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첩 반상'에 돼지 묵은지찜이 1000원…믿기지 않는 이 식당은?

이승현 기자 2023. 4. 29.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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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완치 최선희 대표, 자립 청년 지원·농민 쌀 판매 독려 차원
"5·18 참배 발길 드물어…식사 후 산책 삼아 들렸으면"
지난 24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에 위치한 '한백년 식당' 대표 최선희씨(70·여)가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해당 식당은 자립 청년 지원과 농민 쌀 소비 촉진, 5·18국립묘지 참배 활성화를 위해 매주 월요일 점심식사를 1000원에 제공하고 있다. 2023.4.29/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유방암 낫게 해주면 남 위해 봉사한다고 매일 같이 빌었어요…완치해서 덤으로 사는 인생, 체력이 닿을 때까지 베풀다 갈 생각이에요."

지난 24일 오전 11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인근의 '한백년 식당'. '월요일 정기 휴무'라는 안내판이 무색하게 음식점 내부는 붐볐다.

이들은 새마을 부녀회 앞치마를 두른 채 안내, 음식 서빙, 그릇 정리 등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대표 최선희씨(70·여)는 새벽 4시부터 준비한 10첩 반상을 큰 반찬통에 옮겨담느라 분주했다. 부족한 것이 없는지 살피는데도 여념이 없었다.

영업 준비를 마친 이들은 한데 모여 자신들의 역할을 재차 확인했다. 이들이 꼼꼼하게 점검하는 건 모두 이날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서다.

한백년 식당의 정기 휴무일은 월요일이다. 그러나 최선희 대표는 이날부터 일주일에 단 한번뿐인 휴무날 점심 영업을 개시하기로 했다. 단 기존 1만~2만원대에 형성돼 있던 음식 가격은 1000원만 받기로 결정했다. 기간은 최 대표의 체력이 닿을 때까지다.

최 대표는 유방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 최근 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투병 생활 중 매일 같이 병을 낫게 해주면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부처님께 빌었다.

그는 "어떤 봉사를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했다. 헌데 내가 평생 해온 일이 음식하는 것이다"며 "완치해 덤으로 사는 인생, 여력 있을 때 다른 사람들한테 내 밥 한그릇 더 지어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 당초 무료로 식사를 제공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자립 준비 청년 등 우리 사회에서 돌봄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쌀값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의 쌀 소비를 돕고자 식사비로 1000원을 받기로 했다.

소식을 들은 진월동 새마을 부녀회원 7명은 흔쾌히 발벗고 나서 무료 봉사를 하기로 했다.

최 대표는 "식사하는 이들도 단돈 1000원을 내고 좋은 마음으로 밥 먹고 기부도 한다고 생각하면 더 많이 찾을 것 같았다"며 "자원봉사를 해주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00원 밥상 개점 시점이 4월 말이다. 이유는 이제 다시 또 오월이 다가와서다"며 "5·18민주묘지 인근에서 식당을 한 지 꽤 오래됐는데 광주 사람들보다 외지인들이 참배를 더 많이 온다. 광주분들이 저렴한 값에 밥 한끼 하시고 산책 삼아 참배도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1000원 밥상 취지와 바람을 이야기했다.

지난 24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에 위치한 '한백년 식당'에서 손님들이 음식을 접시에 옮겨담고 있다. 해당 식당은 자립 청년 지원과 농민 쌀 소비 촉진, 5·18국립묘지 참배 활성화를 위해 매주 월요일 점심식사를 1000원에 제공하고 있다. 2023.4.29/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이날 1000원 밥상의 메인 메뉴는 돼지 묵은지찜이다. 직접 쑨 도토리묵과 상추 겉절이, 파김치, 열무김치, 콩나물무침, 고사리 나물, 콩자반 등 10첩 반상도 더했다. 재료는 모두 최 대표 밭에서 재배했거나 동네 로컬 푸드 직매장에서 공수해 온 국내산이다.

쌀값 폭락으로 인해 힘든 농민들의 쌀 판매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가래떡도 준비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소식을 들은 손님들이 속속 도착했다. 뷔페식으로 정성스레 한 가득 준비된 음식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놀란 기색이었다.

장애우 등 7명과 식당을 찾은 예그리나장애인복지센터 김요근 대표(54)는 "일반 식당에서 1만원 이상 훌쩍 넘게 받을 만큼 음식을 준비해 1000원을 내기 미안할 정도다"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른 센터와 연계해 또 찾을 생각이다. 식사 후에는 센터 관계자들과 국립5·18민주묘지 참배까지 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서구 쌍촌동에서 동료 4명과 함께 온 직장인 성계수씨(58)는 "SNS를 통해 1000원 밥상을 알게 돼 감사하고 돕고 싶은 마음에 멀리서 찾게 됐다"며 "기존에 팔던 음식처럼 너무 많이 준비해 큰 손해를 보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다"고 우려했다.

5·18 묘역 참배객과 식사를 하러 온 김범태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소장은 "묘역과 식당은 한 블럭 속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며 "광주시민뿐 아니라 외지인도 이런 공동체 모습을 보고 참배를 하게 되면 과거의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있는 더 나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4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에 위치한 '한백년 식당'에서 한 손님이 기부함에 돈을 넣고 있다. 해당 식당은 자립 청년 지원과 농민 쌀 소비 촉진, 5·18국립묘지 참배 활성화를 위해 매주 월요일 점심식사를 1000원에 제공하고 있다. 2023.4.29/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이날 다녀간 손님은 50여명으로 대부분 잔반 없이 식사를 마쳤다. 또 음식값인 1000원 대신 5만원을 넣거나 직접 준비해 온 봉투를 넣고 간 이들도 있었다.

최 대표는 "월요일마다 넉넉히 준비해 놓을테니 많이들 찾아주시라. 체력이 닿는 데까지 봉사하겠다"며 "짧은 점심시간이지만 짬을 내 기부와 함께 참배도 하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웃음 지었다.

pepp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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