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은 한국과 '핵공유'를 꺼려할까?

2023. 4. 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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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美 "워싱턴 선언, 사실상 핵 공유 아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우리 국민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다."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4월 27일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이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이 핵 자산에 대한 정보와 기획, 그에 대한 대응 실행을 누구와 함께 공유하고 의논한 적이 없다"며 "새로운 확장억제 방안이고 그래서 더 강력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냥 매우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우리가 워싱턴 선언을 사실상 핵공유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이 같은 날 한국 특파원단과의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는 워싱턴 선언을 사실상 핵공유라고 설명하는데 이런 설명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다. 윤석열 정부의 설명을 즉각 반박한 셈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 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 케이건은 왜 핵공유가 아니라고 말한 것일까? 공유는 어떤 물건을 같이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있을 때 성립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미국이 핵무기를 다른 나라와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통제는? 케이건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입장에서 핵공유에 대한 정의는 핵무기의 통제(control of weapons)와 관련됐는데 워싱턴 선언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이런 반문이 떠오를 수 있다. '미국은 나토 회원국들과 핵공유를 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도 나토식 핵공유를 한국과 맺지 않는 것은 한국을 중시하지 않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미국이 한국과 핵공유를 꺼려하는 이유와 관련해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거론한다. 하지만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다르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남북의 합의이고, 그래서 이 선언은 미국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를 포함한 핵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그럼 미국은 왜 한국과 핵공유를 마다하는 것일까? 나토와 한국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정전협정과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떠올리면 된다. 미국이 유럽의 나토 회원국에 핵무기를 배치한 시점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토 회원국들과의 협의를 거친 결과였다. 그 이후 12년간의 논의를 거쳐 '핵공유 협정(nuclear sharing arrangements)'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을 통해 나토 비핵 회원국들도 나토 차원의 핵정책과 기획에 참여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도 1950년대 후반부터 핵무기를 대거 배치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그 숫자가 1천개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그런데 왜 미국은 한국과 핵공유 협정을 체결하지 않았을까? 정전협정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협정에는 '신무기 반입 금지' 조항이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한 사실을 공개하고 한국과 협정을 체결하면 정전협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셈이 되고 만다. 그래서 미국은 처음에는 몰래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했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를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신무기 반입 금지' 조항이 사실상 유명무실화되고 북한의 핵 고도화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만큼, 한미가 '나토식 핵공유'를 추진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상 불가능하다. NPT 때문이다.

NPT 1조에선 핵보유국은 핵무기에 대한 "관리를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어떠한 수령자에 대하여도 양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2조에선 비핵국가가 핵무기의 "관리를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어떠한 양도자로부터도 양도받지 않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 나토의 핵공유 협정은 어떻게 이 조항들을 피해간 것일까? 나토는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핵공유 협정이 1966년에 체결된 만큼, 1970년에 발효된 NPT의 소급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동맹의 핵보유국들이 그들의 핵무기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와 관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비핵국가에게 핵무기 통제 이전을 금지한 NPT 1조 및 2조와 부합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논리는 NPT 발효 이후 나토가 이 조약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를 담은 '워싱턴 선언'에는 한국이 NPT의 의무를 준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다름 아닌 표현이다. 하나 더 있다. 한미가 NPT 회원국인 만큼, 나토식이든, 그 어떤 식이든 핵공유 협정을 맺는 것은 사실상 불가하다는 미국의 의사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빈손' 방미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워싱턴 선언이 '사실상의 핵공유'라고 치켜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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