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도 ‘내 집 마련’ 열풍···치바현 주택지 상승률 20.9%? <이수민의 도쿄 부동산 산책>
저렴한 조달금리···탄탄한 수익률로 해외 투자자 비중 34%
팬데믹 잦아들며 도쿄 23구 공시지가 상승세 뚜렷
다만 하락 면치 못한 지역도 다수···마이홈 붐 이어질까
<회사원 두 명이 퇴근길에 술 한 잔 걸치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명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나 집 샀지 뭐야, 여기.”
무안한 정도로 대놓고 시작한 동료의 자랑을 들은 또 다른 회사원, 테이블 밑으로 몰래 동료가 구입했다는 맨션 이름을 재빨리 검색해보는데요. 동료가 구입했다는 초호화 고급 타워맨션(주상복합)의 가격을 확인하고 그는 적잖이 놀랍니다. 그리고 곧바로 뜨는 광고 멘트, “주택론 1위, 00은행”>
최근 일본은 ‘마이홈(My home)’ 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속 성장에 힘입어 너도나도 집을 샀던 1980년대 폭등기를 지나, 경기 침체와 더불어 집값도 폭삭 가라앉는 경험을 했던 일본인들이 다시금 내집 마련에 눈을 돌리는 모습인데요. 소득이 높은 회사원이나 전문직을 중심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살기 좋은 신축 고급 맨션 또는 타워맨션으로 불리는 초고층 주상복합 형태의 집을 사려는 이들이 이 시장을 견인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쿄 치요다구나 츄오구 같은 핵심 지역의 신축 맨션은 한국보다 좁은 면적(50㎡)에도 1억엔(약 10억원)을 훌쩍 넘을 정도로 비싼데요. 현지 언론에서는 ‘억소리 날 정도로 비싼 집값···서민은 그림의 떡’이라는 제목을 붙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던 모습이지요? 특히 일본 금융기관에서는 주택론 기간이 35~40년까지 길기 때문에 그만큼 대출 받는 차주의 소득과 직장, 전문직 여부를 까다롭게 봅니다. 이들이 광고 등으로 내세우는 주택론의 금리는 연 1% 이하(일본인 기준)로 매우 낮은 편이지만,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대출이나 금리는 아니라고 하네요. (외국인이나 법인 투자자의 경우 연 3%대로, 이율만 보면 한국보다는 저렴하지만 조건이 제법 까다롭다고 하네요. 따라서 외국인인 한국인이 일본인처럼 초저리의 주택론을 활용해 적은 초기 비용으로 장기간 집값을 갚아나가는 방식의 자산 확보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튼 열도가 주목하고 있는 집값 상승세는 주택담보대출 등 관련 상품의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초기 자본이 부족한 이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인데요. 그래서 일본에서 생활하다 보면 라디오나 TV, 지하철 내 영상광고 등 곳곳에서 낮은 금리를 내세운 금융기관 광고를 접할 수 있습니다. 앞서 간단히 소개한 광고도 이런 세태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겠죠. 집을 사려는 사람이 없다면 금융기관에서 비싼 광고를 만들면서까지 모객에 나설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실수요에 기반한 주택 시장이 이렇게 들썩이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부동산 가격을 매기는 기준이라 할 수 있는 땅값도 전반적으로 오르는 추세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해마다 공시지가를 발표하는데요, 지난달 22일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2023년 1월 1일 기준 공시지가는 모든 용도의 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국 평균 1.6% 상승했다고 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리먼쇼크)가 발생하기 전인 2008년의 상승률인 1.7%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하네요.
현지 언론에서는 이 같은 땅값 상승이 팬데믹이 잦아들면서 엔저(底)를 적극 활용한 해외 투자자들이 도쿄나 오사카, 나고야 등 대도시권의 상업지를 적극 매수한 결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 부동산은 저금리로도 자금조달이 가능하고, 연간 확보할 수 있는 임대료 수입을 부동산 취득가격으로 나눈 캡레이트(Cap Rate: 부동산 매입 금 대비 순수익)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해외투자자들이 꾸준히 사랑해온 물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존스랑라살(JLL)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일본 부동산의 투자총액 가운데 해외 투자자의 비율이 34%에 달한다고 하네요.
