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희·조병옥이 문 열고 3金 만났던… 외교구락부 다시 열었다
“YS와 DJ가 최고 단골이었죠. 여기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적 현장이에요.”(김덕룡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이사장)
“예전엔 홀이 아주 컸고 룸이 10개 정도 됐어요. 다시 와보니 감격스럽네요.”(외교구락부 전 직원)
28일 오전 서울 중구 숭의여대 별관 내에 문을 연 카페 ‘외교구락부’를 보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이 모였다. 1949~1999년 50년간 정치계 인사들의 사교 공간이었던 경양식당 ‘외교구락부’가 24년 만에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카페로 재탄생했다. 건물 내엔 옛 사진 등을 전시해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도 꾸몄다. 외교구락부가 원래 터에 카페로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추억을 가진 이들이 걸음했다. 1960년대 이곳에서 웨이터로 일했다는 남성은 “하루에 ‘별’ 30개가 모이기도 했던 대단한 곳이었는데 이제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 돼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외교구락부(Diplomatic club)는 일제 강점기 때 헌병대장 관사였던 건물을 해방 후 정치인 신익희·조병옥·장택상·윤치영이 아이디어를 내 경양식당으로 바꾼 것이 시초였다. 당시 외국 손님이 왔을 때 갈 수 있는 양식당이 없어 서양식 사교 클럽으로 조성했다. 이후 주로 정치계 인사들이 회동하는 ‘막후 사랑방’처럼 자리 잡았다. 민주화 격동기의 굵직한 사건들이 이곳에서 펼쳐졌다. 김덕룡 이사장은 “YS의 ‘40대 기수론’과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가 모두 이곳에서 시작됐다”며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었다”고 회고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회동’이 이곳에서 이뤄졌고, 1984년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협력해 민주화를 이루자고 선언한 민추협 창립 선언도 외교구락부에서 진행됐다. 1987년 김영삼·김대중 당시 대통령 후보가 이곳에서 대통령 후보 단일화 회동을 했다.
정치인뿐 아니라 각계각층 인사가 모였다. 카페에는 당시 외교구락부를 찾았던 김수환 추기경과 한경직 목사 등 종교계 인사, 패티김·김시스터즈 등 문화계 인사, 전병관 역도 금메달 리스트 등 스포츠계 인사 등의 사진과 친필 서명이 걸려있다. 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방한했을 때 외교구락부를 방문한 사진과 친필 서명도 있다.
외교구락부의 전성기는 80년대 후반에 끝난다. 현대화된 음식점들이 많이 생겨나고 운영이 어려워지자 1999년 폐업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건물이 증축되고 예식장 등으로 업종이 여러 번 바뀌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대학 강의실로 쓰기 위해 1999년 이 터와 건물을 매입했던 숭의학원 백성학 당시 이사장(현재 영안모자 명예회장)의 뜻으로 역사관 형태의 ‘외교구락부’ 카페 문을 열 수 있었다. 백 명예회장의 큰아들인 백정수 현 숭의학원 이사장은 이날 “외교구락부 사장과 직원들에게 연락해 소장하고 있던 옛 자료들을 기증받아 2013년 개관 준비를 마쳤지만, 지난 10년간 추가 자료를 수집하고 역사적 사실들을 점검한 끝에 오늘에야 문을 열었다”고 했다.
옛 외교구락부 터의 일부를 사용해 조성된 카페는 50석 정도로 규모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과거 외교구락부의 현판과 방명록을 비롯해, 당시 외교구락부에서 벌어진 근현대 정치사의 주요 사건의 사진들이 해설과 함께 전시돼 볼거리가 많다. 외교구락부에서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만나 범야 세력 규합에 협력하기로 한 사진(1980년 4월 4일)이나, 당시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김영삼 총재와 양당 수뇌회담을 갖고 남북 대화와 개헌 방향 등을 협의하는 사진(1980년 3월 5일) 등을 볼 수 있다. 백 이사장은 “역사를 기억하고 공부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다”며 “앞으로 추가로 자료를 수집해 카페 2층에 따로 전시실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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