파리를 해방시켜 준 미국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제재를 감수하면서까지 핵을 개발했습니다.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을 지낸 싱크탱크 스팀슨 센터의 북한 전문가 조엘 위트은 "(이번 워싱턴 선언이) 올바른 방향이지만 한국 정부와 한국군의 많은 관리는 그들이 (핵) 버튼에 손가락을 올릴 수 있을 때까지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고 수준이라는 나토식 핵공유를 포함해 어떤 확장억제도 최종 핵 사용 권한이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또 우리 쪽에서 추진했던 걸로 알려진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핵 보복 역시, 스스로 대응 선택지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핵 보유국들이 채택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핵이라 해도 규모와 사용 방법에 따라 대응을 달리할 필요가 있는 만큼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데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핵 보유국이 스스로를 옭아맬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핵공유" vs "핵공유 아니다"


하지만 논란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워싱턴 선언의 성과를 추가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논란이 터진 겁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워싱턴 선언 발표 후 현지 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은 이번에 미국 핵 운용에 대한 정보 공유와 공동계획 메커니즘을 마련했다"며 "우리 국민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언론들은 '사실상 핵공유' 발언에 주목했지만 미국의 반응은 사뭇 달랐습니다.


미 국부무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한국 특파원단과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는 워싱턴 선언을 '사실상 핵공유'라고 설명하는데 이런 설명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케이건 국장은 "그냥 매우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우리는 이 선언을 핵공유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케이건 국장이 '사실상의 핵공유라고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한 걸로 돼 있지만, 그의 답변에서 '사실상'(de facto)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 한국 정부와 입장이 다른 것이냐는 질문에 케이건 선임국장은 "그건 (입장이 다르다는 주장은) 반박하고 싶다. 우리는 한국 동료들과 폭넓은 논의를 했다. 우리 입장에서 우리가 '핵공유'라고 말할 때는 중대한 의미를 내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리 입장에서 핵공유에 대한 정의는 핵무기의 통제(control of weapons)와 관련됐는데 여기(워싱턴 선언)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점을 매우 매우 분명히 하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핵공유가 아니다'라는 발언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논란이 확산될 걸 우려한 듯 "이번 국빈 방문에서 나와야 할 매우 분명한 메시지는 미국과 한국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보조를 맞추고 단결됐다는 것이지 그런 부분(사실상 핵공유)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면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핵공유' 표현을 둘러싼 입장 차


위 문답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 당국자 발언을 확인하는 특파원들의 질문과 미 국무부의 답변 방향이 살짝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질문은 '사실상 핵공유가 맞느냐'이지만, 답은 '핵공유는 아니다'입니다. 이렇게 질문과 답에 차이가 생긴 이유는 '사실상 핵공유'처럼 운영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우리 측과 아무리 '사실상'이 붙었다고 해도 '핵공유'라는 말이 불러올 수 있는 외교적 파장을 우려해 그 말은 쓰지 않겠다는 국무부 사이의 입장 차 때문으로 보입니다.

따져 보면 김태효 1차장의 발언도 이번 선언이 핵공유가 아님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이라는 전제를 단 것 자체가 이를 방증합니다. 다시 말해, 김태효 1차장의 말이나 미 국무부의 답변이나 '핵공유는 아니다'라는 것이고, 다만 이번 선언에 따른 확장억제의 강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어떻게든 이번 확장억제가 강도 높은 것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김 차장은 "우리 국민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고, 그에 반해 미국은 강력한 확장억제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핵공유'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다고 말한 겁니다.

'사실상'을 붙였다고는 해도 굳이 '핵공유'라는 말을 넣어서 논란을 자초한 게 잘못이었는지, 아니면 '사실상 핵공유'라는 말에 집중해 물었던 게 지나친 것이었는지, 이에 대한 판단은 이번 확장억제 성과를 평가할 국민에게 달린 듯 보입니다. 다만, 일을 해놓고도 성급한 혹은 지나친 홍보로 그나마 얻은 성과마저 빛을 바라게 한 건 아닌지… 이제라도 한미 당국의 복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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