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만들자고요? 저 대학생인데요?[정상훈의 지방방송]
대학생들과 한 학기 동안 강연·토론 통해 법안 작성
현실적 한계 느끼기도···“지역 사회로도 확장되기를”
대전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민지 학생은 학기 초 학과 건물 복도를 지나가다 처음 보는 포스터를 발견하게 됩니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외모의 국회의원 사진과 그 옆에 적혀 있는 세 글자 ‘청.년.법’.
법학도로 평소 법과 정치에 관심이 있던 민지 학생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청년법이 기본법을 말하는 건지,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만들자는 건지도 궁금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과 함께 대학에 입학해 대외 프로젝트에 대한 갈망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강의실에는 키 184㎝의 아저씨가 수줍은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지난 2월15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는 긴장한 얼굴의 대학생 9명이 나타납니다. 그 가운데에는 민지 학생이 학기 초 만났던 184㎝의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입니다. 장 의원은 대전(동구)에서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1980년대 생이기도 합니다. SES가 익숙한 1983년생과 IVE(아이브)가 편한 Z세대의 만남입니다.
장 의원은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지난해 9월부터 충남대 정치외교학과 학생들과 ‘청년이 직접 만드는 청년법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6개월 동안 강연과 토론을 이어오며 의제를 찾고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지금껏 국회의원이 대학생 등 청년의 멘토 역할을 하거나 이들의 민원을 접수한 적은 있지만 법안 성안을 넘어 발의까지 이어진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자회견장에 온 대학생들은 본인들이 만든 ‘청년 3법’을 조심스럽게 소개했습니다. 공직선거법·주거기본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이었습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 시 청년 비율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청년의 정치참여 기회 확대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후보자 명부의 5의 배수가 되는 순위에 청년을 추천하도록 했습니다.
주거기본법 개정안은 최저주거기준 면적을 상향하고 주거종합대책에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지원 사항을 포함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습니다. 2011년에 개정된 최저주거기준(14㎡)을 20㎡로 상향하는 안입니다. 1인 가구 확대 등 인구구조 및 가구 특성의 변화를 반영했습니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통해선 미성년자 임산부도 출산과 양육에 어려움이 없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책을 마련하도록 했습니다.
청년들이 직접 문제의식을 느끼고 미래세대를 위한 해결과제를 제시하고자 만들어진 ‘청년 3법’은 지금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을까요. 이중 주거기본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공식적으로 국회 의안과에 제출돼 각각 소관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국회의원 10명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공동발의’ 조건을 채우지 못해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비례대표 후보자에 청년을 5배수마다 의무적으로 추천하도록 한다는 게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다른 세대 및 직군과의 형평성 문제도 감안해야 했습니다.
주거기본법과 모자보건법도 사실 언제 상임위 심사에 돌입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나마 모자보건법은 지난 3월 복지위 전체회의에 보고되는 단계까지는 올라왔습니다. 21대 국회 3년 동안 2만1090개(2023년 4월29일 기준)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이중 1만4775개는 여전히 심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년법 프로그램’ 1기에 참여한 안선민 학생(충남대 정외과 4학년)은 그럼에도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선민 학생은 “법안 발의 과정을 배우고 준비하다보니 사실 (모든 법이 다 통과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고 있었고, 직접 눈으로 체감도 했다”면서도 “현재 정치 지형에서는 청년들이 직접 바꿀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꾸준히 목소리를 내다보면 언젠가는 중요한 아젠다가 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습니다.
‘청년법 프로그램’ 2기 과정은 현재 충남대와 대전대 두 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입법부의 구성부터 운영, 청년들이 법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와 과정 등을 배웁니다. 월 1~2회 가량 열리는 강의는 장 의원과 장 의원실 보좌진들이 직접 진행합니다. 7월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방문도 예정돼 있습니다.
문득 이들이 만들고 싶은 법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민지 학생은 “동물보호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담은 법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다뤄보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역사와 게임을 좋아하는 박시형 학생(대전대 정외과 2학년)은 “불필요한 게임 관련 규제를 해소해 더 많은 콘텐츠들이 빛 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선민 학생은 이른바 ‘청년 정치인’들을 위한 조언도 남겼습니다. 선민 학생은 “노인은 만 65세 이상 같은 기준이 있지만 청년은 세대를 명확하게 찍기 어렵다.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며 “사실 대학생인 청년도 있고 아닌 청년도 있지 않느냐. 기준을 나이로 나누기보단 취업문제나 주거문제 등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다가가는 게 효율적이라고 본다”고 짚었습니다.
‘청년법 프로그램’을 기획한 장 의원은 “저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의원들이 꼭 청년이 아니어도 되니 일반 국민들과 정책적 아이디어를 나누고 법안으로 만드는 활동을 했으면 한다”고 바랐습니다. 홍영표 의원실 막내비서부터 시작해 보좌관을 거쳐 국회의원이 된 장 의원의 평소 철학이기도 합니다.
‘청년법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학생들에게도 한 마디 남겼습니다. 장 의원은 “학생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일종의 정치 과정을 이해하고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된다면 이후에 무슨 일을 하든지 보탬이 될 것”이라며 “함께 배우고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응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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