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본초여담] “이런 의원은 믿지 마라” 믿지 못할 의원의 10가지 부류

정명진 2023. 4.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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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창덕궁 궐내 각사의 내의원(內醫院)에 걸려 있는 ‘약방(藥房)’ 현판.

옛날 한 고을에 약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약방이 늘어나면 좋을 것 같지만 의원들의 실력이 형편없어도 돈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약방을 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만도 않았다. 약방을 다녀온 병자들은 증세가 악화되어 불만이 쌓였다. 심지어 더 살 수 있던 환자들조차 졸렬한 치료법이나 조악한 처방으로 죽기도 했다. 또한 일부 정직하지 못한 의원들 때문에 성실히 진료하는 다른 의원들까지 싸잡아 욕을 먹었다.

당시 고을에는 이중재(李中梓)라는 의원이 있었다. 그는 <의종필독(醫宗必讀)>이라는 의서까지 저술할 정도로 실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의원이었다. 이씨 의원은 고민을 했다. 환자들이 찾지 않으면 약방은 문을 닫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환자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씨 의원은 이와 관련된 내용을 강설(講說)해서 환자들을 일깨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씨 의원은 약방 앞에 모월 모시에 ‘이런 부류의 의원은 믿지 마라’는 주제로 강설을 하겠다고 방을 써 붙였다. 누가 올까 했는데, 때가 되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환자 입장에서도 약방과 의원들이 너무 많아 어느 의원을 선택해야 할 지 난감했던 것이다. 심지어 몇몇 신참 의원들도 자리했다. 사실 강설 주제는 ‘이런 의원은 되면 안된다’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 의원은 강설을 시작했다. “의원된 자라면 최소한의 도리가 있습니다. 보통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하는데,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통된 감정이지요. 그런데 의원에게도 보편적인 정(情)이 있습니다. 그것을 의인지정(醫人之情)이라고 합니다. 의원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성정(性情)을 충족하지 못하면서도 의원행세를 하는 자라면 믿어서는 안됩니다.”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 번째. 환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의원입니다. 환자가 오면 손만 내밀어 보라고 하면서 진맥만 하려고 하고 환자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의원입니다. 약방에 기다리는 환자가 없어도 그렇고 환자들이 붐비면 더욱 심해집니다. 환자가 뭔가 이야기를 꺼내거나 질문을 하려고 하면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기도 합니다. 모름지기 의원은 환자의 말만 잘 들어도 환자의 병은 절반은 낫는 법이거늘. 환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의원은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두 번째, 환자를 기망(欺罔)하는 의원입니다. 교묘한 말로 환자를 현혹하고 달콤한 말로 듣기 좋은 말만 하면서 환자를 유혹하는 의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설명으로 억지로 이론을 논리적인 척 말하면서 환자를 기만합니다. 환자가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용어만을 써서 마치 대단한 실력이 있는 것처럼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상 알고 보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단순한 내용일 뿐입니다. 환자가 위중하지도 않은데 위태로운 말투로 겁을 주며 환자를 기망하는 부류의 의원은 믿어서는 안됩니다.”
“세 번째, 돈에 눈이 어두운 의원입니다. 허름한 옷을 입고 온 환자는 대충 침이나 한번 놓고 가라고 하며 비단을 걸치거나 가마를 타고 온 환자에게는 비싼 약재만을 처방하는 의원입니다. 간혹 권세 높은 부잣집이라고 해서 필요도 없는 값비싼 인삼만을 처방하는 의원입니다. 인삼도 증상과 체질에 맞지 않으면 독과 같아서 환자의 증상은 불필요한 인삼 때문에 증세가 악화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환자를 돈으로 보고서 진료하는 의원은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네 번째, 졸렬한 의원입니다. 약방문은 그냥 떠오르는 대로 결정하고, 혈자리는 그냥 살집이 잡히는 대로 침을 찔러대는 의원입니다. 약을 잘 배합하면 자석이 철을 끌어당기듯 물성에 따라 서로 협력하지만, 졸렬한 의사는 이치에 어긋나게 해서 나을 병도 심해지게 만들고 살 사람도 죽게 만듭니다. 침 또한 알면 일침(一鍼)만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모르면 걸리기만 하라는 식으로 모래를 뿌리듯 산자(散刺)를 합니다. 치료에는 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는 것이 없다면 신심이라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도 없으면서 정성까지 다 하지 않는다면 환자의 병은 좋아질 리 만무합니다. 