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세월호가 이어준 한일 부부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를"
"꿈의 길에 꼭 필요한 파트너이자 길잡이"
(부천=연합뉴스) 임지현 조서연 인턴기자 = "제가 먼저 말을 꺼냈던 거 같아요. 결혼하자고. 이 일을 계속하려면."
2019년 7월, 경기도 부천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김선진(40)씨와 일본 비영리단체 '빌리지네이션' 대표인 무라마쓰 히로타카(村松広貴·46)씨가 혼인 신고를 했다. 그 흔한 연애 고백도, 반지와 함께하는 청혼도 없었다.
미술학원 근처 김밥집에서 "잘살아 보자"며 의기투합한 뒤 그들만의 독특한 신혼이 시작됐다.
부부의 첫 만남이 이뤄진 계기는 2014년 세월호 참사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김 씨는 재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도 교육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술 교육에만 전념하던 김씨가 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재 교육을 해주기로 마음먹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재난 발생 시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막막함을 느낀 김씨는 문득 SNS로 소통하고 지내던 일본의 비영리단체 빌리지네이션 대표인 무라마쓰 히로타카씨를 떠올렸다.
2013년 말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빌리지네이션의 활동사진을 본 김씨가 관심을 갖고 인사를 하며 시작된 인연이었다.
빌리지네이션은 2011년 2만 4천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설립되어 방재 안전 교육 등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처음 소통하기는 어려웠다. 김씨는 "일본어 인사말을 배우고 용기 내서 첫 통화를 했는데 돌아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으니 당황해서 꺼버렸다"며 "그날부터 일본어를 배우고 번역기를 써가며 소통하다가 무라마쓰씨가 방재 교육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전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방재 교육을 도와달라는 김씨의 부탁에 무라마쓰씨는 그해 6월부터 흔쾌히 한국으로 찾아와 아이들에게 방재 교육을 해줬다.
무라마쓰 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죽지 않아도 될 학생들이 많이 죽었다는 소식을 일본 뉴스로 접했다"며 "방재 교육이 한국에 필요하다고 생각해 아이들을 위해 입국했다"고 떠올렸다.
둘 중 누구도 사귀자는 고백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공유하고 같이 일을 했을 뿐이다.
김씨는 어린이용 안전 교육책을 읽으며 쉽게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혔고, 무라마쓰씨는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 한국을 방문해 방재 교육을 직접 맡거나 김씨에게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줬다.
함께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4.16 기억 교실에 가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거나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보라매 안전체험관에서 재난 대처 능력을 기르는 등 방재 교육을 위해 같이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렇게 방재 교육을 함께 하길 5년째, 김씨는 가랑비 옷 젖듯 "이 사람 안 보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 씨는 "남편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 좋았다. 아이들이 그린 낙서를 핸드폰에 붙이고 다니고, 방재 교육할 때도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재난을 헤쳐 나가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며 "밥을 먹으면서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앞으로도 방재 교육을 같이하려면 결혼을 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고 회고했다.
무라마쓰씨도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의 길에 꼭 필요한 파트너이자 길잡이"라는 생각으로 결혼에 찬성했다.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든 일상에 결혼이 추가됐을 뿐이다. 부부가 된 뒤에는 함께 한국에 살며 수시로 학원 아이들에게 방재 교육을 했다.
부부는 2018년부터 방재 교육뿐만 아니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초를 응원하는 한일 교류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김씨가 운영하는 미술학원 학생들이 미나미산리쿠초 병원으로 마을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을 보내기도 했고, 코로나 시기에는 "코로나에 지지 말고 힘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는 코로나로 닫혔던 인천-센다이 노선이 28일부터 운항을 재개함에 따라 이를 축하하는 아이들의 그림을 5월 31일까지 센다이 공항 국제선 도착 로비에 전시할 예정이다.
축하 그림엔 "한국에 놀러 오세요" "일본 초밥을 먹으러 가고 싶어요" 등 아이들이 일본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있다.
김씨 부부는 "학원 학생들이 지진 피해 회복을 응원하고 한일 교류를 바라며 오랜 기간 준비한 그림"이라며 "작은 힘을 모아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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