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못한 우크라전 중재…시진핑, 해결사 될까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본격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재 외교에 나서면서 15개월 이어지고 있는 전쟁의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시 주석은 지난 26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1시간 가량 전화 통화를 했다. 지난해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처음이다. 일각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통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한 달 정도 늦어졌다. 그 사이 프랑스와 유럽연합(EU), 브라질 등 정상과 만나 지지 세력을 모으며 여건을 조성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는 다르다"했지만 '평화·대화' 원칙만
양국이 밝힌 시 주석과 젤렌스키 대통령 통화 내용을 보면 의제는 '러·우 전쟁 해법'과 '중·우크라 관계 강화' 등 2가지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통화에서 '평화와 대화'를 재차 강조했다.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중국은 시종일관 평화의 편에 서 있으며 중국의 핵심 입장은 대화를 통해 평화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를 자신들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시 주석은 또 리후이 유라시아 문제 특별대표를 우크라이나와 관련 국가에 특사로 파견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 모든 당사국과 심도 깊은 소통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리 대사는 2009년~2019년 주러시아 중국대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통화에서 "주권과 영토 보전을 회복해야 한다"면서 "크름반도를 포함해 1991년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경 내의 모든 영토"를 언급했다. 그는 "이것은 유엔 헌장의 목적 및 원칙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2월에 제안한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제언' 12가지를 비집고 든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반환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을 포함한 '공인된 국제법'은 철저히 이행돼야 하고 각 국의 주권, 독립 및 영토 완전성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확인한 바 있다.
이 외에 시 주석은 양자 협력 강화도 강조했다. 시 주석은 "국제 정세가 어떻게 전개되든 중국은 우크라이나와 함께 호혜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길고 의미 있는 통화였다"면서 "양국 관계 발전을 강하게 촉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中 지지세력 모으기…제3의 '중재국' 틀도 주목
시 주석이 3연임을 확정한 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중국을 찾았다. 또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온 뒤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방중에 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유럽연합(EU) 행정부격인 집행위원회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함께 베이징을 방문했다. 이어 중립적인 입장을 표방해 온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중국을 다녀왔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샤를 미셸 EU정상회의 상임의장도 방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좋은 경찰, 나쁜 경찰' 전략에서 '좋은 경찰' 역할을 맡았던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어 귀국 후 '전략적 자주성(자율성)'과 '유럽 주권' 발언을 연일 쏟아냈다. 유럽은 서방의 균열을 우려하며 비판했지만, 중국에겐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다.
또 주목되는 건 마크롱 대통령이 에마뉘엘 본 대통령실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협력해 향후 평화협상 기반이 될 수 있는 틀을 구축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를 미국 측에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관련 보도에 대해 "프랑스 측에게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룰라 대통령이 제안한 제3의 '중재국' 모임 구상도 관심을 끈다. 브라질은 이후 자국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이 구상을 다시 제안했다. 서방과의 대결 일변도에서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국가들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봄 대반격'을 앞두고 사태가 더욱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려 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와 관련 러시아의 준군사조직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28일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에 잘 훈련된 부대를 보내고 있다"면서 반격 시점이 러시아의 국경일인 전승절(5월9일)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영국 일간 가디언은 27일자 보도에서 이번 통화가 갑자기 이뤄진 것은 루샤예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의 망언 때문이란 분석을 내놨다. 옛소련 독립국들의 주권을 부정한 발언이 발트 3국을 포함, 유럽 전역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이를 진화하려 했다는 해석이다.
'중립'적인 위치를 강조하며 중재를 시도하는 시 주석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충자안 싱가포르대 정치학과 부교수는 "러시아의 야망과 그들에 대한 중국의 지원(가능성)에 대해 이미 상당한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루 대사의 발언은 중국이 러시아의 침략에 지속적으로, 심지어는 더욱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종전을 위한 핵심 요건을 고수하고 있어 중재안이 빠른 시일 내에 도출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결국 지금의 꽉 막힌 국면에 물꼬를 틔우기 위해선 어느 한쪽의 전향적인 양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jwsh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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