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가 흑인이 되는 것만이 정치적 올바름일까 [핫이슈]

이은아 기자(lea@mk.co.kr) 2023. 4. 2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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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어공주 [AP=연합뉴스]
5월 개봉 예정인 디즈니의 실사 영화 인어공주의 주인공은 빨간 머리와 흰 피부를 가졌던 애니매이션 속 주인공과는 다른 흑인이다. 6명의 인어공주 언니들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도 제각각이다. 다양성을 보여주는 좋은 시도라는 평가도 있지만, 어릴 적 봤던 만화영화의 주인공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돌아온 것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크다. 네티즌들은 SNS에서 ‘#notmyariel’이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디즈니를 비판하고 있다. 애니매이션 ‘뮬란’처럼 매력적인 다른 인종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면 되는데, 굳이 원작이 있는 캐릭터를 흑인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다. 일부 한국 팬들은 ‘심청이 역할에 백인 여배우를 캐스팅하면 한국인들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유튜브 예고 영상에는 ‘싫어요’가 ‘좋아요’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디즈니는 앞으로 공개될 피터팬, 백설공주 등의 실사영화에도 원작의 캐릭터와 다른 인종을 캐스팅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 등 영국 아동문학 거장 로알드 달의 작품들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수준에 맞춘 표현으로 수정돼 재출간된 것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남자들(men)’을 중성적 표현인 ‘사람들(people)’로 바꾸거나 ‘뚱뚱한(fat)’을 ‘거대한(enormous)’으로 대체하는 식인데, 시대에 맞는 표현이라며 반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문학 작품에 대한 지나친 검열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은 원래 인종, 성별,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이나 편견이 섞인 언어를 쓰지 말자는 정치 사회 운동인데,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것을 넘어 소수자 우대 정책으로 나아가면서 문화계를 흔들고 있다.

클레오파트라 7세 여왕을 흑인으로 묘사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 예고편이 공개되자 이집트 정부까지 나서 “명백한 역사적 오해”라며 반발하는 일도 벌어졌다.

미국 대학가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은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 학생회는 지난달 성폭행·자해·인종혐오 범죄 등을 포함한 일명 ‘트리거(trigger)’ 콘텐츠에 대해 경고 표시를 붙일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트리거 콘텐츠는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포함된 자료 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수업 교재로 쓰이는 소설에 성폭행 장면이 등장한다면, 이를 미리 경고할 것을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코넬대 총장은 표현의 자유에 반한다는 이유로 결의안 채택을 거부했다. 학생들이 어렵거나 도전적인 아이디어에 직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대학교육의 핵심인데 이를 접할 기회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학문과 탐구의 자유를 해진다는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도 정치적 올바름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챗GPT는 한 사용자가 ‘조 바이든의 긍정적인 측면을 시로 표현해달라’고 요청하자 ‘조 바이든, 진실한 마음을 가진 지도자, 공감력과 친절함을 품은 남자’로 시작되는 시를 지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같은 질문에는 “죄송합니다, 저는 오픈AI가 개발한 언어모델로 당파적이거나, 편향적이거나, 정치적인 콘텐츠는 생산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을 내놓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챗GPT의 편향적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챗GPT는)정치적 올바름을 말하거나, 혹은 진실하지 않은 것들을 말하도록 훈련되고 있다”며 ‘트루스GPT’를 직접 개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 미국 정치권에서 PC는 오랜 논쟁거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5년 대선 출마 선언 당시부터 엘리트층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인식을 거부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트럼프가 대신해준 것에 열광한 지지자들이 트럼프 현상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지난 2017년 미국의 케이토 연구소는 미국인의 4분의 3이 ‘정치적 올바름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토론을 침묵시켰다’고 생각한다는 통계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PC논쟁은 한국 사회에서도 점점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PC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PC는 부작용을 부를 수 있고, 성별이나 집단을 갈라치기 하려는 정치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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