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길냥이 ‘복실이’와 ‘보리’ 수술 받던 날
복실이는 이 아파트 주민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인기 만점 고양이다. 통통하게 살이 찐 회색 줄무늬 수컷 고양이인데, 귀가 접힌 ‘스코티시 폴드’종이다. 반려묘로 주로 키우는 종이라서 그런지 사람을 보면 무서워 않고 따라와 ‘냥냥’ 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복실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암컷 보리다. 작은 몸집에 검정과 하얀 털빛이 턱시도를 입은 것 같은 보리는 다른 동에서 왔다. 눈치를 보며 지내다 복실이가 살뜰히 챙겨줘 가까워졌다.
복실이와 보리가 여느 때처럼 붙어 다니던 4월 14일이었다. 해 질 무렵의 금요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낯선 이들이 찾아왔다. 신형 승합차 트렁크에는 10여개의 포획틀이 실렸다. 적당한 곳에 주차한 이들은 포획틀을 바닥에 내려놓고 고등어 통조림과 고양이 사료를 꺼냈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고등어 통조림을 뜯어 국물을 접시에 따르고, 사료와 간식도 적당히 떠 담았다. 이런 접시를 포획틀 숫자에 맞게 준비해 틀 안쪽에 넣어두고 덮개를 씌웠다.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이다. 서울시 중성화의 날(TNRday)을 맞아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길고양이를 포획하기 위해 왔다. TNR은 길고양이를 안전하게 포획(Trap)해 중성화(Neuter)한 뒤 포획한 장소에 다시 방사(Return)하는 일이다.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것을 막고 발정기 스트레스를 막아주며, 길고양이 개체수를 적절히 조절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포획 장소에 다시 방사하지 않으면 영역 동물인 고양이에겐 학대가 될 수 있고, 기존 고양이들이 사라진 공간을 다른 고양이들이 차지해 개체수 감소 효과가 없어진다.
“사람이 몰리면 고양이가 경계할 수 있어서 준비를 빨리 해야 해요.” 카라 정책변화팀의 김정아 활동가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런데 보리와 복실이는 경계는커녕 포획을 준비하는 카라 활동가들에게 어슬렁 다가왔다. 시험 삼아 포획틀 한 개를 먼저 설치했다.
보리와 복실이가 포획틀 속 먹이를 노려보던 순간,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먼저 포획틀로 들어갔다. 포획틀 문이 탁 소리를 내고 닫히자 보리와 복실이가 놀라 잠시 도망갔다. 활동가들이 포획된 고양이 사진을 찍고 무게를 잰 뒤, 포획 장소와 고양이 특징을 자세히 적었다.
보리와 복실이는 포획 장면을 보고 경계할 만도 한데, 계속 주변을 기웃거렸다. 함께 움직이는 보리와 복실이를 포획하기 위해 바닥이 뚫린 넓은 정사각형 형태의 틀을 사용하기로 했다. 복실이가 먼저, 다음엔 보리가 차례로 잡혔다.
활동가들이 보리와 복실이를 차에 실을 때 70대 여성 주민 정경희씨가 와 인사했다. 이날 TNR을 신청한 게 정씨였다. 정씨는 몇 년 전부터 TNR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동안 TNR을 개별적으로 진행해 왔다. “새끼를 낳고 고양이들이 계속 아프고 죽잖아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면 질병에 걸리기 쉽고, 척박한 환경에서 새끼나 어미 고양이가 쉽게 죽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예방하는 것도 TNR의 목표 중 하나다.
“복실이는 (중성화 수술) 했어요.”
김 활동가가 복실이의 중성화 여부를 다시 묻자 정씨가 답했다. 그런데 복실이는 한 쪽 귀 끝을 조금 자르는 중성화 수술 표시가 없었다. 활동가들은 중성화 여부를 재확인하고 건강검진을 위해 복실이도 데려가기로 했다. 정씨는 복실이가 지난해부터 보이기 시작했다며 길고양이와 달리 누군가 버린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이 키우던 아이인데 길에서 살고 있으니….” 복실이가 중성화됐다면 방사가 원칙이다. 활동가들은 고민했다.
복실이와 보리를 포획한 뒤 본격적으로 포획틀 설치가 시작됐다. 김정아 활동가는 이날을 위해 미리 이 아파트에 3~4차례 방문해 고양이 급식소가 어디에 있고, 몇 마리나 있는지, 중성화 수술이 된 건 몇 마리인지, 임신이나 수유 중인지 파악해 뒀다. 이런 준비가 없으면 개체수 감소 효과가 떨어진다. 정확한 정보를 위해 정씨는 물론 다른 주민들도 수소문해 만났다. 이곳의 TNR 대상은 열마리 정도로 예상됐다.
