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교육예산, 11명 태우려 버스 4대 부른 교육청
경북교육청은 2020년부터 3년 동안 개교 40년 이상 된 고교 22곳의 내부를 리모델링하고 최신 기자재를 들였다. 여기에 예산 36억원이 들어갔다. 그런데 올해 이 22개 학교는 노후 학교 건물을 부수고 재건축하는 ‘그린스마트스쿨’ 사업에도 선정됐다. 이들 학교는 교실에 설치한 지 3년이 채 안 된 에어컨과 가구 등을 철거해야 한다. 앞서 리모델링과 기자재 교체에 36억원이라는 ‘헛돈’을 쓴 셈이다. 박채아 경북도의회 의원은 “주인 의식 없는 예산 집행으로 업자만 배를 불렸다”고 했다.
강원교육청은 작년 10월 강원도 내 시·군에 사는 고등학생 11명을 춘천시 한 호텔에서 열린 ‘청소년 정책토론회’에 초청하면서 45인승 관광버스 4대를 전세 냈다. 버스 임차에 345만9500원을 썼다. 당시 교육청은 “미니 버스를 빌리려고 했는데 구할 수가 없었고, 택시와 비교하니 비용이 비슷해서 대형 버스를 임차하게 됐다”고 했다. 인솔 교사를 포함에 45인승 버스 1대에 3~4명씩 나눠 타고 온 셈이다.
전국 시·도교육청 교육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 출생률 감소로 학령 인구가 주는데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 규모는 오히려 늘자, 넘치는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철거할 건물에 리모델링을 하거나 멀쩡한 사무 공간 재배치, 수백억원의 관사 신축 등 혈세 낭비 사례는 각양각색이다.
28일 기획재정부와 교육부에 따르면, 교육교부금은 1972년부터 내국세의 20.79%를 떼 시·도교육청에 자동 지급하고 있다. 학령 인구가 감소해도 경제성장으로 세수가 늘어 교육교부금은 오히려 매년 불어나고 있다. 그렇다 보니 1인당 사용하는 교육교부금은 치솟는 중이다.
실제 학령 인구는 2010년 734만명에서 올해 531만명으로 13년 만에 200만명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17개 시·도교육청에 지급된 교육교부금은 32조2900억원에서 75조7600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학생 1인당 교육교부금은 1426만원이다. 2013년 623만원에서 10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었다. 2029년에는 1인당 교육교부금이 3000만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울산광역시 한 초등학교는 지난해 초 2000여 만원을 들여 1층에 있던 멀쩡한 교장실을 2층으로 옮기고 교무실을 리모델링하는 공사를 해 구설에 올랐다. 울주군의 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2021년 교문을 교체해 학교 관계자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멀쩡한 걸 왜 바꾸느냐”는 말들이 나왔다. 울산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지난 2년간 학교에 내려온 교부금이 너무 많아 일부 학교에선 굳이 안 해도 되는 화장실 리모델링 등 각종 공사를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고 했다. 울산의 한 고교 교사도 “학교마다 교육청에서 주는 돈을 눈먼 돈이라고 생각해 쉽게 쓰는 경향이 있다”며 “나중에는 쓸 데를 못 찾아 빨리 쓰라고 독촉하기도 한다”고 했다.
울산교육청은 작년 11월 제주도에 있는 호텔을 매입해 수학여행 등을 위한 학생교육원을 만들려고 예산 200억원을 편성했다가 시의회에 제동이 걸렸다. 지하 1층·지상 4층, 125실 규모 호텔을 189억3000만원에 사서, 리모델링과 집기 구매에 10억6000만원을 투입하는 계획이었다. 최근 울산교육청은 이 사업의 재추진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충남교육청은 233억원을 들여 2025년까지 예산군 삽교읍 목리 내포신도시 2700㎡에 100실 규모 교직원 공동 관사를 지으려 한다. 도의회는 “미분양 아파트와 원룸 등을 활용해도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전남교육청은 2년 전부터 247억원을 들여 전남 보성군 회천면에 교원 수련원 건설을 추진 중이다. 올해 개원이 목표였으나 최근 ‘예산 낭비’ 지적이 일어 사업이 중단됐다.
선심성 사업으로 분류돼 삭감됐던 예산을 추경안에 슬그머니 끼워넣기도 한다. 지난 10일 서울교육청이 추경안에 스마트 교육 관련 예산을 총 12조8798억원 규모로 편성했는데, 이 중 본예산 때 삭감됐던 ‘디지털 예산’이 포함됐다. 중학교 1학년 학생 전원에게 스마트 태블릿 ‘디벗’을 제공하는 예산 293억원, 중학교 전자칠판 설치 362억원 등이었다. 황철규 서울시의원은 “디지털 역량을 키운다는 명목하에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 전북교육청은 코로나 감염병 확산 우려로 사용을 말렸던 공기청정기 임차에 51억원을 썼다. 지난해 51억6150만원을 들여 전북도 772교에 공기청정기를 임차해 설치했다. 당시 교육부와 질병관리본부가 ‘공기청정기 필터 오염 시 코로나 집단감염의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로 공기청정기 사용 자제를 권고했으나 이를 무시했다.
인천교육청은 2017~2020년 약 4년간 교육감실과 부교육감실, 행정국장실 직원들이 개인 의류를 사는 데 피복비라는 명목으로 1인당 30만원씩, 총 1346만원을 사용했다. 피복비는 직원들의 민방위복이나 작업복 등을 살 때, 사회복무요원의 근무복을 구입할 때 또 환경미화원이나 청원 경찰 등의 제복을 사들일 때 쓰는 돈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교육교부금 중 일부(3조2000억원)를 떼어 대학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남아도는 예산을 재정난을 겪는 대학에 나눠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국 교육감들은 “반교육적인 행위”라며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는 결국 특별회계를 만들어 당초 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조5000억원 정도의 교육교부금을 대학에 지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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