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은 어떻게 키우라고?…‘다자녀 확대’에 부글부글 [장연주의 헬컴투 워킹맘]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외동은 이제 어린이집 보내긴 글렀네."
최근 어린이집 입소 순위의 다자녀 기준이 현재 '3자녀 이상'에서 '2자녀 이상'으로 완화된다는 소식에 외동 아이를 둔 학부모들이 어린이집 입소를 사실상 포기하라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2자녀에게도 다자녀 혜택을 주기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그렇게 되면 외동 아이는 어린이집에 들어가기가 그 만큼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 셋 이상을 둔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외동은 지금 보다 어린이집 입소 순위가 더 밀리게 되고, 3자녀 이상 역시 2자녀들이 같은 순위로 올라오게 되면 지금 보다 순위가 더 밀릴 수밖에 없다.
학부모들은 왜 이렇게 어린이집 순번에 민감할까.
외동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서울의 학부모 양모(48) 씨는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출산 전부터 서울시 보육포털시스템(現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에 입소대기 신청을 해놨다. 하지만 출산 이듬해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데, 순번이 되지 않아 갈 수 있는 어린이집은 없었다.
양 씨는 "어린이집에 들어가려고 일찌감치, 심지어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신청을 했는데 순번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며 "외동은 일찍 신청해도 나중에 3자녀나 다문화가정 등이 신청하면 계속 순위가 밀리기 때문에 일찍 신청하는 것이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양 씨가 인근 국공립어린이집에서 순번이 됐다고 오라는 연락을 받은 것은 아이가 5세가 돼 이미 유치원에 들어간 뒤였다. 유치원에 들어가는 5세 전에 어린이집을 이용해야 하는데, 사실상 어린이집이 필요할 때는 연락이 오지 않고 유치원에 가서야 연락이 오니 순번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셈이다.
양 씨의 사례처럼 출산 전부터 입소대기를 신청해도 맞벌이 외동 아이는 사실상 순위가 꼴찌나 다름이 없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실상이다. 아이를 낳으라고만 하지, 정작 낳고 나면 어린이집 보내는 것부터 뭐 하나 쉽게 되는 일이 없다. 그러니 둘째를 낳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맞벌이 가정의 외동 아이는 왜 어린이집 입소 순위가 늦을까.
현재 어린이집 입소는 입소 순위별로 해당하는 항목의 배점을 합산해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이뤄진다.
1순위에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족지원법 5조 해당 가정, 차상위계층, 맞벌이, 다문화가족, 다자녀, 임산부의 자녀 등이 포함된다.
2순위는 일반 한부모가족, 가정위탁 보호아동, 입양 영유아, 해당 어린이집에 재원 중인 형제나 자매가 있는 영유아가 해당한다.
순위별 배점은 1순위 100점, 2순위 50점인데, 이 중에서도 '3자녀 이상'이거나 '맞벌이'인 경우에는 배점이 200점으로 높다.
여기에다 이번 발표로 2자녀 이상도 배점이 200점으로 높아지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어린이집 입소 1순위 중 '다자녀' 항목의 기준을 현재 '자녀가 3명 이상인 가구의 영유아이거나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인 자녀가 2명 이상인 가구'에서 '자녀가 2명 이상인 가구'로 바뀌는 내용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오는 5월 22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10살과 3살 두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가정과 3살 아이 1명을 키우는 맞벌이 가정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현재 시행규칙 하에서는 200점으로 점수가 같지만, 개정 시행규칙이 시행되면 두 아이 맞벌이 가정이 300점으로 입소 순서가 앞서게 된다.
첫째 아이가 만 8세가 넘었거나 초등학교 2학년 이상인 2자녀 가정도 다자녀에 해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맞벌이 외동 아이가 어린이집 순번에서 사실상 꼴찌라고 표현한 것은 맞벌이가 아닌 외벌이 가정에서도 '직장을 다닌다'며 위조한 서류를 어린이집에 제출하거나 '취업을 준비중'이라는 서류를 내면 '취업중'인 것으로 인정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때문이다.
이를 사실상 걸러내기도 어렵고, 걸러내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1순위에는 기초수급자, 한부모가족, 차상위계층, 다문화가족 등이 있다.
자녀 수에서도 밀리고 각종 가족에게도 밀리면서 맞벌이 외동 아이는 결국 필요할 때 어린이집을 못가는 결과로 이어진다.
아이를 둔 학부모들은 특히 다문화가족을 1순위에 둔 것에 대한 불만이 많다.
당장 이번 발표에 "다문화 1순위나 없애 달라", "자국민 보다 다문화가족이 우선 순위라는 게 어이 없다"는 등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자국민은 어린이집을 못 보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데, 다문화가족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 과연 맞는 정책이냐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3자녀, 4자녀는 더 피해보겠네. 역차별이다"라는 반발도 나온다.
또 "아이가 한 명이라도 어린이집에 편히 보낼 수 있게 해야 하는데, 3자녀에서 2자녀까지 우선 순위 준다고 출산율 높이겠냐.", "한 명도 키우기 힘들다. 혜택 줘라. 한 명 낳았는데 여러 난관 부딪히면 둘째 낳을 생각 쏙 들어간다"는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만, 막상 아이를 낳으면 어린이집을 보내기 어려운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어린이집 입소 기준에 문제가 있는 데다 국공립어린이집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꾸준히 확충해 왔지만,정작 수요 대비 공급은 부족한 실정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지난 2020년 시행한 어린이집 이용 부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61.1%가 국공립어린이집 이용을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서울의 경우, 최근 국공립어린이집 이용률이 절반을 넘어선 52.4%를 기록했다.
국공립어린이집 이용률이 절반을 넘어선 것은 17개 광역시·도 중 최초다. 서울의 전체 보육아동 14만8091명 중 7만7611명이 국공립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의 전체 어린이집 중 국공립어린이집이 차지하는 시설 비율은 40.1%로, 다른 시·도 평균 보다 2.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 3월 현재 서울 시내에 운영 중인 국공립어린이집은 지난해 신규 개원한 48곳을 포함해 총 1831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다른 시·도의 국공립어린이집 이용률은 12.5∼39.1%, 시설 비율은 10.2∼39.6%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서울시는 35.6% 수준(2021년 기준)인 국공립어린이집 시설 비율을 2025년까지 50%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워킹맘에게 어린이집이 필요한 것은 아이가 4세까지다. 5세부터는 유치원이라는 대안이 있어 그나마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산 전부터 입소대기 신청을 해도 국공립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그 만큼 입소대기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학부모들은 지금이라도 어린이집 입소 순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여러 명이든, 필요할 때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지금처럼 아이 한 명만 차별을 받는다면, 아예 아이 한 명도 낳지 않아 저출산 위기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다문화가정을 꼭 1순위로 해야하는 지도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아이 한 명을 키우고 있는 한모(40) 씨는 "둘째를 고민하다가 어린이집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보니 더는 낳기가 어려웠다"며 "아이를 낳아보니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권모(39) 씨는 "저출산이 심각하다는데 정작 아이를 낳으면 어린이집에 보내기가 어렵지 않느냐"며 "정부가 어린이집 문제 하나도 해결을 못하고 있는데, 대체 누구를 믿고 애를 낳겠느냐"고 혀를 내둘렀다.
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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