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은 어떻게 ‘도깨비’에서 영감을 얻었나

이정우 기자 2023. 4. 29.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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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글로벌 콘텐츠의 모티프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란 영화가 있다. 어릴 적부터 1950~60년대 미국 영화를 동경했던 두 친구가 영화인으로서 좌절을 겪는다는 내용이다. 1980~90년대엔 홍콩 영화 열풍이 불었다. 그 시절 세대라면 바바리 코트에 성냥을 입에 꼬나물며 멋 부렸던 순간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 그런데 요즘은 ‘헐리우드 키드’나 ‘홍콩 영화 로망’이란 말 자체가 생소해졌다. 극장가를 주름 잡던 외화의 자리를 한국 영화가 확실히 차지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더구나 2010년대 이후엔 외국의 유명 감독들이 한국 영화와 콘텐츠에 크게 주목하는 것은 물론, 영감을 떠올리거나 구체적인 소재를 얻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며 세계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최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5월 3일 개봉)으로 내한한 제임스 건 감독이 “단언컨대 지난 10년 동안은 한국 영화들이 영화적으로 베스트였다”고 말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특히 “1960년대엔 프랑스 누벨바그, 70년대엔 미국의 실험 영화, 90년대엔 홍콩 영화가 영화계를 이끌었다”고 언급했다. 2010년대 한국 영화들을 영화사의 한 사조로 분류하며 최고의 자리라고 치켜세운 것이다. 실제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감독 등이 부상한 2000년대 초부터 20년간을 ‘코리안 르네상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또 이번 영화를 연출할 때 한국 영화 ‘악녀’(2017)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악녀’는 김옥빈 주연의 강렬한 여성 액션 영화로 서사는 다소 약하지만, 감각적인 액션 시퀀스로 주목받았다. 이번 영화 속 가모라(조 샐다나)나 네뷸라(카렌 길런)의 액션들에서 ‘악녀’에서 영향 받은 부분을 발견하는 것은 영화를 보는 숨은 재미 중 하나일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흥행 1위 기록을 깨고, 이제는 500만 관객 돌파를 향해 달려가는 ‘스즈메의 문단속’에도 한국 콘텐츠의 영향이 자리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지난 달 8일 내한 간담회에서 재난을 막기 위해 막아야 하는 영화의 핵심 모티브인 ‘문’이 한국 드라마 ‘도깨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털어놨다. 주인공 김신(공유)이 공간을 이동하는 매개체였던 ‘도깨비’ 속 ‘문’은 재난을 막고, 과거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스즈메의 문단속’의 ‘문’으로 탈바꿈했다.

K-콘텐츠는 캐스팅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일본 영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고 아이유를 ‘브로커’(2022)의 미혼모 ‘소영’ 역으로 캐스팅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나의 아저씨’를 보고 이지은이란 배우에게 푹 빠졌다. 한없이 절제된 연기를 드라마 전편에 걸쳐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놀라웠다”고 밝혔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클로즈’(26일 개봉)에선 박찬욱 감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돈트 감독은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의 초창기 작품부터 봐 온 오랜 팬”이라고 말했다. 두 소년의 유년시절 흔적들이나 방의 빨간 벽지 등에서 감각적인 박찬욱 표 미장센의 영향이 엿보인다. 돈트는 아울러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을 최근 10년 이내 최고 영화라고 밝혔다.

‘유전’, ‘미드소마’ 등 차세대 공포 명장으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아리 에스터는 “한국에서 태어났어야 했다”고 농담할 정도로 한국 영화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감독이다. 그는 ‘곡성’을 최근 10년을 통틀어 최고의 호러 영화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를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에스터는 2019년 세계적 영화 잡지인 ‘필름코멘트’에 “장르를 결합한 천재성”이라며 ‘기생충’ 리뷰를 직접 썼다. 그는 해당 리뷰에서 “100주년을 맞은 한국 영화가 지난 20년간 눈에 띄게 지속적인 르네상스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울러 뉴욕타임즈 등 각종 인터뷰를 통해 작품을 만들 때마다 한국 영화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하며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할 때 한국 영화를 참고한다고 말해왔다.

이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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