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주장하지 않고 포용하는 와인’ 구스타브 로렌츠 리슬링 뀌베 파티큘리에
식탁의 주연(主演)은 술일까 음식일까. 술을 마실 때 안주를 찾는 것처럼, 음식에도 그에 걸맞는 반주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음식에 맞는 술을 골라야 하는지, 혹은 술에 맞춰 음식을 차려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제각각이다. 와인을 식사 때마다 즐기는 프랑스에서도 이 난제에 대한 대답은 엇갈린다.
프랑스에서는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마리아주(Mariage)’라고 부른다. 결혼을 뜻하는 프랑스어 단어다. 음식에 꼭 맞는 와인을 고르는 일이 결혼처럼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대다수 소비자는 붉은 고기가 들어간 요리에는 레드 와인을, 생선요리에는 화이트 와인을 고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조리법이 다양해지고, 이국적인 향신료와 소스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레스토랑이 늘어나는 시기에는 도리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만약 그날 마신 와인이 그날 먹는 음식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 식사는 와인과 음식의 ‘불행한 결혼’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모처럼 마음먹고 큰 돈을 내고 산 와인일지라도 그저 본전 생각만 날 것이다.
그렇다고 와인과 음식과의 조화를 포기하고 아무 와인이나 고르기도 어렵다. 존재감이 미미한 와인을 고르면 저녁자리에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일본이 낳은 세계 최고의 소믈리에이자 동양인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소믈리에협회장 자리에 올랐던 신야 타사키(田崎 真也)는 “요리와 와인의 궁합에서 키 포인트는 향기”라고 본인 비법을 밝혔다.
와인은 기본적으로 향을 중심으로 즐기는 음료다. 와인에서 뿜어져 나오는 주된 향은 기본적으로 과일에서 나온다. 그 과일 향과 저녁자리 메인 요리가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면 저렴한 와인일지라도 마리아주만큼은 돋보이는 특별한 만찬이 될 수 있다.
구스타브 로렌츠(Gustave Lorentz)는 프랑스에서도 유명한 미식(美食)의 고장 알자스에서 만드는 와인이다.
알자스는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단편 소설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한 프랑스와 독일 사이 국경 지대다. 이 지역은 프랑스 문화와 독일 문화가 합쳐져 그만큼 독특하고 심도있는 음식 문화가 발전했다. 뒤로는 보주(Vosges) 산맥을, 동쪽으로는 라인강으로 이어지는 입지 덕분에 유럽 각국에서 다양한 식재료가 몰려든 덕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같은 산악지형 마을에, 인구는 고작 190만명 남짓한 이 지역에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은 지난해 29개가 나왔다.
구스타브 로렌츠는 이런 유명 레스토랑에서 만드는 알자스 지역 음식에 곁들이기 좋은 와인을 만든다. 양조 단계부터 자기 주장이 강한 와인보다 음식을 감싸 안을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와인을 추구한다.
프랑스의 훌륭한 화이트 와인들은 음식이 없어도 그 자체로 빛이 난다. 이런 와인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가격도 비쌀 뿐 더러, 생산량도 적어 매일 이어지는 저녁자리에서 자주 마주치긴 불가능하다.
그래도 혹시나 나타난다면 입맛을 돋우는 산미(acdity)와 함께 화려한 과실향이 피어올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유명 산지의 고가 화이트 와인들은 코르크를 따자마자 어느 지역인지 알 수 있을 만큼 뚜렷한 개성을 보여준다.
문제는 의외로 이런 훌륭한 와인들과 평범한 음식들이 상극(相剋)인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훌륭한 와인의 상징과도 같은 풍성한 과실향 혹은 참나무통 숙성에서 오는 녹진한 효모향이 너무 세게 피어 오르면 지나친 자극에 후각이 지치기 쉽다.
구스타브 로렌츠는 저녁자리 내내 음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푸드르(foudre)라고 부르는 거대한 참나무통을 사용한다. 보통 전 세계적으로 와인을 숙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참나무통에는 와인이 200리터 남짓 들어간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는 225리터가 들어가는 ‘바리크’를, 부르고뉴 지방에선 228리터가 들어가는 ‘피에스’를 선호한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간혹 ‘혹스헤드’라는 300리터짜리 참나무통을 쓰기도 한다.
구스타브 로렌츠에서 사용하는 참나무통은 이보다 35배 정도 더 크다. 무려 7800리터가 들어간다. 눕혀 놓은 참나무통 하나가 사람 키보다도 클 정도다. 이 거대한 참나무통 가운데 일부는 사용한 지 80년이 넘었다. 구스타브 로렌츠는 1938년에 만든 푸드르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푸드르를 사용하는 효과는 와인에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크고 오래된 참나무통을 사용해 숙성하면 와인에 나무향은 거의 입혀지지 않는다. 오로지 나뭇결 사이로 들어오는 미세한 공기에 의한 숙성 효과만 거둘 수 있다. 와인 질감과 향을 중성적으로 바꾸면서도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이다.
하지만 큰 참나무통을 사용한다고 해서 결코 좋은 화이트 와인이 될 수 없다. 구스타브 로렌츠는 뛰어난 와인을 만들고자 포도부터 까다롭게 고른다. 이 와이너리는 알자스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큰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1836년 문을 열어 지금은 5대 경영자 샤를 로렌츠와 그의 가족들이 경영한다.
이들은 알자스에서 가장 알짜배기 포도밭으로 꼽히는 알텐베르그(Altenberg) 밭 3분의 1을 가지고 있다. 알텐베르그는 프랑스 국립원산지 명칭 연구소(INAO)가 인정한 알자스 지역 특등급(Grand Cru) 포도밭이다. 2016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당시 프랑스를 찾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구스타브 로렌츠가 알텐베르그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건배했다. 프랑스와 독일 정상 모두를 설득할 만한 품질 좋은 포도가 나오는 밭을 대거 보유한 셈이다.
구스타브 로렌츠의 와인은 현재 전 세계 유명 레스토랑 뿐 아니라 에어프랑스와 에미레이트항공, 카타르항공 같은 소위 5스타 항공사 1등석과 비즈니스 클래스 와인 리스트에 올라있다.
특히 구스타브 로렌츠 리슬링 뀌베 파티큘리에(Gustave Lorentz Riesling Cuvee Particuliere)는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 화이트 와인 구대륙 부문에서 최고의 와인에 주어지는 ‘베스트 오브 2023′을 받았다. 퀴베 파티큘리에는 ‘특별한 포도즙’을 뜻한다. 일반 기본 등급 와인보다 색감이 짙고 점도가 진해 음식을 먹고 난 후 한 모금 머금으면 입안 전체를 기분좋게 감싸준다.
은은한 과실향이 부담스럽지 않고, 음식과 깔끔한 조화를 이뤄 참치나 방어 같은 기름진 생선에서부터 닭고기, 돼지고기 요리, 매콤한 양념을 곁들인 요리까지 두루 어울린다. 국내 수입사는 나라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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