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K-뷰티' 용병, 크레이버의 나심씨를 만나다

임현지 기자 2023. 4. 2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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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출신…스킨1004 해외 영업 담당
"트렌드 한 단계 앞서고 싶다면 K-뷰티 추천"

[스포츠한국 임현지 기자] '잘 뽑은 외국인 선수가 한 해 성적을 좌우한다.' 야구·축구·배구·농구 등 국내 프로 스포츠 리그에서 전해져오는 구문 중 하나다. 외국인 용병의 존재가 팀 전력과 분위기를 좌우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잠재력, 기량, 선수들과의 관계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만큼 훌륭한 용병을 영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K-팝, K-드라마 등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함께 성장한 분야가 있다. 다름 아닌 '뷰티(Beauty)'다. K-뷰티의 수출은 중국에서 먼저 성과를 거뒀지만, 사드 갈등으로 한한령(限韓令)이 내려진 뒤 미국과 유럽, 동남아 등으로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이때부터 화장품 기업들은 해외 판로 다각화를 위한 외국인 인재 찾기에 나섰다.

지난 4월20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크레이버 본사에서 나심 씨를 만났다. 사진=크레이버 제공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나심(Nasim) 씨는 뷰티·소비재 육성 스타트업 '크레이버(Craver)'의 유니폼을 입은 용병이다. 크레이버는 2014년 '비투링크'라는 이름으로 중국향 K-뷰티 유통을 해온 회사인데, 역시 한한령으로 135억원의 손실을 겪은 바 있다. 유망 브랜드를 발굴·육성하는 브랜드 애그리게이터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면서 2022년 흑자 전환에 성공, 같은 해 7월 크레이버로 사명을 변경했다.

나심 씨는 크레이버에서 1년째 근무 중이다. 몽골에서 대학교를 다니다가 교환학생으로 2012년 한국에 왔다. 화장품 OEM·ODM 회사들을 거쳐 크레이버까지, K-뷰티에 몸담은 지는 벌써 7년째다. 현재는 키 어카운트 매니저(Key Account Manager)로 근무 중이다. 크레이버의 대표 제품인 '스킨1004'를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에 알리고 신규 거래처를 발굴하는 일을 한다.

크레이버는 지난해 '볼로냐 코스모프로프'와 '독일 뒤셀도르프 국제 뷰티 박람회'에 참가하며 유럽 진출에 나섰다. 올해는 신소재를 활용한 뷰티 브랜드 육성에 주력할 예정이다. 특히 연구개발비 30억원을 투자한 브랜드 '이데넬'을 통해 고기능성 화장품의 세계화에 도전한다. 중국을 비롯해 미국에서도 비즈니스를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스킨1004는 이미 미주 지역에서 반응이 오고 있다. 이제 나심 씨가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시기다.

지난 4월20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크레이버 본사에서 나심 씨를 만났다. 그는 유창한 우리말로 K-뷰티와 한국 문화, 그리고 회사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2022 볼로냐 코스모프로프' 참가한 스킨1004의 부스. 사진=크레이버 제공

- 아프가니스탄 사람과의 대화는 처음이다. 고향에서 살 때 한국을 알고 있었나?

한국이 남한과 북한으로 나눠져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2009년쯤 한국 드라마 '주몽'이 중동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확실히 인지하게 됐다. 드라마는 시청률 80%를 넘겼으며, 주몽을 보기 위해 집으로 빨리 귀가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이후 몽골 대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학생들과 친해지면서 한국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더 커졌다.

- 크레이버에 오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2012년 교환학생을 통해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후, 2014년부터 거주하며 학업을 마치고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화장품 OEM·ODM 제조 회사에서 제품 개발 및 영업 등을 담당했는데, 해당 경력을 바탕으로 화장품과 관련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뷰티 브랜드로의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스킨1004는 한국에서 시작했지만 글로벌 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브랜드라는 점에 매력을 느껴 지난해 5월 크레이버에 입사했다.

- 어떤 업무를 담당하는지 자세히 알고 싶다.

