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의 '라스트 댄스'... "7월 월드컵 간다면 꼭 골 넣고 싶어요!"

강은영 2023. 4.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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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11일 잠비아와 평가전 '3골 2도움' 맹활약
37세 노장이지만 어린 후배들과 허물없이 지내
오랜 방황 등 우여곡절..."좋은 경험했다고 생각"
여자프로축구 서울시청의 박은선이 19일 서울 은평구의 한 트레이닝센터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최주연 기자

대한민국 축구사(史)에서 박은선(37·서울시청)이란 이름은 만감을 교차하게 만든다. 참으로 우여곡절 많은 선수 중 한 명이었고, 현역 선수에게 가장 만개한 나이라는 스무 살 전후를 잃어버린 선수여서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박은선의 이름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불현듯 그가 다시 피어올랐다. 그것도 당당하게 여자 축구대표팀 소속 스트라이커로.

박은선은 지난 7일과 11일 한국에서 열린 잠비아와의 평가전에서 '3골 2도움'으로 부활을 알렸다. 2차전에선 멀티골(2골)을 터뜨려 TV 중계를 본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잊혔던 '천재 스트라이커' '국보급 스트라이커'의 재림이었다.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의 한 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박은선은 편안한 얼굴이었다. 평가전 이후 쏟아지는 관심이 즐거운 듯했다. 박은선은 "요새 많이 (언론에서) 찾아주시고 관심 가져 주셔서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은선은 잠비아와의 2차전에선 거의 풀타임을 소화했다.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려가긴 했지만 파격적인 기용이었다. 박은선조차도 "솔직히 처음엔 기대도 안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1차전 이후 대표팀 미팅을 하고 나서 2차전에선 선발로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됐다. 엄청 좋았다"며 "대표팀에서 선발로 출전한 지 꽤 오래됐을 거다. 그래서 뜻깊었고, 콜린 벨 감독님께 감사했다"고 당시 마음을 떠올렸다. 박은선은 2차전에서 다리와 머리로 한 골씩 장식했고, 벨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냈다.

박은선은 지난해 벨 여자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7년 만에 부름을 받고 얼떨떨했다. 2015년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단 이후 대표팀은 멀게만 느껴졌다. 한때 은퇴를 준비하던 그에게 명확한 목표가 차올랐다. "나의 3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월드컵에 꼭 나가보자, 꼭 골을 넣어보자!" 오는 7월 열리는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이다.


벨 감독과 후배들이 주는 신뢰, 그리고 자신감

여자프로축구 서울시청의 박은선이 19일 서울 은평구의 한 트레이닝센터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다. 최주연 기자

박은선은 2003년 미국월드컵과 2015년 캐나다월드컵에 출전했지만 골을 기록하진 못했다. 부상으로 실력 발휘를 못해서다. 그래서 올해 월드컵에 나가게 된다면 골 욕심을 내 볼 작정이다. 그는 "축구선수가 3번이나 월드컵에 나가는 건 대단한 일이기에 감사하면서도 각오를 다지게 된다"며 "제가 무언가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여자 축구가 발전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37세라는 나이도 박은선에게 장벽이 되진 않는다. 체력적인 부분도 문제 될 게 없단다. 벨 감독의 고강도 훈련을 통해 체력을 끌어올려 발산하는 법을 배운 덕이다. 또 잠비아와의 2차전에선 벨 감독의 전술 덕에 체력 부담도 많이 덜게 됐다. 박은선은 "벨 감독님께서 전술적으로 많이 커버해 주신다. 공격할 때도 최대한 공을 소유하고 있다가 동료들이 오면 패스하거나, 포스트 플레이(장신 선수를 상대 골대 앞에 배치해 득점을 노리는 공격 방법)하는 역할을 많이 주문하셨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손)화연(26·인천현대제철)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나 때문에 엄청 많이 뛰어다녔으니까. 화연이가 나를 좀 더 돋보이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고 후배를 치켜세웠다.

박은선(오른쪽)이 11일 경기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잠비아와의 2차전에서 팀의 다섯 번째 골을 성공시키자 주장 김혜리 등 후배들이 달려와 끌어안고 있다. 용인=뉴스1

대표팀에선 김정미(39·인천현대제철) 다음으로 고참인 그는 후배들과 막역하게 지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할 때가 종종 있다고. "대표팀에서 천가람(21·화천KSPO)과 자주 생활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제가 자꾸 조언을 하게 되더라고요. (천)가람이는 '좋은 말 해주시는 거다'고 말하지만 잔소리처럼 들리거나 세대 차이 느낀다 할까 봐 걱정됐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박은선은 후배들에게 든든한 '큰언니'다. 평가전에서 그가 골을 넣을 때마다 조소현(35·토트넘) 이금민(29·브라이턴) 김혜림(33·인천현대제철) 천가람 등이 달려와 매달리곤 했다. 그때마다 박은선은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박은선은 "골을 넣으면 모든 사람들의 집중을 받게 되는데, 후배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오는 게 보이더라. 약간 쑥스러워서 얼굴을 가리고 웃었는데 이걸 세리머니로 보시는 분들도 있더라"고 털어놨다.


젊은 날의 우여곡절..."내가 선택했기에"

여자프로축구 서울시청의 박은선이 19일 서울 은평구의 한 트레이닝센터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박은선의 프로 데뷔는 순탄하지 않았다. 200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시청의 유니폼을 입었으나, 고교 졸업 후 대학을 거치지 않고 실업팀에 입단했다는 이유로 3개 대회 출전 정치라는 징계를 받았다. 앞서 2003년 당시 국내 최연소(17세) 국가대표로 발탁돼 그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선수권대회에서 맹활약하던 유망주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오랜 방황 끝에 2012년 서울시청에 복귀한 그는 이듬해 또 한번 눈물을 쏟아야 했다. 그해 WK리그 올스타전에 뽑히고, 이듬해 득점왕(19골)에 오르며 활약하자 구단들은 딴지를 걸었다. 난데없는 성별 검사를 요구하며 박은선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는 등 당시 축구계의 민낯이 드러나며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다.

박은선은 우여곡절 많았던 과거를 묻자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입을 뗐다. "그때를 떠올리면 좋은 경험했다 생각해요.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20년째 태극마크를 달았다고 아시는 분들이 있는데 중간에 안 한 게 너무 많아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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