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튀김과 라면을 든 아내, 통장은 0원…간병·일을 병행한 남편의 기록[책과 삶]
아내는 서바이버
나가타 도요타카 지음·서라미 옮김 | 다다서재 | 180쪽 | 1만5000원
‘아내’의 섭식장애가 나타난 건 2002년이다. 이듬해 섭식장애 때문에 저칼륨혈증에 걸렸다. 2011년 알코올 의존증이 악화했다. 급성 간염도 발병한다. 2015년 해리성 장애가 심해졌고, 다음증도 반복됐다. 2019년 알코올성 인지저하증(치매) 판명을 받는다.
아사히신문 기자 나가타 도요타카의 이 르포는 아내 병력을 정리한 ‘연보’로 시작한다. 책은 병명과 병명 사이 질병의 고통과 간병의 괴로움에 관한 기록이다.
한 손엔 닭튀김, 다른 손엔 라면을 든 아내
2002년은 결혼 4년 차 때다. 나가타는 34세, 아내는 29세다. 아내는 한 손에 닭튀김을 든 채 다른 손으로 라면을 끓였다. 엄청난 양의 음식을 위에 구겨 넣었다가 화장실로 가 전부 토하는 일이 밤낮없이 계속됐다. 음식을 먹을 때면 아내는 “소중한 시간이니까 방해하지 마”라고 했다.
아내는 두통, 복통, 권태감, 발열에 시달렸다. 소리 지르고, 울고, 비명을 질렀다. 안정을 찾으면 미안함 때문에 괴로워했다. “내가 있으면 당신이 불행해져.” 자책하며 다시 과식했다. 악순환은 끝날 기미가 없었다.
2007년 아내가 아는 남자에게 수년간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털어놓는다. 당시 아내는 밤마다 집 근처를 쏘다니며 ‘죽을 자리 찾기’라는 걸 했다. 어릴 때도 성폭행을 당했다.
2011년 알코올 의존증이 악화하자 과식은 줄었지만, 저영양 문제가 불거졌다. 아내 몸무게는 24~28㎏을 오갔다. 아내는 “25㎏이 넘으면 뚱보야. 살을 빼야 해”라고 우기곤 했다. 술에 취해 넘어지는 탓에 타박상과 골절상이 끊이지 않았다. 2019년 아내는 “내가 죽어서 당신을 편하게 해줄게”라며 여러 차례 베란다로 나가 난간에 발을 걸치고 뛰어내리려 했다. 그해 아내는 ‘대퇴골두 괴사증’에도 걸려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2021년까지 2년 동안 휠체어를 타야 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3251010001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3241606015
통장 잔액은 ‘0’, 무력감과 불안에 시달리는 남편
2002년 대형 쓰레기봉투에 도시락과 반찬 용기가 가득 찼다. 탄산음료 페트병도 한가득 놓였다. 아내는 매일 5000~1만5000엔어치 먹을거리를 카드로 긁었다. 잔액이 ‘0’이 되기도 했다. 몽롱한 상태에서 고가의 물건을 홈쇼핑에서 주문하면, 취소와 반품 절차를 밟았다.
살림은 파탄 직전이었다. 전기, 수도부터 아꼈다. 대출 상환에 쫓기며 ‘간병 퇴사’가 현실로 다가왔다. 은행 대출이 힘들어져 사채를 써야 할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일 병행도 힘들었다. 아내 증상이 나빠지거나 병원에 입원할 때면 주요 취재를 빠지거나 동료에게 맡겨야 했다. 돈이 없어 후배 기자에게 밥 먹자고 권하지도 못했다.
아내는 치료받기를 거부했다. “쇠창살 달린 병원에 나를 가두려고?” 약을 먹고 괜찮아졌다가 다시 감정이 격해지면 약에 세제를 묻혀 버렸다. 폭력도 행사했다. 몇 년째 머릿속에 떠오르면 지워버리곤 했던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이제 이혼하자. 당신을 사랑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둘 다 죽을 거야.” 만취한 아내에게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은 엉망이 됐어”라고 모진 말을 하며 벽에 의자를 던진 적도 있다.
눈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렸다. 아내가 병원에 ‘보호입원’할 때면 잠시 해방감을 느끼다가도 곧 죄책감에 휩싸였다. 퇴원할 때면 불안해졌다. 나가타는 항불안제를 복용해야만 했다. “20년 동안 아내의 죽음을 의식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삶의 고난을 과식과 구토로 넘겨온 아내
아내 몰래 보건소와 공적 심리상담기관, 여성지원센터, 정신과 클리닉을 찾아다니며 상담을 받았다. 환자를 대신해 상태를 보고하고, 조언을 받는 ‘대리 진료’였다. 나가타는 아내 질병과 고통을 공부하며 이해하려 했다.
섭식장애 환자의 특징인 ‘뚱뚱해지고 싶지 않다’라는 강렬한 강박관념과 체중에 대한 집착을 알게 됐다. 아내는 “먹고 토하는 일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방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섭식장애는 “괴로운 심정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을 때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곳.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는 곳.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비밀의 장소”였다. 아내는 “삶의 고난을 과식과 구토”로 넘겨온 것이다.