미국, 캐나다, 칠레, 호주 및 뉴질랜드 총 5개 국가에서 스킨1004의 마케팅과 기존 거래처 관리 및 신규 거래처 발굴 등 세일즈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스킨1004는 크레이버(당시 비투링크)가 2017년 인수한 직후부터 흑자 전환해 다양한 해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현재 90% 이상의 매출이 해외에서 발생하며, 아시아를 넘어 미주는 물론 멕시코, 칠레 등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베스트셀러 제품은 '센텔라 앰플'과 '좀비팩'이다. 두 제품 모두 아마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전체 진출국에서 각각 520만개과 158만개에 달하는 누적 판매량을 달성했다.

- 회사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소개한다면?

사명에서 알 수 있듯이, 크레이버는 '열망하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다. 내가 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생각하며 늘 새로운 열망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곳이다.

- 입사한지 1년 정도 됐는데, 근무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입사 직후에는 멕시코 지역을 담당했었는데, 멕시코 코스트코에 스킨1004 입점 계약을 확정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반적으로 계약 확정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짧게 걸릴 정도로 열심히 설득한 결과여서 더 기뻤다.

또 지금 담당하는 지역인 칠레에서도 8개월간의 노력에 걸쳐 올해 4월 말부터 유명한 오프라인 DBS 스토어 입점하게 됐다. 이렇게 신규 국가 진출 및 신규 거래처 개발이 성사될 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통한 성취감을 느낀다.

특히 스킨1004 제품에 대해 파트너사들로부터 '고급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어 좋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제품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갖게 돼서 좋다.

지난 4월20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크레이버 본사에서 나심 씨를 만났다. 사진=크레이버 제공

-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이 회사에 있으면서 불편하거나 고생했던 일은 무엇인가?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나?

입사 직후에는 수습 기간 동안 새로운 성과를 창출해서 브랜드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 부담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크레이버는 개인의 역량만 있다면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곳인 만큼, 당시 B2B(기업 간 거래) 직수출 실적을 크게 늘리는 성과를 달성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입사 초기에는 미국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스킨1004 제품들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가격 정책과 프로세스를 관리하는 업무를 제안하기도 했다. 현재는 리셀러의 90%가 크레이버를 통해 스킨1004 제품을 구입할 정도여서, 회사와 판매자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큰 강점이 됐다.

- 일하는 동안 배운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이었나?

그간 한국에서 다녔던 회사나 조직과 비교한다면, 크레이버는 유연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열린 기업 문화를 경험한 곳이다. 특히 권위주의적인 문화나 비효율적인 구조가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강점과 이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된 점이 가장 의미 있었다.

- 전에 일했던 한국 회사와는 맞지 않았던 걸까?

이전 회사에서는 '윗 사람'이 존재하는 수직 문화였다. 협업이 아닌 일방적인 지시가 많았다. 게다가 혼자만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항상 맞춰야만 했다. 크레이버는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인재들이 많다. 이에 문화적인 차이점이 있어도 서로 이해하고 공감이 가능하다.

- 크레이버만의 독특한 사내 문화가 있을까?

크레이버는 회사와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곳이다. 특히 직원 개개인의 관심사와 역량에 따라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안하고 이를 실행해 볼 수 있는 등 많은 도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명확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핵심성과지표) 아래 목표를 달성하면 노력에 따른 보상도 받을 수 있다.

물론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책임이 크기 때문에 업무량이 적지는 않다. 불필요한 야근을 강요하지 않고 일상과의 밸런스를 고려하는 기업 문화도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된다.

- 엔데믹이 찾아왔다. 앞으로 바빠질 것 같은데.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출장을 많이 못 갔었는데, 올해부터는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마케팅과 세일즈 부서에서도 각 나라마다 출장을 계획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3월 이탈리아를 다녀왔으며,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출장이 예정돼 있다.

- 마지막으로 K-뷰티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K-뷰티에서 일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과거에는 당장 먹고, 씻고, 입는 것이 중요했다면, 오늘날의 인간은 이 같은 기초적인 문제가 해결된 상황이다. 이제 운동이나 피부 관리 등 개인만의 케어를 하는데 집중할 수 있다. 이를 비즈니스적으로 봤을 때 화장품이라는 품목은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특히 K-뷰티는 다른 나라들 보다 트렌드가 항상 앞서나가고 있다. 한국에서 2~3년 전 유행했던 제품이 뒤늦게 미국에서 문의가 오기도 한다. 한 단계 앞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K-뷰티의 가장 큰 장점이다.

 

스포츠한국 임현지 기자 limhj@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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