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억제는 뭘 억제해요? 북핵 위협인가요 한국 핵무장인가요 [박수찬의 軍]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핵공격을 저지하는 다양한 수단을 일컫는 군사용어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핵협의그룹(NCG) 창설과 강화된 확장억제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핵과 전략무기 운영 계획 정보 공유, 한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핵전력을 결합한 공동 작전 기획·실행 방안 협의, 핵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시뮬레이션 훈련과 탄도미사일 탑재 전략핵잠수함(SSBN) 한반도 전개 등이 포함됐다.
워싱턴 선언과 관련해 한국은 북한 핵공격에 대한 미국의 핵 대응 관련 정보 공유, 발언권 및 훈련 확대를 통한 확장억제의 실효성 강화를 강조했다. 1960년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이후 처음으로 핵무기 사용 협의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예전보다 진전된 부분이 있다.
미국은 “한국의 불안감을 해소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의 핵무장에 선을 그엇다. 미국 확장억제 제공과정에서 한국의 참여를 확대했고, SSBN 한국 파견을 포함한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 강화를 통해 한국의 불안도 덜어준다는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4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확장억제와 관련해 미국을 신뢰할 수 있다는 매우 명확하고 입증할 수 있는 신호를 보낼 것”이라면서도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비확산 의무를 잘 이행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북한 핵위협이 고도화되면서 국내에서는 핵무장이나 미군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국 내 일부 전문가들도 “한국의 핵무장은 한국이 결정하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선택은 확장억제였다. 이를 위해 1980년대 이후 없었던 전략핵잠수함 한국 파견도 결정했다. 한국의 핵무장 허용이 미칠 파장을 심각하게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으로부터 여러 차례 방위공약을 약속받았던 한국이 독자 핵무장의 길을 걷는다면, 미국이 제공하는 핵과 재래식 전력에 의한 방위공약을 믿을 수 없게 됐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핵무장은 인접국 일본의 핵개발을 자극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독자 핵무장이나 핵공유론이 종종 제기되어 왔다. 일본이 핵무장을 하면, 동아시아에서 대만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핵무기를 갖게 되는 셈이다.
동아시아의 핵확산은 이란 핵위협에 직면해 있으나 한국보다 낮은 단계의 안보공약을 제공받는 사우디 등 중동 내 미국의 우방국들이 핵무장을 추진하는 계기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우크라이나가 냉전 종식 이후 핵무기를 스스로 포기했다가 러시아의 침공에 직면했고, 전쟁 발발 직후에는 러시아의 핵위협에 시달리면서 핵 비확산에 대한 회의적 견해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같은 국면에서 한국의 핵무장은 세계적 핵확산으로 번질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이는 미국 주도 NPT 체제의 종말을 의미한다.
워싱턴 선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SSBN의 한반도 전개다.
핵 공동기획 등을 위한 시뮬레이션과 한미 전략사령부간 도상훈련이 실질적 의미가 더 있지만, 북한 핵위협에 대한 한국 내 불안을 해소하고 확장억제를 과시해 한국 내 핵무장론을 불식시키는 상징적 의미로는 SSBN의 효과가 더 크다.
미군의 유일한 SSBN인 오하이오급(1만8000t)은 사거리 1만2000㎞의 트라이던트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24발을 탑재한다. 다탄두 미사일인 트라이던트Ⅱ는 종류에 따라 한 발에 최대 14개의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트라이던트Ⅱ에 탑재되는 W76-2 저위력 핵탄두는 북한 핵위협에 맞설 전략무기로 꼽힌다. 정확도가 높고 부수적 피해가 훨씬 적어 미국이 실제로 쓸 수 있는 핵무기다.
김정은 정권의 붕괴 위험을 피하고 한미 연합군의 북상을 저지하고자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에 전술핵을 탑재, 한반도 남부의 군사시설이나 항만, 공항 등을 공격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중국, 러시아와의 핵 경쟁에 초점이 맞춰진 미국 전략핵무기으로는 북한 전술핵에 맞대응이 어렵다. 사용한다면 북한은 ICBM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핵·미사일로 맞설 것이고, 이는 전쟁의 확대로 이어진다.
저위력 핵탄두가 있다면, 북한 전술핵과 비슷한 위력으로 보복을 감행할 수 있다. 전장이 한반도로 제한되고, 북한이 미국의 보복 위험을 의식하도록 압박하는 것도 가능하다.
트라이던트Ⅱ를 운용하는 SSBN은 저위력 핵탄두 위력을 극대화한다. 전략폭격기나 스텔스전투기는 탑재 후 이륙해 일정 거리를 비행해야 한다. 반면 트라이던트Ⅱ는 명령 하달 즉시 미국 서해안에서 발사, 최단시간 내 북한에 도달할 수 있다.
저위력 핵탄두가 어느 정도 위기에서 쓰일지도 불확실하다. 트라이던트Ⅱ가 발사되면 적국은 이 미사일에 실린 핵탄두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 위력과 종류를 모른다. 실제 쏜 것이 저위력 핵탄두인데 북한이 오인해서 전략핵무기로 반격하면, 대규모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같은 위험을 방지하려면 핵무기 사용 조건을 높여야 한다. 이는 확장억제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공약이 한국 내 여론을 달래는데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박주화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이 지난달 공개한 ‘핵무장을 원하는 국민 인식의 세 가지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2021년 12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8세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핵무장 이유로 북한 위협을 지목한 응답자는 23%, 북한 이외의 위협 대비는 39%, 한국의 국제적 위상 강화는 26%였다.
미국 안보공약을 믿는데도 핵개발을 지지하는 국민의 심리는 ‘국가안보에 필요한 옵션은 다 갖춰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확장억제가 국민 불안 해소에 한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핵개발과 운용 개념 등의 개발에 총력을 쏟은 것처럼 한국이 미국보다 더 절실하게 확장억제의 실효성 향상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북핵 억제도 한국 내 핵무장론 저지도 쉽지 않다. 정상회담 직후 정부와 군 당국의 주도면밀한 정책 수립과 집행이 필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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