또한 일본 언론 매체들은 공시지가 상승의 배경에 대해 다시 살아나는 경기에 일본인들의 매수세도 붙는 모양새라고 설명합니다. 국토교통성은 이번 공시지가를 발표하면서 “코로나19 영향으로 침체되었던 땅값이 위드 코로나로 바뀌고 경기 회복이 이어지면서 도시를 중심으로 땅값 상승이 계속되고 있으며 지방에서도 땅값이 오른 지역이 넓어지는 등 코로나 전으로 회복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밝혔습니다.
‘내 집 마련 트렌드’ 역시 이번 공시지가 발표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전국 평균으로 보면 주택지의 상승률은 지난해 0.5%에서 1.4%로 올랐습니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즉 3대 도시로 묶이는 곳에서는 주택지가 평균 1.7% 상승해 지난해 0.5%에 비해 크게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수도인 도쿄만 떼어서 볼까요. 주택지는 올해 1월 1일을 기준으로 2.1%나 올랐고 이는 전년 기록한 상승률인 0.6%을 몇 배나 뛰어넘는 수치입니다. 여기에서 여러 시를 제외하고 도쿄 23구만 놓고 보면 상승률은 3.4%로 더 높습니다. 주거수요가 높은 곳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도쿄에서도 유독 더 오른 곳이 있을까요? 이번 발표를 보면 23구 내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곳들이 ‘키맞추기’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다이토구와 토시마구, 나카노구 등 상대적으로 외곽에 속하는 지역들의 주택지가 각각 4.8%, 4.7%, 4.6% 상승했습니다. 그렇다면 도쿄의 ‘강남’은 어떨까요? 교통 같은 생활 인프라가 탄탄해 주거 수요가 높은 이른바 ‘도심 3구’는 역시나 공시지가 상위권을 휩쓸었습니다.
일본 국회와 각국 대사관들이 모여있는 ‘전통의 강자’ 치요다구는 제곱미터(㎡)당 279만1400엔(약 2767만원)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네요. 그 다음은 히로오·아자부쥬반 등 고급 주택지가 모여있는 미나토구는 214만9700엔/㎡(약 2131만원/㎡)을 기록했습니다. 그 다음은 시부야구(138만6700엔(약 1375만원/㎡), 츄오구(138만6400엔(약 1375만원)/㎡), 분쿄구(105만7100엔(약 1048만원)/㎡). 메구로구(101만3300엔(약1004만원)/㎡) 순입니다. 이 수치는 평균 가격으로, 일부 지역은 ㎡당 1억엔을 넘기도 했다고 하네요. 팬데믹 이후에 원격 및 재택근무가 보편화 되면서 교통이 편리한 교외에 집을 구입하는 경향도 두드러집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에 해당하는 치바현의 경우 특정 역(JR 소데가우라)을 중심으로 반경 2㎞ 안에 들어오는 주택지의 가격 상승률이 전년대비 20.9%나 될 정도로 폭등했다고 합니다.
지방에서도 대규모 재개발이나 교통 인프라의 정비가 속속 진행되고 있는 지방 4개 도시에서는 땅값 상승세가 놀라웠습니다. 삿포로·센다이·히로시마·후쿠오카는 전 용도(주택·상업·공업)를 통들어 평균 8.5% 상승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프로야구 경기가 펼쳐지는 신구장을 개발 중인 삿포로 근교 지역에서는 올해 공시지가 조사 대상 토지 다수에서 30% 가까이 상승하는 이례적인 상황도 관찰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침체 혹은 횡보에 머물렀던 일본 부동산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지역에 따라서는 땅값이 하락한 곳도 상당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는 총 47개 도도부현(都道府?)이 있는데, 올해 기준 상업지는 절반에 달하는 23개현에서, 주택지로는 22개현에서 땅값이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와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일부 도시에만 휘몰아치는 투자 붐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한국에서도 서울, 그리고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땅값과 집값이 치솟았던 것을 떠올려보면 크게 다르지 않죠. 다만 한국에서는 강남에서 시작한 상승세가 서울 전역으로, 다시 수도권과 5대 광역시, 여기서 지방 곳곳으로 퍼져나갔던 기억입니다. 한 차례 광풍이 휩쓸고 지난간 자리에는 크나큰 지역별 편차가 남겨졌죠. 일본을 찾아온 ‘마이홈’ 열풍,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그리고 그 끝은 어떤 모습일까요?
도쿄=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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