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투기자에게 공짜점심은 또 다른 빌라왕을 낳는다”
“어느 자산가격의 거품이든 거품이 붕괴할 때면 반드시 부정과 사기가 발견된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찰스 킨들버그(Charles P. Kindleberger, 1910~2003)가 1973년 초판을 낸 ‘광기, 패닉, 붕괴 : 금융위기의 역사’를 보면, 요즘 빈번한 전세 사기, 주가조작 같은 경제범죄가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드러나는 경제 밑바닥의 단면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킨들버그에 따르면, 사기 등 부정행위는 경제가 호황일 때 증가한다. 자산가격 상승 등으로 개인들의 재산이 늘어나면, 부의 증식에 동참하기 위한 탐욕 행위와 이 탐욕을 이용하려는 범죄자들의 사기 행위가 비례적으로 늘어난다는 논리다. 경제 호황을 떠받치던 유동성 공급이 끊어져서 자산가격이 고꾸라지면 사람들의 눈을 가렸던 사기 등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부패 발생 건수는 신용 공급과 아주 유사하게 경기순환의 파동이 올라가면 함께 증가한다. 신용이 늘어나지 않으면, 축축한 숲속에서 버섯이 자라나듯 부정이 피어오른다.”
이 설명을 대입해보면, 최근의 전세 사기 사건은 비정상적으로 폭등한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꺼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서울 집값이 40% 가량 폭등하면서, ‘서울에 아파트 하나 없으면 벼락 거지 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개 퍼졌다. 남들은 다 자산이 늘었는데 나만 제자리에 있으면 상대적으로 빈곤해진다는 정서가, 나중에 갚아줘야 할 빚인 전세금을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를 유행으로 만들었다.
특히 지난 2020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만든 임대차 3법은 전세 사기 리스크가 독버섯처럼 퍼졌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임대기간을 ‘2+2년’으로 늘리고 전세 가격을 최대 5%까지만 올릴 수 있도록 한 임대차 3법은 물량 부족, 가격 교란 등 임대시장 혼란을 일으켰다. 갱신 계약으로 인한 물량 부족으로 전세 가격이 폭등하자, 정부는 전세대출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임대차 3법 제정 이전 40조원 수준이던 전세대출 잔액이 이후 200조원대로 급증한 배경이었다. 집을 구하기 어려워진 청년 세대와 서민들은 빌라 전세 등으로 매수 기회를 위한 시간을 벌려고 했다.
무엇보다도 부동산 규제 일변도였던 문재인 정부가 유독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대한 임대사업자에게 각종 혜택을 유지하기로 한 조치는 전국 곳곳에서 ‘빌라왕’, ‘건축왕’ 들이 날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감, 풍부한 유동성 공급, 투기적 거래에 대한 정책 당국의 부주의 등이 삼박자를 맞춘 결과가 오늘날 전세 사기 사태를 낳았다. 피해자들이 이번 사건을 정부 정책 실패 때문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가 지난 27일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임차인들에 대한 전셋집 경매 매수 우선권 부여하고, 낙찰 자금을 지원하며, LH(토지주택공사) 공공임대를 공급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거주권 안정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다. 그러면서도 피해자 대책위원회 등에서 요구하는 ‘보증금 선(先) 보상 후(後) 구상권 청구’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피해자들은 다 평등한데 국가가 누구한테만 사기 피해금을 대신 내주겠나”고 말했다.
킨들버그는 금융사기 등으로 발생하는 신용 경색을 대응하기 위한 정책에 관한 여러 경제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하면서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경계심을 강조했다.
“도덕적 해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시스템에 안정성을 부여하기 위한 정책이 이례적인 고수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투기에 가담하도록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한 정부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고, 따라서 경기 하강 국면에서 그들이 입게될 손실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갖는다. 오늘 투기자들에게 ‘공짜 점심’이 주어지면 앞으로도 그들의 신중함은 약해질 확률이 높아진다.”
5월 국회에서 논의되는 전세 사기 피해 지원법 특별법 심사에 참여할 여야 의원들이 꼭 읽어야 할 문구다. 사기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정부 대책이 빌라왕 같이 투기를 꾀하는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공짜 점심을 주는 행위로 변질되면 곤란하다.
[정원석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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