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첩 반상'에 돼지 묵은지찜이 1000원…믿기지 않는 이 식당은?
"5·18 참배 발길 드물어…식사 후 산책 삼아 들렸으면"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유방암 낫게 해주면 남 위해 봉사한다고 매일 같이 빌었어요…완치해서 덤으로 사는 인생, 체력이 닿을 때까지 베풀다 갈 생각이에요."
지난 24일 오전 11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인근의 '한백년 식당'. '월요일 정기 휴무'라는 안내판이 무색하게 음식점 내부는 붐볐다.
이들은 새마을 부녀회 앞치마를 두른 채 안내, 음식 서빙, 그릇 정리 등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대표 최선희씨(70·여)는 새벽 4시부터 준비한 10첩 반상을 큰 반찬통에 옮겨담느라 분주했다. 부족한 것이 없는지 살피는데도 여념이 없었다.
영업 준비를 마친 이들은 한데 모여 자신들의 역할을 재차 확인했다. 이들이 꼼꼼하게 점검하는 건 모두 이날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서다.
한백년 식당의 정기 휴무일은 월요일이다. 그러나 최선희 대표는 이날부터 일주일에 단 한번뿐인 휴무날 점심 영업을 개시하기로 했다. 단 기존 1만~2만원대에 형성돼 있던 음식 가격은 1000원만 받기로 결정했다. 기간은 최 대표의 체력이 닿을 때까지다.
최 대표는 유방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 최근 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투병 생활 중 매일 같이 병을 낫게 해주면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부처님께 빌었다.
그는 "어떤 봉사를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했다. 헌데 내가 평생 해온 일이 음식하는 것이다"며 "완치해 덤으로 사는 인생, 여력 있을 때 다른 사람들한테 내 밥 한그릇 더 지어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 당초 무료로 식사를 제공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자립 준비 청년 등 우리 사회에서 돌봄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쌀값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의 쌀 소비를 돕고자 식사비로 1000원을 받기로 했다.
소식을 들은 진월동 새마을 부녀회원 7명은 흔쾌히 발벗고 나서 무료 봉사를 하기로 했다.
최 대표는 "식사하는 이들도 단돈 1000원을 내고 좋은 마음으로 밥 먹고 기부도 한다고 생각하면 더 많이 찾을 것 같았다"며 "자원봉사를 해주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00원 밥상 개점 시점이 4월 말이다. 이유는 이제 다시 또 오월이 다가와서다"며 "5·18민주묘지 인근에서 식당을 한 지 꽤 오래됐는데 광주 사람들보다 외지인들이 참배를 더 많이 온다. 광주분들이 저렴한 값에 밥 한끼 하시고 산책 삼아 참배도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1000원 밥상 취지와 바람을 이야기했다.
이날 1000원 밥상의 메인 메뉴는 돼지 묵은지찜이다. 직접 쑨 도토리묵과 상추 겉절이, 파김치, 열무김치, 콩나물무침, 고사리 나물, 콩자반 등 10첩 반상도 더했다. 재료는 모두 최 대표 밭에서 재배했거나 동네 로컬 푸드 직매장에서 공수해 온 국내산이다.
쌀값 폭락으로 인해 힘든 농민들의 쌀 판매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가래떡도 준비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소식을 들은 손님들이 속속 도착했다. 뷔페식으로 정성스레 한 가득 준비된 음식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놀란 기색이었다.
장애우 등 7명과 식당을 찾은 예그리나장애인복지센터 김요근 대표(54)는 "일반 식당에서 1만원 이상 훌쩍 넘게 받을 만큼 음식을 준비해 1000원을 내기 미안할 정도다"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른 센터와 연계해 또 찾을 생각이다. 식사 후에는 센터 관계자들과 국립5·18민주묘지 참배까지 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서구 쌍촌동에서 동료 4명과 함께 온 직장인 성계수씨(58)는 "SNS를 통해 1000원 밥상을 알게 돼 감사하고 돕고 싶은 마음에 멀리서 찾게 됐다"며 "기존에 팔던 음식처럼 너무 많이 준비해 큰 손해를 보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다"고 우려했다.
5·18 묘역 참배객과 식사를 하러 온 김범태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소장은 "묘역과 식당은 한 블럭 속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며 "광주시민뿐 아니라 외지인도 이런 공동체 모습을 보고 참배를 하게 되면 과거의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있는 더 나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다녀간 손님은 50여명으로 대부분 잔반 없이 식사를 마쳤다. 또 음식값인 1000원 대신 5만원을 넣거나 직접 준비해 온 봉투를 넣고 간 이들도 있었다.
최 대표는 "월요일마다 넉넉히 준비해 놓을테니 많이들 찾아주시라. 체력이 닿는 데까지 봉사하겠다"며 "짧은 점심시간이지만 짬을 내 기부와 함께 참배도 하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웃음 지었다.
pepp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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