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아래 토요타·BMW·테슬라, 말이 돼?…‘싼데 좋은차→비싸고 좋은차’ 주가도 납득할까 [신동윤의 나우,스톡]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애들 많고 짐 많아 봐. 월급쟁이는 결국 돌고 돌아 현대차나 기아 사게 돼 있어.”
최근 한 식사 자리에서 기자의 오랜 친구가 한 말입니다.
BMW 미니, 아우디, 인피니티. 대학생 시절부터 자가용이 있었던 이 친구가 기자의 기를 죽여가며 타고 다니던 자동차 브랜드들입니다. 그랬던 친구가 둘째 출산을 앞두고 제게 이런 말을 한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가격에 성능, 실내공간 등 이 정도 스펙 뽑아주는 브랜드가 없다”고요. 이 친구의 선택이 기아 카니발이라면 이유를 아시겠죠? 한정된 월급을 쪼개 첫째를 위한 ‘휴대용 유모차’에 둘째용 ‘디럭스 유모차’가 트렁크 속에 한꺼번에 들어가야 하는 차를 사야 하다 보니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기아에 대한 대화 속에는 이런 말도 꼭 따라붙습니다. “찻값 너무 올려. 현대차·기아 사면서 이렇게 돈을 줘야 해?”라고요. 수입차 프로모션을 잘 당기면(?) 가격 차이도 얼마 안 나는 상황까지 이르렀는데, 현대차·기아가 신차가 나올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차량 가격을 인상하는 게 맞냐는 거죠. 현대차·기아의 고민 지점은 여기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외국이라고 상황이 크게 달라 보이진 않습니다. 현대차·기아의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에 사는 지인도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차·기아는 ‘가성비’로 탄다”라고요. 제네시스의 경우엔 그나마 ‘좋은 차’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했다지만 말이죠.
이런 현대차·기아가 올해 1분기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특히나 고급차 브랜드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영업이익 규모나 영업이익률로 내로라는 글로벌 라이벌들을 꺾었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부분은 현대차·기아 ‘기적’의 주된 이유로 아직은 부족하다고 여겨졌던 ‘고부가가치 차량 판매 호조’가 꼽힌다는 점입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1분기에만 영업이익으로 각각 3조5926억원, 2조8740억원이란 성과를 거뒀습니다. 1년 전 같은 분기와 비교했을 때 각각 86.3%, 78.9%나 늘어난 수치죠. 두 회사의 1분기 영업이익을 더하면 무려 6조4666억원에 달합니다.
이 수치를 들고 글로벌 라이벌 완성차들과 비교해 볼까요? 지난 25일(현지시간) 발표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1분기 순이익은 23억9500만달러(약 3조2014억원)로 현대차·기아 영업이익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글로벌 완성차 1위 기업인 일본 토요타의 1분기 추정 영업이익 5조700억원보다도 1.3배에 이를 정도입니다.
영업이익률에서도 현대차·기아는 10.5%로 6.2%인 GM와 5.3%에 그친 토요타를 모두 가뿐히 제쳤습니다. 독일 대중 브랜드인 폭스바겐(7.3%)도 예외는 아녔죠.
여기서 놀라운 점은 고급 브랜드로 꼽히는 BMW(9.8%)보다도 영업이익률이 더 높았다는 점입니다.
기아만 떼내서 영업이익률을 살펴본 결과는 더 놀랍습니다. 12.1%란 영업이익률 그 자체만으로도 일반 완성차 업체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결과란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이런 데다 기아는 글로벌 주요 자동차 회사 중 최고 수준의 마진율로 유명한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11.4%)의 영업이익률까지도 앞지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최고급 차종을 판매해 높은 수익성을 자랑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지난해 영업이익률 13.6%도 그리 멀지 않은 수준이기도 합니다.
현대차-기아가 어떻게 이런 기적적인 결과를 얻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에 대해 증권가에선 이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고수익 차종’. 바로 고가 브랜드인 ‘제네시스’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D세그먼트 이상의 ‘비싼’ 차종에 대한 판매가 급증했다는 것입니다.
올해 1분기 현대차의 SUV·제네시스 합산 판매 비중은 55.5%로 절반이 넘는 수준입니다. 심지어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기아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이윤이 많이 남는 레저용차량(RV), D·E 세그먼트의 비중이 무려 72.7%에 이릅니다.
고가·고수익 차량에 대한 판매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연결 기준 자동차 평균판매가격(ASP)을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기적적인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기아의 올해 ASP는 3270만원으로 전년(2900만원) 대비 12.7%나 올랐습니다.
비싼 차를 팔면서도 인센티브를 최소화하는 ‘제값 받기 정책’이 성공적이라는 부분도 영업이익 증가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인센티브는 업계 최저 수준에서 유지 중입니다. 지난 1분기 기아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지급한 인센티브는 대당 598달러로 평균치(1250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기도 했고요.
