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지금 아닌 하반기를 보는 이유'…주도권 잡을 삼성 반도체
삼성전자 반도체 예상대로 조단위 적자
하반기 감산효과…투자로 리딩유지 전략
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반도체 매출 '반 토막'…영업익 '13조' 감소
예상대로였습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1분기 매우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DS(반도체)부문의 부진이 직격탄이었습니다. 이 탓에 삼성전자의 지난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 대비 18.1% 감소한 63조7454억원, 영업이익은 95.5% 줄어든 640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삼성전자 DS부문의 지난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49% 감소한 13조73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문제는 영업이익입니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지난 1분기 4조5800억원의 영업 손실을 나타냈습니다. 전년 대비 13조원이나 줄어든 규모입니다. 그나마 DX(디바이스경험) 부문에서 선전해 DS부문의 손실을 메울 수 있었습니다. DX부문의 매출액은 46조2200억원, 영업이익은 4조2100억원이었습니다.
삼성전자 DS부문이 분기 적자를 기록한 것은 14년 만입니다. 삼성전자 DS부문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휘청였던 지난 2008년 4분기와 2009년 1분기 연속 적자를 낸 바 있습니다. 삼성전자 DS부문이 조(兆) 단위 적자를 기록한 것은 무척 낯선 모습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차분합니다. 삼성전자 DS부문의 부진 전망은 이미 충분히 거론됐던 이야기여서 일 겁니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실적을 발표한 지난 27일 주가는 전일 대비 0.78% 오른 6만4600원을 기록했습니다.
DS부문, 조단위 적자 원인은
DS부문의 대규모 적자 이유는 수요 침체 때문입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수요 침체는 본격화됐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개당 3달러가 넘었던 D램 범용 제품 가격은 올 들어 1달러대로 떨어졌습니다. 낸드 범용 제품 가격도 4달러 후반대에서 지난달 3달러 후반대로 낮아졌습니다. 수요가 줄고 가격이 낮아지니 재고만 쌓인 겁니다.
사실 삼성전자는 감산의 타이밍을 놓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올해 초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이 감산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 삼성전자는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다들 감산을 이야기할 때 버티기 전략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기술 초격차에 나서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업계는 내심 실망했습니다. 삼성전자도 인위적 감산에 동참토록 해 하락한 메모리 가격을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시켜보려는 구상이 무산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인위적 감산을 언급하는 대신 내부적으로 '기술적 감산'을 통해 시장 상황을 조정해나갈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번 실적 발표 후 컨퍼런스 콜을 통해 '감산'을 언급했습니다. 현재의 시장 상황이 삼성전자로서도 더는 버티기 어려운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판단입니다.
시장이 하반기를 기대한 이유
삼성전자는 “설비 재배치 등 생산라인 최적화와 미세공정 전환 등을 통한 기술적 감산 외에 추가로 공급선이 확보된 제품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삼성전자 예측보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속도가 더 빨랐던 데다, 수요 감소에 따른 재고 증가를 막아내지 못한 것이 이유로 꼽힙니다. 삼성전자도 시장의 큰 흐름을 버티기 힘들었다는 방증입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특정 제품에 한해 앞으로의 수요 변동에 대응 가능한 물량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판단해 생산량 하향 조정을 결정했다"며 "생산 조정은 충분한 물량을 보유한 레거시(전통) 제품 위주로 이뤄지며 1분기 라인 최적화 등을 추가해 의미 있는 규모의 감산을 진행 중이다. 하반기에도 생산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계획인 만큼 재고 수준 정상화는 가속화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인위적 감산 동참으로 2분기부터는 의미 있는 수준의 공급량 조절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하반기에는 재고가 소진되고 메모리 가격이 정상화되면서 실적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도 "이제 모든 공급업체가 감산에 돌입하고 이에 따른 영향이 2분기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돼 올해 중에는 재고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감산으로 분위기 만들고 투자로 리딩유지
특히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투자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동안 시설 투자에 총 10조7000억원을 투입했습니다. 전년 대비 36% 증가한 수치입니다. 심지어 지난 1분기 시설 투자액은 역대 1분기 기준 최대 규모입니다. 연구개발비에도 6조5800억원을 썼습니다. 지난 분기에 이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규모입니다. 삼성전자는 2분기에도 시장 상황에 맞춰 투자를 늘려갈 계획입니다.
업계에선 기 투자금액의 상당부분이 반도체 사업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적자 사업부가 투자를 과감하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투자 확대 기조를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요.
우선 튼튼한 기초 체력입니다. 삼성전자 반도체는 분기 적자에 흔들릴 체력이 아닙니다. 현금보유 규모도 상당합니다. 어려워도 시장을 이끌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런 기초 체력 위에 올려진 미래대비 경영철학은 삼성전자 반도체를 이끈 힘 입니다. 반도체는 사이클 산업입니다. 업다운 사이클을 예측하고 남들보다 한 박자 빠른 기술투자로 리딩하는게 중요합니다. 삼성전자 김재준 부사장도 "중장기 수요 견조가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급력을 갖추기 위해 인프라에 미리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의 지난 1분기 실적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얼핏 보면 시장 상황에 삼성전자가 승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버텼던 인위적 감산 방침도 철회했으니까요.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삼성전자의 대응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보는게 맞습니다. 시장 상황은 유연하게 받아들이되 향후 만회할 기회를 엿보는 겁니다. 삼성전자의 다음 행보가 기대됩니다.
정재웅 (polipsycho@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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