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40분 만에 페트병이 플라스틱 소재로… 수퍼빈 ‘아이엠팩토리’
“단순 제조공장 아닌 복합문화공간”
김정빈 대표 “순환경제 사례 될 것”
지난 28일 오전 경기 화성시 우정읍. 자원순환 스타트업 ‘수퍼빈’의 플라스틱 플레이크(페트병을 잘게 파쇄한 것) 제조 공장 ‘아이엠팩토리’에 들어서니 작은 숲이 반겼다. 이 숲을 가운데 두고 디귿(ㄷ)자 모양으로 설계된 아이엠팩토리 1층에 들어서자 사람 키 두 배 높이로 쌓여있는 투명 페트병들이 먼저 보였다. 수퍼빈이 자원회수 로봇 ‘네프론’과 대면회수를 통해 모은 폐페트병이다.
사각형 모양의 한 묶음(베일)당 2만5000개의 페트병이 압축돼 있다. 무게는 500㎏가량이다. 지게차가 베일을 컨베이어벨트에 실어 올리면 진동을 줘 페트병을 낱개로 흩뜨린다. 컨베이어벨트 위에 고르게 퍼진 페트병들은 1차 선별기가 유색 페트병과 이물질 등을 걸러내 바람으로 날려 보낸다. 선별 시스템은 수퍼빈이 구축한 폐기물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AI) 솔루션이다. 수퍼빈이 직접 개발했다. 기존의 플라스틱 플레이크 제조기업들은 이 과정을 전부 사람의 눈과 손에 맡겼다.
2, 3차 선별기를 통해 꼼꼼히 걸러진 페트병들은 분쇄기로 보내진다.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갈린 뒤엔 1차 세척이 진행된다. 물에 담그면 플레이크는 가라앉고 라벨이나 뚜껑, 링 등은 물에 뜨는 원리를 이용해 재차 이물질을 걸러낸다. 탈수 후에는 네 차례의 온수세척·탈수 과정을 거친다. 플레이크에 남아있을 수 있는 라벨 접착제를 녹여내기 위해서다. 플레이크 품질은 수분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두 번의 탈수를 더 거친다. 그 다음 열풍으로 건조하면 플라스틱 플레이크가 완성된다.
근적외선 검사기와 금속선별기를 거쳐 마지막 검수가 끝나면 플레이크는 600㎏씩 톤백에 담겨 보관된다. 이 과정을 한 바퀴 거치는 데 40분가량 걸린다. 플레이크는 화학회사와 섬유회사, 식품용기 회사들이 사들여 플라스틱병, 포장재, 섬유 등을 만드는 데 쓴다. 수퍼빈은 플레이크 수출을 위한 인증 작업을 준비 중이다.
수퍼빈은 버리는 페트병과 알루미늄 캔 등을 수거하는 AI 회수로봇 ‘네프론’을 개발한 8년차 스타트업이다. 네프론은 지난달 기준 전국 15개 지자체에 814대가 보급돼 있다. 페트병을 물로 세척한 뒤 라벨을 떼어내 네프론에 투입하면 개당 10원의 포인트를 제공한다. 2000포인트부터 포인트당 1원으로 현금화할 수 있다.
지난달까지 총 43만명이 네프론을 이용했고 누적 현금 전환액은 15억원이다. 누적 1억6000만개의 페트병과 6500만개 캔이 수거됐다. 이날까지 수퍼빈은 자원회수를 통해 총 209만9449kgCO₂의 탄소배출을 줄였다.
아이엠팩토리는 이렇게 수거한 투명 페트병을 고품질 원료로 가공하는 3단계 스마트팩토리다. 1만3200㎡(약 4000평) 부지, 4000㎡(약 1200평) 규모로 지어졌다. 시간당 1.5톤(t)의 플레이크를 만들 수 있다. 연간 생산량은 8000t에 달한다. 지난해 12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그간 플라스틱 플레이크 제조공장은 페트병을 수거하는 대가로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을 주된 수익원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품질 경쟁을 할 유인이 적었다. 이 때문에 저품질의 플레이크가 양산됐다. AI 기술을 기반으로 페트병을 재활용해 고품질의 플레이크를 제조하는 곳은 수퍼빈 아이엠팩토리가 유일하다.
아이엠팩토리 2층에 올라서니 관제실과 회의실이 보였고, 3층은 방문객 관람시설로 조성됐다. 4층은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한쪽 벽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책들이 배치됐고, 편히 앉아 쉬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함께 마련됐다. 플라스틱 소재를 재활용해 만든 의자, 라벨 제거기 등 기획상품을 파는 작은 기념품샵도 있다.
4층 공간의 3분의 1가량은 유기견을 위한 임시보호소로 만들어졌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버려진 폐기물이 아이엠팩토리를 거쳐 다시 제품화돼 사회에 돌아가듯 버려진 반려견도 여기서 보호를 받은 뒤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마련했다”고 말했다.
수퍼빈이 공장 건물에 이런 공간을 조성한 데엔 자원순환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김 대표의 의지가 컸다. 그는 “인식을 바꾸려면 직접 현장에 와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공장 안에 자원순환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준공식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탄소중립과 녹생성장 기본계획이 발표된 만큼 민간이 혁신의 주체로서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관련한 육성 전략을 마련하고 규제 개선, 투자 확대 등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수퍼빈은 아이엠팩토리 준공을 계기로 올해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 매출은 80억원가량이다. 연말이나 내년 초쯤엔 전북 순창에 펠릿(플라스틱 병이나 섬유를 만드는 재료) 제조 라인이 추가된 두 번째 공장을 짓는다. 현재 폐공장을 매입해 리모델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순환경제에 대한 하나의 명확한 사례를 반드시 만들어내고 싶다”며 “순환경제를 더욱 확장시켜 가면서 폐기물이 도시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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