아내의 아버지는 “기분이 나쁘면 폭력을 쓰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딸 얼굴과 몸의 상처를 못 본 척했다. “너만 없으면 이혼할 텐데”라며 딸을 장애물처럼 여겼다. 고등학생 시절 어느 날 하굣길에 “뚱뚱해”라고 말하는 어느 남학생의 목소리를 듣고는 자기 다리를 보고 한 말이라고 여기고 살을 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내의 첫번째 결혼 상대는 지배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언짢은 일이 생기면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때도 먹고 토하는 일로 자신을 달래며 하루하루 버텼다.
나가타는 “어린 시절의 학대, 어른이 되어 입은 성 피해. 그런 고난을 이겨내려면 과식이나 술 같은 ‘진통제’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굶어 죽기 직전인 상황에서는, 누군가 내민 주먹밥에 유해 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일단 먹어야 살 수 있다. 그것과 같다”고도 했다.
아내는 유년기에 겪은 폭력 피해와 섭식장애는 의사에게 비밀로 할 것을 조건을 내걸고 정신과나 심료내과(마음을 치료하는 내과) 진료에 응한다.
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205131611005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 빛을 비추고 싶다
나가타는 간병과 일을 병행했다. “취재하고 기사 쓰는 일을 계속하지 않았다면 나는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가 문제의식을 벼려주기도 했다. 그전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 보였다. 정신장애인과 함께 사는 가족의 절망을 절실히 느꼈다. 나가타도 아내가 정신병을 앓는다고 입원을 거부당하는 일도 겪었다. 다중채무 지옥과 불법 사채에 관한 기사에도 눈길이 갔다. 그는 “끔찍한 환경에 처한 저들도 나처럼 감정이 있고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고 말한다.
빈곤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가타는 취재로 알게 된 사회운동가 유아사 마코토의 말을 인용한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실태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이 자기 책임론을 허용하며, 그런 까닭에 더욱더 사회에서는 빈곤을 보기 어려워지고, 그 때문에 자기 책임론이 더욱 유발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나가타는 치료받는 자신을 필사적으로 숨겨온 아내의 고통이나 자신의 간병의 고통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고 깨닫는다. 그는 정신장애인에게 놓인 장벽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견고”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스민 편견과 차별 감정을 당사자가 내면화하는 일”이 가장 무서운 일이라고 했다. 아내는 “저런 사람들(정신장애인)과 한데 엮지 마”라고도 했다. 나가타는 “정신장애도 생활보호도 숨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면 당사자는 안심하고 도움을 청할 수 없다. 언론은 경각심을 갖고 사건의 배경에 깔린 빈곤과 차별, 사회보장 미비 등에 취재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나가타는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 빛을 비추고 싶어 했다. 다중채무, 생활보호, 의료난민 같은 빈곤과 격차 문제를 열심히 취재했다. 섭식장애 기사도 썼다. 2012년 2월엔 섭식장애를 앓는 여성 대학생의 취업 활동 등을 그린 ‘그 여자에게 생긴 일: 터널의 저편’을 내보냈다.
‘지방에 사는 비정규직 여성’이었다면
책은 아내의 투병기이자 남편의 간병기다. 나가타는 ‘아내와 자신이 겪은 악전고투 보고’라고 표현한다. 다른 간병 가족을 위해 여러 조언도 실었다. 책은 또 일본 의료와 복지 시스템에 대한 비판서이자 빈곤 문제에 관한 취재기이기도 하다.
여러 동료가 도왔다.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간병을 위해 부서도 조정해줬다. 나가타는 책 내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도시에 사는 정규직 남성’이라는 제한된 시각에서 본 광경일 뿐입니다. 만약 ‘지방에 사는 비정규직 여성’이 정신장애 남성을 돌보는 형태였다면 전혀 다른 광경이 보였을 것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의료기관과 복지서비스가 더 적고, 쓸 수 있는 돈과 시간은 더 제한적이며, 환자가 가하는 폭력은 훨씬 무거웠을 것입니다. 지금 이 사회에는 후자의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아내는 2019년 퇴원한 뒤 잘 지낸다고 한다. 책엔 유튜브 ‘먹방’과 아이돌 영상, 미식 만화를 즐기는 아내 근황을 전한다.
책은 아내 허락을 받고 썼다고 했다. 아내는 “꼭 써줘. 나처럼 고통받는 사람을 줄이고 싶어”라며 승낙했다. 나가타는 아내의 인지저하증을 고려해 반년 동안 계속 써도 되는지 물었다. 아내가 다시 말했다. “전부 쓰라니까.” 책에 앞서 동명의 기사가 2018년 1~6월 아사히신문 디지털판에 나왔다. 4년간 보완했다. 책은 올해 1월 빈곤저널리즘상을 받았다.
책에 나온 아내 근황은 2021년 5월 인공관절 수술이 마지막이다. 다다서재 출판사를 통해 지금 근황을 물었다. “가벼운 알코올성 인지저하증(치매) 상태는 이어진다. 본인 의지로 술을 끊은 지 3년이 넘었다.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며 잘 웃고 지낸다. 아이돌 영상과 먹방도 계속 즐겨본다. <아내는 서바이버> 일본어판 출간 때는 서점에 직접 가서 잘 진열됐는지 확인했다.” 나가타가 책 맺음말 마지막에 아내와 함께 쓴 책이라며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같이 살자.”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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