환자를 진료하는데 정성을 다 하지 않는 졸렬한 의원은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다섯 번째, 요행을 부리는 의원입니다. 아는 것은 없으면서도 막무가내로 치료를 해대며 인명(人命)을 가벼이 여기는 의원이 있습니다. 실력도 미천하면서 환자까지 자세히 살피지 않고 진찰하지 않는다면 나을 가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부류들은 공(功)만을 탐하기 때문에 함부로 경솔하게 약을 투여하고 침을 놓으면서 만약 운 좋게 나으면 자신의 의술 때문이고, 만약 치료에 실패하게 되면 원인을 환자에게 떠넘기고 자기 잘못은 덮으려고 하니 이는 요행을 노리는 부류의 의원입니다. 운 좋게 낫기만을 기다리며 요행을 부리는 의원을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여섯 번째, 사기꾼 같은 의원입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거나 손에는 먹물을 묻혀 본 적도 없으면서 자기만 가지고 있다는 의서의 비전(秘傳)만을 빙자하는 의원이 있습니다. 무당처럼 신(神)들린 의술을 전해 받았다는 의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술은 점을 쳐서 치료할 수 없는 법입니다. 또한 의서를 제대도 읽지도 않고 비방(祕方)만을 떠벌려서는 안됩니다. 사실 비방이란 것도 알고 보면 길가의 잡초처럼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것들일 수 있습니다. 공부하지 않는 사기꾼 부류의 의원은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일곱 번째, 아첨하는 의원입니다. 지체 높은 관리나 돈 많은 사람이 환자로 오면 굽신거리고 반대로 돈 없는 일반 평민들에게는 거들먹거리는 의원입니다. 심지어 자신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대감집에 환자가 발생했다고 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왕진의원을 자처하는 의원이 있습니다. 의원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환자를 치료해서는 안됩니다. 의업은 출세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마치 유세하듯이 치료하는 부류의 의원은 모두 아첨하는 의원의 부류에 속합니다. 믿어서는 안됩니다.”
“여덟 번째, 허무맹랑한 의원입니다. 환자가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그냥 아무렇게나 눈 앞에 보이는 감초나 당귀, 지실, 후박, 당귀, 황금을 손 가는 대로 곧 움켜쥐어 대충대충 처방을 하는 의원입니다. 망문문절(望聞問切)에는 태만하여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단지 남은 어리석고 나는 명철하며 함부로 말하는 의원은 안됩니다. 옛날 명의들의 의론이나 남들의 의술의 정도를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만 최고라고 떠들어대는 의원은 허무맹랑한 부류입니다. 믿어서는 안됩니다.”
“아홉 번째, 비겁한 의원입니다. 중환자를 두고 책망을 들을까 봐 치료를 망설이는 의원입니다. 자신에게 중환자가 오면 옆 약방으로 바로 보내버리는 의원도 있습니다. 한 집안에 중병의 환자가 있으면 병자의 집에서는 전혀 의술을 모르니 조(趙)씨를 불렀다가 전(錢)씨를 불렀다가 하니 청해 온 의원들이 많은 법입니다. 의원들 또한 환자가 악화되거나 죽었을 경우 원망을 감당하고 싶지 않으니 그저 관망만 합니다. 그러나 욕먹을까 두려워 좌시하다 치료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의원된 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만약 자신의 의술로 환자를 완쾌시킬 수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치료를 행해야 합니다. 중환자라면 외면하고 쉽게 치료되는 환자들만 상대하는 의원은 비겁한 의원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열 번째, 헐뜯고 질투하는 의원입니다. 질투가 본성으로 굳어져 배척하기를 일삼으며 앞에서는 동지인 척하면서 뒤에서는 비방하는 의원입니다. 환자를 비방해서도 안되지만 동료 의원들을 질투해서도 안됩니다. 자신보다 실력이 좋은 의원을 헐뜯거나 모함하고 질투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을 저해할 뿐입니다. 그런 마음에서 어찌 좋은 의술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남들을 헐뜯고 질투를 하게 되면 붉은색과 자줏빛이 뒤섞이는 것과 같으니 옳고 그름이 뒤바뀌어 판단을 그르치게 됩니다. 다른 의원을 헐뜯고 질투하는 의원은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런 부류의 의원이니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씨 의원은 “옛 속담에 ‘병이 있어도 치료하지 않으면 늘 중등의 의사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하의(下醫)를 잘못 만나면 병이 악화될 수 있으니 차라리 치료하지 않으면 중간은 간다는 의미입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를 만나 치료하면 당연히 나아져야 할 것인데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지금 보아하니 이 자리에 몇 명의 의원님들도 와 계신 것 같은데 타산지석으로 삼기 바랍니다.”라고 하면서 마무리했다.

이씨 의원의 강설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있자니 감나무 집 약방은 어떤 부류의 의원이고, 고개 넘어 언덕배기 약방은 어떤 부류의 의원이며, 자신이 어제 침을 맞으러 갔던 곳은 어떤 의원인지 알 것 같았다. 강설을 듣고 있던 의원들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진 의원도 있었고 다행스러워하며 안도하는 의원도 있었다.

