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여성 건강 고민한 수학과 출신 개발자

김진화 기자 2023. 4.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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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혜은 해피문데이 CTO
부혜은 해피문데이 CTO

전 세계 여성 절반에겐 매달 아랫배가 콕콕 쑤시고, 때론 우울감에 빠지는 ‘그날’이 찾아옵니다. 바로 월경인데요. 신경쓰이고 번거로운 월경을 누군가 같이 고민해주고 관리해주면 어떨까요.

부혜은 CTO(최고 기술 책임자)는 이러한 생각을 담아 김도진 대표와 함께 월경 중심의 여성 헬스케어 기업 ‘해피문데이’를 설립했습니다. 월경 주기를 계산하고 증상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앱 ‘헤이문’도 개발했습니다. 부 CTO는 더 많은 여성의 건강한 삶을 목표로 개발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공동창업자인 김도진 대표와는 대학 시절 ‘데이터 분석 연합 동아리’를 함께했어요. 그때 작은 프로젝트를 같이 했는데, 딱 그 정도로 알고 지냈지요. 그런데 2017년 김 대표가 해피문데이 창업을 결심했을 때 주변 여성 개발자를 고민하다가 제가 생각났대요. 저도 마침 이직을 고민하고 있어서 김 대표가 그리는 사업 모델을 듣고 창업까지 같이 하게 됐습니다.”

부 CTO는 가장 먼저 생리대 정기구독을 위한 웹 서비스 개발부터 시작했어요. 생리대를 사는 걸 깜빡해서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월경이 시작돼 난감한 경우가 여성에겐 제법 있는데요. 소비자의 월경 주기에 따라 알아서 생리대를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1년 반 정도는 혼자서 모든 서비스를 개발해야만 했습니다.

해피문데이 제품과 헤이문 앱. 해피문데이 제공

● 여성 건강 종합 서비스, 헤이문 앱 출시

2019년 해피문데이는 생리대 구독 서비스가 어느 정도 틀이 잡혔을 때 월경 건강 앱 ‘헤이문’을 만들기로 했어요. 웹사이트보다 앱을 이용하는 게 더 편리하니까요. 또 앱에서는 알림 전송 등 할 수 있는 게 많지요.

같은 해 9월 시범적으로 몇 명만 초대해서 테스트를 진행하는 클로즈드 베타 서비스를 열었어요. 참여자들에게 ‘이런 기능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이 추가되면 좋겠다’ 등 다양한 의견을 받아 2020년 9월 애플의 iOS 앱을 정식으로 출시했어요.

“헤이문의 핵심 기능은 여성 개개인의 월경을 추적, 관찰하는 거예요. 월경을 더 정확히 추적할 수 있는 알고리즘과 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결과를 전달하는 영역에 많이 집중하지요. 사실 월경 주기, 증상 등 모든 월경 경험이 사람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개개인이 정보를 입력했을 때 의학적인 자료를 토대로 경향을 분석해서 결과를 알려줍니다.”

헤이문의 월경 주기 예측은 최근 3개월 월경 주기 평균을 구하는 표준 계산법보다 약 2일(월경이 불규칙한 경우 5일) 더 정확했어요. 2022년 6월에는 헤이문 다운로드 횟수가 누적 100만 회를 돌파하는 등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수학동아 제공

● 수학적 논리 흐름, 프로그래밍으로 승화하다

Q . 수학과에 진학한 이유가 있나요.

"어릴 적 꿈은 수학자, 과학자와 수학 선생님이었어요. 수학, 과학을 잘하고 좋아해서 막연히 생각한 진로였지요. 대입을 앞둔 고3 시절, 어느 과를 지원할지 한참 고민했는데,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수학과를 택했어요. 특히 고3 여름방학 때 포스텍에서 진행하는 캠프에 참여했는데, 그 뒤로 포스텍 수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열정이 불탔어요.

Q. 어떻게 로그래밍을 공부하게  됐나요.

"막상 수학과에 진학하니 수학을 응용해서 다른 곳에 적용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에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을 했어요. 그때 새로운 상품을 기획해서 생산, 판매, 광고까지 모든 일을 수행하는 ‘프로덕트 매니저(PM)’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PM이 되기 위한 프로그래밍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프로그래밍 기초 수업이 무척 재밌더라고요. 수학과 비슷하게 느껴졌지요. 수학에서 공식을 쭉쭉 나열하면서 문제를 풀듯이 프로그래밍도 어떠한 문제를 논리적으로 구현해서 프로그래밍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잖아요. 그래서 몇몇 컴퓨터 공학과 수업을 더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기회가 생겨 개발 업무로 인턴도 하고 금융 스타트업인 ‘8퍼센트’에서 제의를 받아서 개발자로 일했어요."

