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푸라기]'보험 문지기' 언더라이터의 세계

윤도진 2023. 4. 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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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 심사해 계약 승인하는 리스크관리자
'생보-KLU, 손보-보험심사역' 자격제도도

"아직 담배 피우시지만 곧 끊으실 거죠? 그러면 비흡연 란에 체크하세요. 그래야 계약 승인에 문제도 덜하고 보험료 할인도 받을 수 있다니까요. 이참에 담배 끊으시면 되죠." 

40대 직장인 Y씨가 얼마 전 암보험에 들면서 설계사에게 들었던 얘기랍니다. '영업 꼼수'가 비치는 일선 현장에서의 말이긴 한데요. 바꿔 말하면 흡연 여부만로도 보험사가 암보험 청약을 거절할 수도, 또 보험료를 비싸게 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죠.

보험은 '계약자의 청약'과 '보험사의 승인'이라는 두 단계를 반드시 밟아야 계약이 체결되고 효력이 발생합니다. 여기서 보험사의 심사 승인 과정을 언더라이팅(Underwriting)이라고 하죠. 과거 영국 한 보험사가 보험인수 서류에 아래(under)에 서명(wite)한 것에서 온 용어입니다.

/그래픽=비즈워치

보험사에서 언더라이팅 업무를 맡는 사람을 언더라이터(Underwritier)라고 하는데요. 보험업계에만 있는 직군이래요. 설계사가 '공격수'라면 언더라이터는 '수비수' 격입니다. 설계사가 청약을 끌어오면 언더라이터는 거르는 게 일이죠. 

어떤 사람을 거르냐고요? 예를 들어 앞서 나온 계약자이자 피보험자인 Y씨가 만약 호흡기 질환 이력이 있다면 그의 청약은 거절될 수 있습니다. 병력이 있는 데도 계속 흡연을 하고 있다면 건강 관리를 소홀히 한다는 의미고, 병이 재발할 확률도 높죠. A씨가 흡연을 밝혔다면 보험사는 병력 없는 비흡연자보다 그의 보험료를 높게 책정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언더라이팅이란 보험 계약 때 계약자가 작성한 청약서 상의 고지의무 내용이나 건강진단 결과, 실태 조사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보험계약의 인수 여부를 판단하는 최종 심사 과정을 말합니다. 최근엔 보험금을 목적으로 한 사기도 적잖은데요. 보험 가입에 악의적 요소는 없는지 가려내는 것 역시 언더라이터의 몫이죠.

인(人)보험의 경우 과거병력이나 현재의 건강상태, 직업, 운전여부에 재산 등을 따져볼 테고요. 자동차보험의 경우 과거 사고나 청구 이력, 과실비중 등이 주요 심사 기준이 됩니다. 화재보험이라면 건물의 자재나 소방시설 구비여부, 업종 등을 기본적으로 보죠.

보험료 할인·할증도 언더라이팅의 영역입니다. 건강한 사람과 고지혈증 환자의 암보험료가, 콘크리트 주택과 목조 건물 음식점의 화재보험료가 같을 순 없겠죠? 면책(일정기간 보장 제외)·부담보(보장 제외) 설정도 언더라이팅 결과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보험사의 언더라이팅이 꼼꼼해야 하는 이유요? 보험금 지급이 예상보다 많아지면 보험사 입장에서도 손해일 뿐 아니라 다른 계약자들에게도 보험료 인상이라는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만큼 언더라이팅에는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생보사 언더라이터 가운데는 간호사나 병원 의무기록사 출신도 적잖습니다. 

보험사기 적발금액 추이/그래픽=비즈워치

언더라이팅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자격제도도 있어요. 생보업계에는 생명보험협회가 주관하는 KLU(Korea Life Underwriter), 손보업계에는 보험연수원이 주관하는 보험심사역을 운영하고 관리하죠. KLU는 민간, 보험심사역은 국가공인 자격입니다.

생보업계는 2002년 '언더라이터 자격시험제도'를 도입했는데요. 기본 1단계 CKLU(Certificate of~) △의학 등 전문지식까지 갖췄음을 인증하는 2단계 AKLU(Associate of~) △전문지식+종합 의사결정력까지 갖춤을 인증하는 3단계 FKLU(Fellow of~)가 있습니다. 각 단계에 올라야 다음 응시 자격이 생기고요. FKLU는 필기시험 합격과 실무 3년의 경력이 요구됩니다.

손보업계는 2010년 보험심사역 자격제를 시작했습니다. 개인보험심사역(APIU, Associate Personal Insurance Underwiter)과 기업보험심사역(ACIU, ~Commercial~)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는데요. APIU는 자동차·상해·질병·간병 등, ACIU는 배상책임·해상·재산·화재 등을 담당합니다. 

보험사 언더라이터들은 업무 강도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고위험 계약의 경우 한 달에 1000건 안팎, 저위험 계약의 경우 2000건 이상 소화하는 경우가 많다네요. 여기에다 종종 불만을 터뜨리는 설계사들에게 거절을 납득시키는 일도 해야 하죠. 설계사야 보험 판매 영업이 최우선인 공격수들이니까요.

그래서 이 분야도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보험업계에서 인공지능(AI) 도입이 가장 빠르게 나타나고 있답니다. 첫 특허를 낸 교보생명(BARO)을 필두로 신한라이프(원더라이프), 한화손해보험(알파 언더라이팅), 미래에셋생명, ABL생명 등이 적극적인 곳들로 꼽힙니다.

생명보험협회 한 관계자는 "언더라이팅이 디지털화하면서 자동심사가 가능한 사안은 신속히 처리되고, 서류 제출과 정보 수집 때 계약자 편의성도 높아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보푸라기]는 알쏭달쏭 어려운 보험 용어나 보험 상품의 구조처럼 기사를 읽다가 보풀처럼 솟아오르는 궁금증 해소를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궁금했던 보험의 이모저모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편집자]

윤도진 (spoon50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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