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고려 왕, 원 황제 파티에 가다
[서울=뉴시스] 1206년 몽골을 통일한 칭기즈칸은 1227년 서하를 원정하던 중 낙마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후계자는 그가 직접 지명한 3남 오고타이였다.
2대 칸 오고타이는 1231~1235년 동안 세 차례 고려를 침략했다. 와인을 과음했던 그는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3대 칸은 오고타이의 장자인 구육이 됐다. 하지만 구육도 재위 2년 만에 술 때문에 급사한다. 구육은 사망 1년 전인 1247년 고려에 항복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고려를 공격했다(몽골의 4차 침공). 4대 칸은 툴루이의 장남인 몽케가 계승했다. 유클리드 기하학 문제를 풀 정도로 천재였던 몽케 역시 와인을 좋아해 전쟁터에서도 마셨다. 그는 수도인 카라코룸에 외교사절을 초청해 자주 파티를 열었다. 프랑스인 기술자에게 은으로 된 술 분수대 나무를 만들게 해, 와인을 비롯한 4종류의 술을 파티에 대규모로 공급했다. 몽케 칸도 1253년부터 1258년까지 다섯 차례나 고려를 침공했다.
30여년간 아홉 차례나 몽골의 침입을 받은 고려는 참담한 피해를 입었다. 지겨운 전쟁을 끝내기 위해 1259년 고려는 항복 사절로 세자 왕전(王倎)을 몽케 칸에게 보낸다. 몽케 칸은 당시 남송 정벌을 위해 고려의 개경에서 3000㎞나 떨어진 합주(合州, 지금의 사천성 충칭(重慶))에 있는 조어성(釣魚城) 전투에 참가 중이었다. 왕전 일행이 합주를 1000㎞정도 남겨둔 육반산(六盤山, 고려사절요에는 ‘六槃山’으로 표기, 지금의 내몽고 닝샤후이족 자치구 구이안(固原) 부근)에 이르렀을 때, 몽케 칸이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미 툴루이의 차남인 쿠빌라이와 4남인 아릭 부케가 왕위계승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카라코룸에 있던 아릭 부케가 우세했다. 부족회의인 쿠릴타이를 먼저 열어 칸에 오른 후 수도인 카라코룸을 장악했다. 쿠빌라이는 합주에서 카라코룸을 향해 북상 중이었다. 제후들은 누구를 따라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왕전은 고민 끝에 카라코룸으로 가는 대신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1400㎞나 떨어진 초주(楚州, 지금의 장쑤성 화이안(淮安) 부근)에서 쿠빌라이를 만나 항복 의식을 치른다. 당나라와 수나라도 어쩌지 못했던 고구려의 후예가 스스로 찾아오자 쿠빌라이는 반색했다. 이는 쿠빌라이의 정통성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
왕전은 쿠빌라이와 함께 다시 북쪽으로 1500㎞ 떨어진 개평부(開平府, 지금의 내몽골 자치구 시린하오터)로 갔다가 고려로 귀국했다. 쿠빌라이는 왕전을 예우했고 귀국길에 별도의 호위대를 붙여줬다. 쿠빌라이는 1260년 개평부를 근거지로 대칸이 된 후, 1264년 아릭 부케의 항복을 받아 정식으로 5대 칸이 된다. 그리고 1271년 원나라를 창건한다. 고려의 도박이 성공한 것이다.
왕전이 원나라에 있는 동안 고려에선 23대 고종이 사망하고, 왕전은 24대 원종이 된다. 쿠빌라이는 원종에게 고려의 풍습과 복식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불개토풍’(不改土風)을 약속했다. 이는 이후 우리 민족이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쿠빌라이는 1271년 원종의 맏아들인 왕심(王諶)과 자신의 막내딸인 제국대장공주를 혼인시킨다. 왕심이 39세, 제국대장공주는 16세였다. 왕심은 3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원종이 사망하자 1274년 귀국해 왕위를 계승했다. 25대 충렬왕이다. 몽골의 점령국 중 유일하게 부마국이 된 고려의 왕은 원나라의 가장 큰 국가행사인 쿠릴타이에 필수 멤버로 참석했다. 행사와 파티에서는 서열 순서대로 앉았다. 한때 충렬왕은 7위, 그의 아들이자 쿠빌라이의 외손자가 되는 충선왕은 4위의 서열을 차지했다.
충선왕은 어릴 때부터 원나라에 머물며 4촌이자 3대 황제 무종(카이산)과 4대 인종(아류르바르와다)의 왕위 계승을 중재하기도 했다. 충선왕은 쿠빌라이의 증손녀인 계국대장공주와 결혼했다. 수도인 대도에 만권당이라는 독서당을 지을 정도로 학문과 문화에도 조예가 깊었다. 몽골의 왕자들과 어울려 와인도 마셨다. 그는 왕이 된 후에도 주로 원나라에 머물며 원격근무를 했다.
쿠빌라이는 1258년 개평부를 완공하고, 1264년 이름을 상도(上都)로 바꿔 수도로 삼는다. 1267년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를 건설한 후 상도는 여름 수도, 대도는 겨울 수도의 역할을 했다. 대도의 궁전에는 와인 저장고를 설치했다. 쿠릴타이에서는 칸의 즉위나 법령의 반포 등 국가의 중대사가 열렸고, 제천의식과 대규모 파티가 뒤따랐다. 황제는 400㎞ 정도 떨어진 두 도시에 번갈아 거주했고, 이동에는 왕족과 대신들이 함께 했다. 비용도 엄청났다.
특히 ‘지순연’(質孫 혹은 只遜宴, Jisun)이라 불리는 행사에는 어마어마한 재원이 소요됐다. 지순은 같은 색으로 된 몽골 고유의 예복을 말하는데, 주로 상도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는 모든 참석자들이 지순을 입어야 했다. 외국 사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몽골인들은 재물을 쌓아 두기보다는 그때그때 소비하는 것을 당연히 여겨, 음식과 술이 무제한으로 제공됐다. 중앙아시아나 동남아, 고려 등 각국의 진미가 제공됐다. 음악, 무용, 연극과 함께 씨름이나 축구, 달리기 등 스포츠 행사도 열렸다. 상도의 영어 표기인 ‘재나두’(Xanadu)는 지금도 서양에서 ‘동양의 이상향’을 뜻한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ybb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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