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나오는 日 고급 료칸, 손님이 객실 청소하는 美호텔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3. 4. 29.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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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호텔의 코로나 후유증
“떠나간 직원들이 안돌아와요”
/일러스트=이철원

일본 오이타에 있는 1박에 1인당 3만엔(약 30만원)이 넘는 고급 료칸인 H별장. 지난달 2박 3일간 머무른 도쿄의 40대 여성은 “여러번 방문한 료칸인데 풍경과 요리는 여전히 좋았다”라면서도 “첫날 방에 딸린 개인 온천에 들어갔는데 청소가 안 됐는지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라고 말했다. 3인 가족이 묵으면 하룻밤에만 100만원 정도 하는 료칸인데, 일손이 부족해 개인실에 딸린 온천의 청소를 제대로 못 한 것이다.

청결함만큼은 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았던 일본의 호텔·료칸 업계에 ‘깨끗함 문제’라는 비상이 걸렸다. 일본 한 여행사대표는 “요즘 들어 일본 료칸·호텔의 청소·접객과 같은 서비스 품질이 나빠진 걸, 피부로 느낄 수 있다”며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숙련도 높은 직원들이 대거 일자리를 뜬 상황인데, 새로 급히 채용한 직원들이 머리카락 같은 세심한 청소에 서툴러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본 트렌드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호텔·료칸 숙박자의 절반 정도(53%)가 “지저분한 게 신경이 쓰였다”고 답했다.

2020년 초 이후 3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대규모 인원 감축에 나섰던 숙박 업계가 서비스 인력 재채용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요 도시들의 호텔 등이 ‘코로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온라인 여행 사이트 등엔 뉴욕 등 미국 대도시 호텔의 투숙객들이 ‘일과 후 호텔에 돌아왔을 때 청소나 베갯잇·수건 교체가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어 당황했다’는 불만을 많이 올리고 있다. 최근 뉴욕에 출장을 간 한국 대기업 회사원 김모씨는 “1박당 300달러가 넘는 맨해튼의 호텔에 3박 묵었는데, 첫 이틀간 청소가 안 돼 있어 프런트에 물어보니 ‘소모품 교체만 해주고 청소는 2박 이후부터 해준다’고 하더라”며 “호텔에서 매일 청소가 안 되면 에어비앤비(공유 숙박 플랫폼)와 다를 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미 호텔들이 객실 청소와 쓰레기 수거 등을 하지 않는 것이 ‘뉴노멀’이 됐다”고 전했다. 호텔들은 코로나 팬데믹 확산 이후 감염 우려 등을 이유로 숙박객이 체크아웃하기 전엔 하우스키퍼를 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코로나로 인한 경제활동 중단으로 투숙객이 줄어 호텔 수익이 급감한 데다, 재택근무가 대세가 돼 청소 인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것도 청소를 건너뛴 이유다. 그러나 최근 출장·여행이 급증하고 객실 예약률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복귀됐는데도 많은 호텔이 청소를 생략하는 코로나 때의 관행을 되돌리지 않고 있다.

호텔 체인이나 등급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략 2~3박까지는 손님이 특별히 요청을 하지 않으면 방 정리와 청소를 안 해주는 것이 대세가 됐다. NYT는 “투숙객들이 며칠씩 지저분한 방에서 스스로 정리·청소를 하거나, 쌓여가는 쓰레기통을 들고 객실 밖 쓰레기 수거함에 모으고, 젖은 수건을 직접 들고가 교체하거나 말려 쓰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매리엇 호텔 체인의 중저가 브랜드인 코트야드·포포인츠 등은 하루 건너 한 번씩만 방 청소를 해준다. 미국의 힐턴 계열 브랜드 중 일부도 방 청소 서비스를 요청할 경우에만 제공하고 있다. CNN은 “객실료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오르는데 호텔들이 윤리적 명분이나 직원 부족 등의 이유로 기본 서비스를 제하는 것은 이윤 극대화를 노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호텔의 ‘매일 청소’ 관행이 사라지면서 호텔 객실 관리 일자리는 39% 감소했고, 한 해 약 50억달러의 임금이 줄어들었다고 미 호텔 노조는 추정하고 있다. 또 객실을 며칠 만에 한 번씩 청소할 경우 청소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오래 걸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호텔 노조는 “매일 룸서비스를 신청해야 우리가 먹고살 수 있다”며 투숙객들이 매일 청소를 요청해달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은 코로나가 끝나면서 외국인을 포함해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는데, 청소하고 요리할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 문제다. 일본호텔협회의 최근 조사에서 숙박업의 89%가 ‘일손 부족으로 경영에 타격을 입고 있다’고 대답했다. 절반 이상(55.6%)이 레스토랑이나 바의 영업 시간을 단축하고 있고, 열곳 중 한두곳(15.9%)은 아예 가동 객실 수를 제한 중이라고 답했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교토의 한 료칸은 전체 객실의 절반만 운영한다”며 “예약은 100% 수준이라 운영 객실만 늘리면 수입은 늘겠지만 직원 채용을 못 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일손이 모자란 상태에서 청소 불량 등으로 단골 고객의 외면을 사느니 욕심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본 관광국이 지난 19일 발표한 3월 외국인 관광객은 181만7500명으로,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3월(276만136명)의 65.8% 수준까지 회복했다. 일본여행 업계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이 211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부 관광객의 불만이 불거지자 일본 정부는 관광·숙박 전략을 ‘양’(숙박자 수)에서 ‘질’(소비액)로 전환한다는 전략이다. 숙박업의 일손 부족은 어쩔 수 없으니 숙박자 수 늘리기에 매달리기보다는 덜 받더라도 고급화로 가자는 것이다. 기시다 일본 내각은 지난달 말 2025년까지 방일 관광객 1인당 소비액을 현재 15만9000엔(약 159만원)에서 20만엔으로 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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