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로봇들②]모래주머니 달고 헉헉대는 한국로봇…"안 되는 것 빼고 다 열어주고 전문 인력 키워야"
"규제 방식·로봇 보조금 개선 필요"
"로봇 연구단지 만든 덴마크 참고하자"
"로봇 기술력은 세계 톱(Top)인데 산업과 기업을 키울 장애물이 너무 많아요."
세계 로봇시장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국내 로봇산업을 위한 제도적 지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손꼽히는 정보기술(IT) 역량을 지녔지만 로봇 분야는 성장이 더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장의 관계자들은 "장벽이 너무 많고 높다"는 불만을 쏟아낸다.
기술력은 최고 수준, 산업은 제자리
전문가들은 한국의 로봇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재권 한양대 에리카 로봇공학과 교수는 "마라톤에 빗대면 선두 그룹에 속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인구 1명당 사용하는 로봇의 수를 가리키는 로봇밀도는 한국이 세계 1위"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 로봇산업 시장 규모나 경쟁력은 정체되며 미국·유럽 등 선진국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규제 환경이다. 미국은 로봇산업에 '안 되는 것 빼곤 다 허용해주는' 네거티브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은 '허락한 것만 할 수 있는' 방식이다. 한 교수는 "출발선도 뒤에 있는데 양쪽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셈"이라며 "규제 틀 자체를 미국처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봇 보급률을 높이기 위한 '로봇 구입 보조금'도 논란이다. 정부는 '스마트 상점 기술보급 사업'에 따라 식당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서빙로봇이나 음식 조리로봇 구매자에게 최대 1,500만 원의 보조금을 준다. 문제는 한국 로봇뿐만 아니라 중국 등 외국산 로봇을 사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서 만들어진 서빙로봇은 한국 제품과 비교해 20~25% 저렴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보조금이 도리어 중국 로봇이 한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 한국로봇산업협회는 한국 외식 매장에서 가동되는 로봇의 70%는 중국산으로 분석했다.
한 교수는 "자유무역협정(FTA) 조항이나 통상 문제 때문에 보조금 지급에 차별을 두는 게 쉽지 않을 수는 있다"면서도 "한국 로봇육성에 보조금이 제때 제대로 쓰이도록 정부의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로봇의 사용 범위가 수술용 로봇, 전기차 충전 로봇 등 소비자 일상생활과 가까워지고 있는 만큼 전문 인력도 더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 개정해 로봇시장 키워야"
배달로봇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기업 뉴빌리티는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회사가 개발한 자율주행 로봇 뉴비는 1월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전자제품 전시회 CES 2023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뉴빌리티는 삼성전자가 투자한 주요 스타트업 중 한 곳의 자격으로 CES 현장에 부스도 마련했다. 세븐일레븐, SK텔레콤과 함께 편의점 배달과 골프장 카트용 로봇 시범 사업도 진행했고 일본, 유럽, 미국 진출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더 속도를 내려해도 가로막는 장애물이 많다.
당장 배달로봇이 자동차 같은 '차'로 분류되기 때문에 로봇이 보행로 위에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제한된다. 특히 배달로봇에 대한 법적 정의 자체가 없어 상황을 바꾸려면 도로교통법과 지능형로봇법, 생활물류서비스법 등을 바꿔야 하는데 모두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그나마 뉴빌리티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삼성벤처투자 30억 원 등 총 300억 원을 투자받았지만 자금 상황이 열악한 스타트업은 시장에 뛰어들기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부처와 국회에 로봇산업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제도가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지 않게 규제 개선에 속도를 내야한다"고 토로했다.
로봇전문 연구단지 만드는 덴마크
전문가들은 법 체계 자체를 네거티브 규제로 책정한 미국과 더불어 정부가 직접 로봇기업들을 지원하는 덴마크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덴마크는 2020년 로봇산업을 국가 미래 산업으로 정한 뒤 로봇개발을 집중적으로 맡는 연구 허브를 마련했다. 로봇 분야 종사자는 2만5,0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정부의 지지 속에서 협동로봇(사람과 업무를 분담하는 제조로봇) 시장 세계 점유율 50%를 넘나드는 로봇회사 '유니버설 로봇'이 이름을 날리고 있다. 또 물류로봇 기술인 AMR 분야 선두 미르(MIR)와 그리퍼(로봇 손) 전문기업 온로봇도 존재감을 높이는 중이다.
한편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세계 로봇시장 규모는 2024년 약 160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 챗GPT와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로봇이 경제 분야는 물론 소비자의 일상에서 차지할 비중은 커지고 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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