Q. 지금은 많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여성 개발자가 흔하지 않잖아요. 개발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신기하다는 반응이었어요.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선배 여성 개발자 분을 만나기 어렵다 보니 어떤 개발자로 성장할 수 있을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늘 걱정하면서도 ‘내가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일을 잘하면 성별에 관계없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Q. 김도진 대표와 공동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여성(Female)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술(Tech-nology)인 ‘펨테크(Femtech)’라는 분야가 당시에는 생소했지만, 김 대표의 아이디어가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구체적으로 아이템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김 대표를 신뢰할 수 있었고요. 또 저희가 하는 일이 여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홀린 듯이 동참하게 됐어요."

Q. 창업하면서 두렵거나 어렵진 않았나요.

"두려움보다는 잘해서 빨리 성장시켜야겠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당시에 모든 걸 잃더라도 30살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자는 각오였거든요. 초기에는 저 혼자 서비스를 다 만들어야 해서 조금 힘들기도 했어요. 모르는 게 생기면 인터넷에서 관련 기술을 찾아 공부하거나 주변 분들께 조언도 얻으면서 열심히 헤쳐나갔지요."

Q. 수학과 출신 개발자로서 자신만의 특징이 있나요.

"평소에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정확한 걸 좋아해요. 덕분에 무슨 일이든 실수를 줄이고 정확하게 할 수 있어요. 한편으론 수학과 출신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보다 수치에 집착해요. 단위가 잘못되거나 조금의 오차가 있으면 참을 수 없어요."

Q. 해피문데이의 다른 개발자가 말하길, 부 CTO가 수학과라서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것 같다고 하던데 맞나요.

"프로그래밍을 하기 전에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짜놓은 논리 흐름을 ‘수도 코드’라고 하는데요. 이건 제가 잘 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수학 문제를 풀 때 긴 풀이 과정을 거쳐서 답을 얻을 수도 있지만, 더 짧고 간결하게 풀 수도 있지요. 저는 수학에서의 논리 흐름을 응용해 최소한의 과정을 거쳐서 결과를 낼 수 있는가를 고려해서 프로그래밍해요."

Q. 2021년 포브스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에 선정이 됐어요. 그때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창업할 당시에는 여성 헬스케어 분야가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고, 차차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였어요. 저희가 0에서 시작해서 쌓아 올린 것을 알아봐주는 것 같아 감사했어요.

또 '포브스 아시아'는 세계적인 잡지사인데 해피문데이가 전 세계적으로도 그 의미와 가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해서 뿌듯했지요. 저랑 대표 이름만 올라갔는데, 해피문데이 직원 모두가 잘하고 있어서 선정됐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당장은 해피문데이가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해요. 전 세계 여성이 해피문데이라는 브랜드와 헤이문 앱을 이용해보거나 들어봤을 정도로 인지도가 늘었으면 좋겠어요. 해피문데이가 믿을 수 있는 브랜드, 신뢰받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부혜은 CTO(가운데)와 해피문데이 구성원.

●김도진 대표가 말하는 부혜은 CTO

"같은 대학교가 아니라 자주 만나거나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떤 일을 끝까지 해낼 힘이 있는 친구’라고 느꼈어요. 해피문데이는 IT 기술 서비스를 염두에 둔 회사라 처음부터 CTO와 공동 창업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부 CTO는 보안, 핀테크 등 신뢰와 안정성이 중요한 회사와 스타트업에서도 일했다는 점에서 해피문데이에 딱 맞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하자고 했어요. 부 CTO에게 감사하는 부분은 언제나 ‘우리의 목표와 가치’를 최우선순위에 놓는다는 거예요.

‘나’보다 ‘우리’를 앞에 두는 건 결코 쉽지 않거든요. 덕분에 해피문데이가 ‘더 많은 여성의 건강한 삶’을 목표로 바라보며 거침없이 달릴 수 있었어요."

※관련기사

수학동아 4월,  [Data Math] 여성 건강 책임지는 개발자 '해피문데이 부혜은 CTO'

[김진화 기자 evolut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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