이씨 의원의 강설로 믿어서는 안되는 부류의 의원들의 약방에는 더 이상 환자들이 찾지를 않았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약방은 가면 안된다고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래서 실력이 없으면서 환자를 속이려고만 하는 의원들은 약방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예로부터 의원된 자의 기준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소위 ‘의인지정(醫人之情)’이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의부전록-의종필독> 不失人情論. 所謂醫人之情者 或巧語誑人, 或甘言悅聽, 或強辨相欺, 或危言相恐, 此便侫之流也. 或結納親知, 或修好僮僕, 或營求卜薦, 或不邀自赴, 此阿謟之流也. 有腹無藏墨, 詭言神授, 目不識丁, 假託秘傳, 此欺詐之流也. 有望聞問切, 漫不關心, 枳朴歸苓, 到手便撮, 妄謂人愚我明, 人生我熟, 此孟浪之流也. 有嫉妒性成, 排擠爲事, 陽若同心, 陰爲浸潤, 是非顛倒, 朱紫混淆, 此讒妒之流也. 有貪得無知, 輕忽人命, 如病在危疑, 良醫難必, 極其詳慎, 猶冀回春, 若輩貪功, 妄輕投劑, 至於敗壞, 嫁謗自文, 此貪倖之流也. 有意見各持, 異同不決, 曲高者和寡, 道高者謗多. 一齊之傅幾何, 衆楚之咻易亂, 此庸淺之流也. 有素所相知, 苟且圖功;有素不相識, 偶延辨證. 病家既不識醫, 則倏趙倏錢, 醫家莫肯任怨, 則惟苓惟梗. 或延醫眾多, 互相觀望;或利害攸係, 彼此避嫌. 惟求免怨, 誠然得矣. 坐失機宜, 誰之咎乎? 此由知醫不真而任醫不專也. (인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이론. 이른바 의사의 정이란 다음과 같다. 혹 교묘한 말로 남을 현혹하고, 혹 달콤한 말로 듣기 좋게 하며, 혹 억지로 논변하여 기만하고, 혹 위태로운 말로 두렵게 하니, 이는 말만 잘하는 부류이다. 혹 혼약하고 납채를 들인 친지이거나, 혹 사이가 좋은 동복이거나, 혹 점을 쳐서 추천하였거나, 혹 부르지 않았는데 스스로 오기도 하니, 이는 모두 아첨하는 부류이다. 뱃속에는 먹물이 없으면서 거짓으로 신이 내린 의술이 있다 하고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면서 비전을 빙자하니, 이는 사기꾼의 부류이다. 망문문절에는 태만하여 관심을 두지 않고 지실, 후박, 당귀, 황금을 손 가는 대로 곧 움켜쥐며, 남은 어리석고 나는 명철하며 남은 서투르고 나는 익숙하다 함부로 말하니, 이는 허무맹랑한 부류이다. 질투가 본성으로 굳어져 배척하기를 일삼으며 앞에서는 동지인 척하면서 뒤에서는 비방하여 옳고 그름이 뒤집히고 붉은색과 자줏빛이 뒤섞이니, 이는 헐뜯고 질투하는 부류이다. 얻을 것만 탐했지 아는 것은 없으며 인명을 가벼이 여기는 자가 있는데, 병이 위험하고 의심스러운 경우에 속하면 양의라도 기필하기 어렵거늘, 자세히 살피기를 다한다면 그래도 회복할 희망이 있겠으나, 그러한 무리는 공을 탐하여 함부로 경솔하게 약을 투여하며 실패하게 되면 비난을 떠넘기고 자기 잘못은 덮으니, 이는 요행을 노리는 부류이다. 의견을 각각 고집하여 차이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노랫소리 높은 자는 조화됨이 적고 도가 높은 자는 비방이 많다. 제나라 사람 한 명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몇이나 되겠는가? 초나라 사람 여럿이 떠들면 혼란하기 쉬우니, 이는 용렬하고 천박한 부류이다. 평소 아는 사이라서 구차히 공적을 쌓으려고 오기도 하며, 평소 모르는 사이인데 우연히 불려와 변증을 하기도 한다. 병자의 집에서는 전혀 의술을 모르니 조씨를 불렀다가 전씨를 불렀다가 하며, 의사들은 기꺼이 원망을 감당할 자가 없으니 그저 복령을 쓰자 길경을 쓰자 한다. 혹은 청해 온 의사가 너무 많아 서로 관망하고, 혹은 이해가 걸려 있어 피차 피하고 꺼린다. 오직 원망을 면하려고만 한다면 과연 그리 되기는 할 것이다. 좌시하다 기회를 놓치면 누구를 탓할까? 이는 의사를 알아봄이 진실하지 않고 의사에게 맡김이 전일하지 못한 탓이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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