“놀랐지? 미안해 미안해.” 가끔 ‘호랑이과’인 길고양이는 포획틀에 갇힌 뒤에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쳤다. 활동가들은 놀란 길고양이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포획 상황을 적고 새로운 포획틀을 설치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날 포획된 고양이는 모두 열두 마리였다. 중성화가 됐거나 임신·수유 중인 어미 고양이를 빼면 아홉 마리가 TNR 대상이었다. 오후 5시30분쯤 시작된 포획 작업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TNR, 공생의 상징
고양이 개체수 조절에 TNR 사업이 지자체 단위에서 시행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 언론보도를 보면 ‘야생고양이’나 ‘들고양이’·‘도둑고양이’가 늘어나 피해를 준다는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공기총으로 쏘아 죽이는 살처분 방식이나 포획 후 안락사하는 방식이 쓰였다. 한국의 고양이들은 오랫동안 마을 주변에 살았는데 쥐를 잡기 위해 풀어 기르다 개체수가 늘어났고, 쥐들이 사라지자 오히려 골칫거리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2000년대 후반, 고양이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논란이 계속됐고, 결국 길고양이도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며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이란 인식이 확대됐다. 그러니까 TNR은 인간과 길고양이가 공생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일부에서는 TNR 무용론이 제기됐다. 그동안 TNR은 신청이나 민원에 따라 한두 마리씩 소규모로 이뤄졌고 중성화되지 않은 남은 고양이들이 계속 번식해 개체수 조절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마라도 등 도서 지역에서 고양이들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조류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벌어졌다.
TNR이 효과가 없다는 주장은 사실상 길고양이를 살처분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반려묘의 증가와 동물보호에 대한 시민 인식 개선 등으로 살처분 도입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살처분의 효과 역시 입증되지 않았다. 길고양이 개체수를 조절하려면 TNR을 제대로, 효과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해 온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TNR이 시간과 예산, 인력이 들어가는 사업이니 한국의 상황에 맞게 효과를 검토하고 확인할 필요는 있다”며 “해외 연구를 근거로 TNR의 효과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정 단체나 지지 성향에 따라 연구 결과가 제각각이다. 또 연구마다 시기와 대상, 지역이 달라 일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다만 길고양이 군집(colony)을 집중적으로 TNR 하면 개체수 감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다수 연구에서 공감하는 부분이다. 여기에 적극적인 입양과 유기 방지 등 관리 방식의 개선, 야생동물 보호 방안 등 추가 대책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집중 TNR 위해 표준 절차 만드는 수의사들
가장 일반적인 구청의 TNR 사업은 한 마리당 20만원 정도로 위탁 계약을 맺어 민원이 있거나 요청이 있을 때 한두 마리씩 수술이 진행되는 게 특징이다.
반면 서울시 중성화의 날은 한 지역의 고양이 군집 규모를 미리 조사한 뒤 집중적으로 TNR을 한다. 2016년부터 올해 4월까지 모두 38회, 총 1275마리에게 TNR을 시행했다. 전체 길고양이 숫자에 비해 적지만 집중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길고양이 개체 감소에는 효과가 더 뛰어나다.
구로구 고척교 교차로 앞 안양천 산책길로 들어서는 곳에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가 있다. 포획된 고양이들은 이곳으로 모인다. 이곳에서 금식하며 대기한 뒤 수술을 기다린다. 토요일에도 추가 포획을 할 예정이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무산됐다.
일요일인 16일이 중성화의 날이다. 중성화의 날은 매월 셋째 주 일요일로 정해졌다. 이날 오전 8시 30분부터 수의사가 8명 반려동물 및 수의학 전공 학생 15명이 구로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에 모였다. 조윤주 VIP동물의료센터 연구소장(한국고양이수의사회 동물복지위원장)은 오전 9시 무렵 간단한 교육을 진행했다. 이날은 마포구 아파트 단지 외에도 강서구·양천구 등에서 포획된 스물여섯 마리의 중성화 수술을 할 예정이었다.
조 소장이 중성화의 날에 처음 참여한 건 시행 이듬해인 2017년부터다. 조 소장은 미국에 연수하던 중 동물보호소 등에서의 의학적 조치 다루는 ‘보호소 의학’(shelter medicine)이란 분야를 접했다. 조 소장은 그때 표준화된 절차의 중요성을 배웠다. 하루에 많은 길고양이를 TNR 하려면 표준화된 절차가 필수다.