이에 대해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가 이젠 딜러에게 따로 대규모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아도 팔릴 수 있는 브랜드 파워와 제품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현대차·기아를 이 돈 주고 어떻게 사?’란 시선을 받던 과거는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것이죠.
이 밖에도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올해 들어 거의 해소되면서 분기 판매량 신기록을 경신한 점, 원·달러 평균 환율이 1276원으로 전년 대비 5.9% 상승하며 원화가 약세를 보인 점도 수익성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주식 시장은 격하게 반겼습니다.
현대차 주가는 실적 발표가 있었던 지난 25일 20만원 선을 가뿐히 넘어섰습니다. 현대차 주가가 20만원 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9월 19일(20만1500원) 이후 7개월 만이었죠. 이후 현대차 주가는 27일 20만2000원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기아 주가 역시 지난 27일 8만6600원까지 올랐습니다. 조금 내려선 28일 종가(8만4500원) 기준으로 최근 한 달간 기아 주가는 무려 9.9%나 뛴 것이죠.
증권사 리서치센터들도 앞다퉈 목표 주가를 올려잡았습니다.
현대차에 대해 삼성증권은 기존 27만원에서 30만원으로, 하나증권은 23만5000원에서 27만원으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이런 흐름에 메리츠증권(28만→35만원), 유안타증권(24만→33만원), NH투자증권(25만→28만원), 교보증권(22만→27만원) 등이 가세했고요.
기아의 경우에도 키움증권(11만5000→12만5000원), 신한투자증권(10만5000→11만원), 하나증권(11만→12만원), 대신증권(12만5000→14만원), 메리츠증권(13만→14만원), 현대차증권(12만→13만원), IBK투자증권(10만→12만원), 유안타증권(11만→14만원), 신영증권(11만→13만원), NH투자증권(11만→12만원) 등 주요 증권사 대부분이 목표 주가를 서둘러 높였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올해 1분기의 성과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우선 현대차·기아는 2분기도 자신 있다고 합니다. 니켈·리튬 등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원자재 가격이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부분이 2분기 이후 본격적으로 반영된다면 실적 개선세가 더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지난 26일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낮아진 원자재 가격이 반영되면 재료비 부담이 줄면서 전기차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한 대응 전략이 이미 완성돼 있다는 점도 현대차·기아의 강점입니다. 현지 생산 전기차가 아니라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플릿(법인·렌터카·중고차 대상 판매), 리스(장기 임대) 차량을 늘려 대응하겠다는 것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플릿·리스 판매가 수익성이 낮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동안 쌓아 놓은 브랜드 파워와 제품력을 바탕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고 플릿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덕분인지, 2023년은 현대차·기아의 모그룹인 현대차그룹을 위한 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게시된 영업이익 전망치 컨센서스를 헤럴드경제가 분석했는데요.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 등의 선전으로 올 한 해 29조2219억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거두며 ‘영원한 1위’ 삼성그룹(22조4024억원)을 꺾고 왕좌에 오를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본다면, 현대차·기아는 전기차에 대한 수익성을 반드시 높여야만 하는 숙제를 받아 든 상태입니다. 실제로 미래 완성차 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보이는 전기차에 대한 수익성 향상은 현대차·기아가 장기간 호조세를 이어가기 위한 필수불가결적 조건이기 때문이죠.
이미 ‘가격 전쟁’은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 “가격 인하를 통한 시장점유율 확대”를 외치는 테슬라로부터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앞다퉈 전기차 가격을 내리며 경쟁에 뛰어드는 모양새이기도 하고요.
가격을 인하하면서도 한 대 당 나오는 이윤을 최대한 빨리 끌어올리는 것은 생존을 위한 미션이기도 한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임현진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전기차 대중화가 촉진되면 전체 시장 규모는 커지지만, 가격 경쟁 심화에 따른 마진 감소는 불가피할 것”이라며 “일부 전기차 스타트업은 존폐 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차·기아와 같은 완성차 업체들이 살아남는 것을 넘어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선 디자인, 브랜드 이미지, 안전성, 성능, 편의기능 등 비가격 경쟁요소에 집중하면서 품질 차별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이고요.
현재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기아가 거두고 있는 수익률은 어느 정도일까요? 글로벌 데이터 인포그래픽사(社) 비주얼 캐피탈리스트에 따르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의 평균 마진은 대당 927달러(약 124만원)로 6위에 올라 있습니다. 1위 테슬라(9574달러)의 10분의 1, 2위 GM(2150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죠. 현대차의 위로는 BYD(1150달러), 토요타(1197달러), 폭스바겐(973달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희망적인 것은 현대차의 전기차 마진율이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란 점입니다.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북미 지역 전기차 전용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2024년 3분기부터 가동하게 된다면, 현지 생산을 통해 마진율을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자용 현대차 IR담당 전무는 “과거 적자 구조였던 전기차 사업이 이제 이윤을 창출하는 구조로 완전히 정착했다”면서 “전기차 마진은 장기적으로 영업이익률 10%를 계획 중”이라고 자신하기도 했습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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