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도 노조 허락 받는 지방 공기업들...’경영개입’ 단협 체결
서울 강북구 공영 주차장과 문화시설 등을 운영하는 공기업인 강북구도시관리공단의 경영진은 최근 노조로부터 ‘노조 간부들에 대해 인사 발령을 하려면 노조 허락을 받으라’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다. 노조가 2017년 공단과 맺은 단체협약에 ‘노조 간부에 대한 인사는 노조와 합의한 뒤 실시한다’ 등 관련 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이 노조는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144일간 파업을 했다. 강북구청 청사 무단 점거와 구청장 폭행 혐의 등으로 노조원 45명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 간부에 대한 인사 조치를 봉쇄하려는 것이다.
28일 본지가 지방공기업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공시된 각 지방공기업과 노조 간 단협을 전수 조사한 결과, 지방공기업 다수가 이처럼 노조가 인사와 경영에 개입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의 단협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가 서울 강북·도봉·중랑구 시설관리공단들과 체결한 단협에는 ‘노조 간부에 대한 인사를 하려면 사전에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민노총 부산교통공사노조와 공사의 단협에는 ‘노조 요청 시 비전임 간부를 조합 활동에 용이한 직으로 인사 협조한다’는 조항도 있다. 노조가 지정하는 간부는 ‘편한 보직’으로 보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에너지공사·제주도개발공사 등도 비슷한 조항이 있다.
서울교통공사·인천교통공사 노조는 ‘노조 선거철’ 한 달 동안은 공사가 아예 모든 조합원에 대해 전보 발령을 할 수 없게 했다. 남양주도시공사·평택도시공사 노조는 인사위원회에 노조가 지명한 사람을 넣도록 했다. 경기 양평공사의 노조는 노조 활동으로 구속 또는 수배됐을 때도 유급 휴직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또 공사가 신규 사업을 위해 계약을 하거나 신기술을 도입할 때에도 노조의 사전 동의를 받게 했다.
노조 눈 밖에 난 임직원을 징계해야 한다는 단협 조항도 있다. 부산교통공사·평택도시공사·양평공사 노조 등은 ‘조합에 불이익이 되는 행위를 한 자’를 공사가 징계하도록 했다.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노조는 ‘조합의 권위와 신용을 훼손시킨 자’, 부천도시공사 노조는 ‘조합 활동을 비방한 자’도 징계 대상으로 삼았다.
인천교통공사는 2003년 파업으로 해고됐다가 2011년 노사 합의를 통해 복직한 직원들에 대해 ‘해고됐던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하고 이에 맞춰 호봉을 조정한다’는 합의를 2021년 노조와 체결했다. 당시 노조 위원장이 2011년 복직자였는데 자기 연봉을 자기가 올린 셈이다. 이 위원장은 조만간 공사 노동이사로 선임돼 경영에 직접 관여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도시철도공사 단협엔 ‘조합원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을 때 해당 조합원이 복직을 원하지 않으면 해고 기간 임금의 200%를 위로금으로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는 공무원 노조의 인사 개입 조항 등을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공기업 노조는 공무원노조법이 아닌 일반 노조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시정 명령을 내리기 어렵다고 고용부는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국민 부담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의 인사·경영에 노조가 간섭할 수 있게 하는 단협들이 불합리하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현행 법 체계상 이를 금지할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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