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에드워드 호퍼와 책
“책을 읽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세계,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다. 호퍼 작품 세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차원을 재현한 데 있다. 보이지 않는 차원(무의식)을 설명하는 것은 관객의 일로 남는다.”
독일 미술사학자 얼프 퀴스터의 ‘호퍼 A-Z’(한길사)에서 읽었습니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 삶의 장면들을 알파벳 A부터 Z까지의 키워드로 포착해 쓴 책이죠. 앞서 인용한 구절은 L 항목, ‘Literature(문학)’에서 발췌했어요.
호퍼는 문학을 사랑했습니다. 작업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나려 책을 읽었답니다. 읽는 사람을 즐겨 그렸습니다. 1931년 그린 ‘호텔방’은 침대에 앉아 뭔가를 읽고 있는 젊은 여성을 그렸고, 1938년 작 ‘C칸, 293호 차’엔 기차 여행 중 책 읽는 여인을 담았습니다.
흔히들 호퍼를 ‘리얼리즘 화가’라 말하지만, 그의 리얼리즘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호퍼는 자신이 목격한 삶의 장면들을 무의식에 저장해 놓았다가, 그를 조합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냅니다. 그래서 호퍼의 캔버스 위 풍경은 어디엔가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호퍼 내면의 세계이지요. 퀴스터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차원의 재현’도 아마 이런 의미일 겁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 특별전에도 책 읽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 있습니다. 아내를 모델로 한 ‘독서하는 조 호퍼’. 조는 내향적인 남편 대신 그의 작품을 세상에 알린 1등 공신이지만 종종 남편과 반목하고 물고 할퀴며 싸웠지요. 퀴스터의 책 J 항목에 조(Jo)가 애증의 부부 관계에 대해 적은 일기의 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의 얼굴에 상처가 길게 두 개 생겼다. 보통 때는 내가 참 좋아하는 그 얼굴에.”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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