중성화의 날 TNR은 마취, 건강 평가, 수술 등 담당 분야를 철저히 나눠 분업화된 방식으로 특별히 마련된 표준 절차를 따라 진행된다. 먼저 개체마다 번호를 부여하고 암컷은 분홍색, 수컷은 하늘색으로 시각화한 번호표를 부착한다. 어디서 포획됐는지 정확히 파악해 뒤바뀌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건강 상태를 평가할 때 체온과 심박수는 물론 머리부터 발 끝까지 다 살펴본다. 구강질환은 없는지, 상처는 없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수술이 진행된다.
수술할 때는 체온 유지를 위해 소독약도 데워서 사용하고, 실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매몰법으로 통일했다. 수술이 끝나면 백신 주사 등을 맞고 탈수 방지를 위해 수액을 놓아준 뒤 진통제 등을 처방해 회복에 들어간다. 표준화된 절차를 따르기 때문에 사고를 방지하고, 문제가 생겨도 쉽게 파악해 개선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모여 체계적으로 시행하기 때문에 모든 일정은 금세 마무리된다. 오래 걸려도 오후 3시를 넘지 않는다. 사실 포획에 나선 활동가들은 물론 수술을 맡은 수의사들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서울시는 점심 식사나 소모품을 지원해 준다. 모두 효과적이고 집중적인 TNR이 이뤄지도록 힘을 보탠 것이다.
“중성화된 고양이들은 자신의 수명을 살다가 사라지게 됩니다. TNR이 개체수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조 소장은 말했다.
함께 살기 위해 모두 노력해야
중성화 수술 후 사흘이 지난 수요일, 구로구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회복을 마친 암컷 고양이들을 다시 차에 실었다. 수컷은 회복이 더 빨라 미리 방사해 줬다. 김정아 활동가는 암컷 고양이 모습과 사진을 다시 대조한 뒤 아파트로 출발했다.
길고양이 TNR은 법적 근거가 있는 일종의 공공사업이지만, 포획·방사 위치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고양이를 붙잡아 학대하고 죽이는 이들이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래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길고양이를 보호하거나 입양할 때도 위치는 밝히지 않는다. 고양이를 돕는 것도 죽이는 것도 사람이다.
포획된 장소에 도착해 문을 여니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고양이들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방사는 포획보다 빠르게 마무리됐다. 방사 소식을 들은 정경희씨가 와 음료수를 건네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먹이는 절대로 차 밑에 두시면 안 돼요. 안 보이는 곳에 급식소를 두시고요. 먹이도 오래 두지 마시고 깨끗하게 관리하셔야 해요.”
김 활동가가 정씨에게 몇 가지 당부했다. 길고양이와 함께 살려면 먹이를 챙겨주는 동정심도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배려심도 필요하다. ‘고양이는 요물’이라며 손가락질 하거나, 나약한 고양이를 붙잡아 학대하고 괴롭히는 이들이 많은데, 오해를 해소하고 피해를 미리 막기 위해서라도 고양이를 아껴주려는 이들이 더 많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길고양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개선되는 게 우선입니다.” 김 활동가는 길고양이와 관련한 논란이나 민원이 생기면 고양이 먹이를 챙겨주는 이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길고양이를 죽이고 쫓아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이웃으로 조금 더 정답게 바라보았으면 한다는 뜻일 테다. 그러기 위해서 길고양이를 아껴주는 이들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실이는 어떻게 됐어요?”
정씨가 김 활동가에게 물었다. 복실이는 혈액 검사 등 검진 결과 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중성화도 완료된 상태였다. 카라에서는 복실이의 상황을 놓고 회의한 끝에 입양보내기로 했다.
정씨는 복실이가 포획했을 때도 ‘누가 데려가서 키웠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정씨는 다쳐서 구조한 고양이를 포함해 집에 다섯마리가 살고 있어 복실이를 데려올 형편이 못 되었다.
“아이구 잘 됐네요.”
정씨가 말했다. 아쉽지만, 다행이라는 듯했다. 복실이와 보리가 함께 놀던 화단을 바라봤다.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는 다시 읽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 장문의 내러티브 기사로 소개하는 경향신문 뉴콘텐츠팀의 버티컬 채널입니다. 곳곳에 숨은 이야기를 찾는 이들과 영감을 나눕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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