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조사전문위원장 마취심사 없었다” 발표에 유족 '피눈물'…"부실조사"
행위·주체 특정 없는 진상조사 결과…피해자 "못 믿겠다"
회의록 없는 심사 부작용 여실히…대면 진상조사 '역부족'
코로나19 백신피해조사전문위원회 위원장이 마취된 상태에서 백신과 질병 간 인과성 심사에 참여했다는 폭로가 나온 지 20여 일 만에 질병관리청이 “마취상태에서 참석한 적은 없다”는 내용의 진상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하지만, 조사 대상과 내용이 두루뭉술한 데다 방식도 공개되지 않자, 피해자들은 “질병청이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또다시 우리를 우롱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질병청 대변인실은 28일 “(A 피해조사전문위원장이 마취된 상태에서 심사에 참여했다는 의혹을 받은 날) 정상적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심사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백신 부작용 피해보상’ 정책간담회에서 안성배 제주도 역학조사관은 “A 위원장이 오전 수면내시경을 받고 그날 오후 인과성 심사에 들어와 오락가락한 상태에서 하루 동안 1000여 건의 인과성 사례를 심사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A 위원장의 말투가 어눌하고 논리가 오락가락하자, 심의에 참석한 다른 위원들이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안 조사관은 “위원장이 수면 내시경 뒤 마취에서 깨지 않아서 그렇다고 발언했다”며 “관련 녹취 증거 자료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간담회 자리에 있었던 정춘숙(더불어민주당)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질병청에 해당 사안을 조사해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행위·주체 특정 없는 진상조사 결과…피해자 "못 믿겠다"
이후 본지 취재진은 질병청에 3차례에 걸쳐 ‘안 조사관 폭로 내용과 관련해 진상 파악이 됐나?’ ‘실제 A 위원장이 마취된 상태에서 심의가 이뤄졌나?’ ‘A 위원장이 수면내시경을 하고 (심의에) 참석한 게 맞나?’ ‘마취 상태에서 회의에 참석한 것은 문제가 없다고 보는 건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위원장 질책 등의 조치가 있었나?’ 등의 질문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질병청 측은 “전문위에 참가하는 모든 위원은 회의 개최 4일 전 회의 자료를 받아 내용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토 뒤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며 “회의 당일 위원 1명이 수면내시경을 하였더라도 회의 시 모든 건에 대해 심도 있는 심의 진행이 가능하였던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이 적힌 서면 답변을 했다. 답변 내용 어디에도 구체적 행위 주체나 내용은 특정돼 있지 않았다. 다만, 질병청 대변인실은 “A 위원장이 마취 상태에서 심의에 참석한 적 없다”는 답변에만 행위 주체를 특정했다.
이에 법 전문가와 피해자들은 질병청의 부실한 진상조사를 짐작게 하는 답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들은 “조사를 했으면 의혹의 대상이 되는 행위가 특정된 뒤 그 진위가 밝혀져야 한다. 행위 주체도 특정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질병청 조사 내용에는 그런 부분이 빠졌다. 관련 사실 조사가 없다 보니 책임질 수 없는 내용을 특정하지 못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답변서를 본 한 법조인은 “‘위원장이’ 수면 마취 당일 심의에 들어갔는지 여부나, 또 위원장이 수면 마취 당일 심의에 들어갔다면 ‘그날’ 마취가 풀리지 않은 채 심의에 참석했는지 여부에 대한 답변이 빠져 있다”며 “위원장을 특정한 채 답변하면 질병청이 그 전제가 되는 조사와 관련 판단 내용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위 주체인 위원장을 답변에서 뺀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맥락에서 질병청이 “A 위원장이 마취 상태에서 심의에 참석한 적 없다”고 한 것은 실제 수면 마취 뒤 심의 참석 여부에 대한 조사와 상관없는 통상적인 업무 행태에 대한 판단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심의 당일 수면 내시경을 한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질병청이 관련 조사 내용을 특정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의사인 안 역학조사관은 “마취제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약물이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데 12시간에서 24시간 이상이 걸릴 수 있다”며 “질병청 측이 늘 해왔던 대로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회의록 없는 심사 부작용 여실히…대면 진상조사 ‘역부족’
백신 피해 인과성 심사 과정을 담는 회의록이 없는 상황에서 폭로 내용에 대해 제대로 된 진상조사도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질병청과 전문위는 법 규정이나 내부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인과성 심사 때 회의록을 남기지 않는다. 이에 피해자와 전문가는 이번 일이 회의록 없는 인과성 심사가 신뢰성 의심을 받았을 때 그 정당성을 입증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점을 우려해 지난해 질병청이 용역 발주한 ‘코로나19 예방접종 이상 반응 및 피해 보상 제도 법률 개정 마련 연구’ 결과서에도 인과성 심사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회의록 작성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제안이 담겼다. 앞서 백신 피해자들은 심사 과정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번번이 기각되자 인과성 심사 과정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회의록을 명문화하는 규정을 법안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과성 심사에 참여한 적 있는 전문가들은 “심사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하기는 하지만, 이 내용이 계속 보관돼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안 조사관의 폭로 내용에 대한 진상 조사는 폭로 대상인 A 위원장과 위원회 위원들을 상대로 한 질의응답밖에 없는데, 이런 조사의 객관성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백신 접종자 아들을 잃은 B(58) 씨는 “폭로자인 안 조사관을 상대로 진위와 관련 증거 조사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했으나 질병청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는 결국 진상조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방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대변인실 관계자는 “조사는 폭로 대상자를 포함해 다각적으로 이뤄졌다. 구체적 방법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밝히기 어렵다”면서 “인과성 심사에 참여한 위원이 수면 내시경을 했다고 하더라도 의식이 완전히 돌아온 명료한 상황에서 심사에 참여했다고 본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진상 조사 대상 위원을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기존 입장을 재차 반복했다.
피해자들은 “질병청이 포괄적 백신 피해 보상 법안에 반대하며 적극적인 피해자 구제 약속을 어기더니, 진상조사 약속마저 지키지 않았다”며 반발한다. 김두경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백신 접종 피해의 포괄적 지원을 돕기 위한 법안이 최종적으로 이달 국회 상임위 소위에 상정될 줄 알았는데, 보상금 증액을 우려하는 질병청의 반대에 막혀 수정을 거듭했다. 그런데도 마치 피해자들이 최종 조율 안에 반대해 법안 상정이 잘 안되는 것처럼 이야기가 나온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 회장은 이어 “이것도 모자라 인과성 심사 과정의 왜곡 정황이 나왔는데도 질병청이 관련 진상조사를 부실하게 했다면 정말 수많은 백신 피해자에게 죄를 짓는 것이고 책임지게 될 것”이라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A 위원장 사퇴 촉구 운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질병청이 최근 국회의원실에 안 조사관 폭로 내용에 대해 조사해 결과를 보고했다고 했지만, 해당 의원실은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서류를 못 봐서 찾아봐야 한다”고 답변한 뒤 다음날 연락이 두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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