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휴가 가! 당신 없이도..."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3. 4.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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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

'노동의 가치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의 문제다.'

기자의 말이 아니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던 프로이센의 철학자이자 공산주의 사상가인 카를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서 '자본론(Das Kapital)' 1권 제1편 1장 상품편에서 상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오직 추상적 인간노동이며, 노동의 가치는 노동의 양(시간)에 의해 측정된다고 말했다.

이 말을 언뜻 들어보면 한 개인이 일하는 시간이 길면 투입된 노동의 양이 많을테니 그 상품의 가치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그 개인이 받아야 할 임금이 더 높아야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장시간 노동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를 부인한다. 그는 노동자가 게으르거나 숙련도가 낮을수록 상품을 생산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데 그렇다고 그 상품의 가치가 더 높아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단순히 직장에 출근해서 앉아 있는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시간은 ▷주어진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조건과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평균적 노동숙련도, 그리고 ▷평균적 노동강도에서 하나의 상품(가치)을 생산하는데 투입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노동의 가치를 예로 들면 경쟁자를 포함해 전체 시스템 내에서 남에게 뒤쳐지지 않을 정도의 숙련도와 노동강도로 스마트폰 하나를 만들어내는데 드는 그 시간이 곧 노동의 가치 기준이 되는 '노동시간(socially necessary labour time)'이다.

인천 송도의 한 식당에서 29일 음식 배달로봇이 종업원을 대신해 음식을 나르고 있다. 배달로봇은 52시간의 근로 시간 제한도 없고, 임금인상 요구도 하지 않는다.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인간의 노동을 로봇이 대신할 것으로 예상된다./사진=오동희 선임기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69시간 유연근로제'도 사실은 단순히 사원증으로 스피드게이트에 출근 도장을 찍은 후부터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쉽다. 모든 근로자의 상황이 다 달라 근로시간을 하나의 획으로 그어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상황에 맞지 않다.

특수한 상황에서 '최대 주 69시간'을 하되 전체 월이나 분기, 연간 근로 시간은 현재와 동일하게 하겠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지만, 장시간 근로라는 프레임과 부족한 논리의 함정에 빠졌다.

노동자 단체에선 '주69시간 장기간 근로'로 인한 문제를 지적한다. 지난해 4월 민주노총 산하 민주노동연구원의 '장시간 노동 실태와 유연근무제 도입 현황 분석결과 발표'가 그 예다.

민주노총은 OECD 통계국을 인용해 2020년 대한민국의 연간 노동시간이 1908시간으로 콜롬비아와 멕시코, 코스타리카에 이어서 장시간 노동 4위 국가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69시간'을 허용하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폐해가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의문점이 하나 있다.

같은 자료에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주간 노동시간은 2021년 4월에 38.8시간, 8월에 35.4시간이다. 주 52시간은 물론 주 40시간에도 못미친다. 최악의 장시간 노동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다.

주 40시간을 넘기지 않는데, 장기간 노동 4위라는 얘기의 함정은 '제도화된 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데 있다. 통상 15~24일의 연월차 휴가를 사용할 수 없는 '분위기'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휴가 대신 통상임금의 50%를 덧붙인 휴가근무수당을 원하는 근로자들도 다수 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주간 근무시간은 40시간을 밑도는데, 연간 근로시간은 1900시간에 달하는 문제가 생긴다. 재계에선 휴가만 제대로 써도 OECD 평균 근로시간을 밑돌 것이라고 얘기한다.

논란 와중에 "주 69시간 유연근로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MZ 세대 지인에게 물었다. 그는 "주변 대부분의 동료가 반대한다"며 "말이 유연근로제이지 주 69시간을 근무토록 하고 사실상 그 시간을 저축해 휴가를 갈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업력 30년에 매출 1조원이 조금 넘는 중견 기업 A 회장과의 최근 식사 자리에서 '주 69시간 유연근로제'에 대해 물었다.

그는 몇시간을 근무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집중해서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과거 전직원에게 '1개월 리프레시 휴가'를 실시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몇년 전 임원들부터 한달씩 휴가를 쓰라고 했다고 한다. 일의 성과는 앉아 있는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도에 비례한다는 그의 지론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임원들은 다양한 이유를 대면서 A 회장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 학원 때문에 휴가를 장기간 못쓴다"는 얘기부터 "고객들 때문이 쉬지 못한다"는 얘기까지 다양했다고 한다. 임원들이 휴가를 안가니 밑의 직원들도 휴가를 쓰는 게 눈치가 보여 안간다고 했다.

이 제도를 시행하려고 했던 A 회장의 의도는 두가지였다. 잘 쉬고 와서 효율적으로 일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첫번째였다. 그 다음은 사람 중심이 아닌 시스템 중심의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임원 한명이 없어도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었다고 한다.

"당신 없이도 회사 잘 돌아가니 걱정 마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심어주고 싶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1달간 자리를 비우면 자리가 없어질까봐 걱정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이유로 리프레시 휴가 신청을 주저했고 지금은 이 제도가 유야무야됐다고 한다.

기업의 목적은 생산성이 높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제품 생산에 투입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목적이지, 장시간 노동력을 투입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더욱이 평소 임금보다 50% 혹은 100%를 추가해야 하는 휴일 야간 연장 근무를 선호하는 기업가는 많지 않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시기가 곧 다가온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인간보다 생산성이 뛰어난 AI와 로봇들에게 일할 '시간'을 뺏길 지도 모른다. 그 때는 우리의 이런 시간 논쟁도 무의미해진다. 문제는 노동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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