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걸 크러시와 K-컬처의 여전사들 [EDITOR's LETTER]

2023. 4.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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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블랙핑크를 좋아합니다. 솔직히 노래는 잘 모릅니다. 엄청난 고독과 정신적 압박을 이겨 내고 세계 무대를 휘젓는 모습이 좋습니다. 얼마 전 세계적 음악 행사인 코첼라에서 헤드라이너(메인 공연자)로 무대에 올라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공연도 멋졌습니다. 전사 같았습니다. 무대 구성·노래·퍼포먼스에 대한 해외 언론의 호평이 쏟아졌습니다. 기와지붕과 부채 등을 활용해 한국적인 것을 표현한 것도 기특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어떤 평론가는 “코첼라 무대에 섰다는 것 외에는 남긴 것이 없다”고 혹평했습니다. 평론가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이런 지적을 피하고 싶어서일까요. 해외에서 이름을 알린 뒤 한국에 들어오는 전략을 택하는 K팝 가수들이 많다고 합니다. 물론 시장성이 더 큰 이유겠지요. 해외에서 먼저 유명해지고 한국에서 이름을 얻은 사람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오래전으로 한 번 가 볼까요.

조선의 천재 시인 허난설헌은 어릴 때부터 필력이 뛰어났습니다. 많은 시를 썼지요. 스승은 서얼 출신이었습니다. 행복했던 유년 시절은 열다섯살에 끝납니다. 원하지 않던 정략 결혼, 시집살이는 외롭고 고됐습니다. 그는 시에 여성·서자·서민들이 느끼는 애환을 담았습니다. 시대적 모순들이었습니다. 이 천재는 스물일곱에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동생 허균은 그가 남긴 시를 묶어 ‘난설헌집’을 냅니다. 중국 사신이 이를 가져간 후 중국에서는 대유행이 됩니다. 중국인들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그의 시는 하늘에서 떨어진 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다(‘열조시집’).”당나라 대표 시인 이태백을 뒤로 물러나게 한다(‘고금야사’).” 이후 어떤 시인도 중국과 일본에서 허난설헌 만큼 유명세를 타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한류로 불리기도 합니다.

조선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수백년간 비판이 이어집니다. 남성 중심의 조선에서 여성이었고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한 허균의 누이였기 때문이겠지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난설헌의 호 하나 (받은 것) 만으로 과분한 일이다. 후에 재능 있는 여자들이 경계의 거울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어찌됐건 중국과 일본에서 알아봐 주지 않았다면 허난설헌이란 존재 자체가 묻혔을 겁니다.

허난설헌이 16세기 시대의 한계를 넘으려고 했다면 18세기에는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 김만덕이 운명의 개척자였습니다. 양인으로 태어났지만 부모를 잃고 기생이 됩니다. 탁월한 감각으로 장사를 시작해 거상이 됩니다. 기방 손님들이 준 정보를 기반으로 제주도만의 특산품을 만들어 시의적절하게 팔았습니다. 그냥 부자로 살지 않았습니다. 1790년대 제주도에 심한 기근이 발생합니다.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습니다. 그는 재산 대부분을 처분해 육지에서 쌀을 들여왔습니다. 제주를 기근에서 구해 냅니다. 추사 김정희는 그를 “은혜로운 빛”이라고 칭했습니다. 정조는 직접 김만덕을 만나기 위해 벼슬까지 내려주는 편법을 동원할 정도였습니다. 가난과 기생이라는 조건에 대한 순응을 거부하고 담대하게 운명을 개척하고 부자의 도리를 다한 인물입니다.

20세기로 넘어오면 최초의 걸그룹을 만든 가수 이난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가수로 성공합니다. ‘목포의 눈물’이 대표곡입니다. 오랜 기간 야구단 타이거즈의 응원가로 쓰였습니다. 남편 김해송이 납북되자 딸들과 조카로 김시스터즈를 구성합니다. 미국에 진출한 첫째 걸그룹입니다. 기획은 치밀했습니다. 여성 밴드가 미국에서 쏟아져 나오자 차별화를 위해 모든 멤버들에게 악기를 가르칩니다. 미국으로 보내며 “연애하지 말고,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마라”는 지침을 줬습니다. 아이돌 시스템의 원조라고 봐야겠지요? 김시스터스는 성공했습니다. 1960년대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넷째 고액 납세자가 될 정도였답니다.

허난설헌, 김만덕, 이난영.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한계에 맞서 큰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 정도면 ‘조선의 걸 크러시’라고 부를만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최근 K-콘텐츠에 불고 있는 여성 서사의 붐을 다뤘습니다.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무장한 당찬 캐릭터는 드라마와 영화의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K팝에서는 블랙핑크·뉴진스·아이브·피프티피프티가 세계 무대를 흔들고 있습니다.

K-콘텐츠가 다양성에 대한 니즈를 수용한 결과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지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소비자 욕구의 진화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를 한국 특유의 섬세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해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양성에서 빛을 보고 획일성에서 어둠을 본다고 합니다. 더 다양한 서사와 뮤지션들이 K-콘텐츠를 풍부하게 해주길 기대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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