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내게 ‘가장 존경하는 보수’를 묻는다면…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2023. 4.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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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조정자

남재희가 쓴 ‘시대의 조정자: 보수와 혁신의 경계를 가로지른 한 지식인의 기록’이라는 454쪽짜리 책을 원고지 여섯 매로 독자에게 소개해야 하는 일을 앞에 두고 나는 매우 난감했다. 남재희가 누구야? 쉽게 소개하기 어렵다. 좌파로 살아가는 나는 ‘가장 존경하는 보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언제나 남재희를 얘기했다. 현재 준비 중인 죽음 관련 에세이에서 노년 생활의 모델로 남재희를 소개할 계획이기도 하다. 전 노동부 장관? 대체 한국에 노동부 장관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걸로 소개가 될까?

일단 여름휴가 때 볼 가치가 있는 책으로 소개하고 싶다. 바쁠 때 만사 제치고 볼 책은 아니지만, 인생의 전환을 생각한다면 이 책에 나오는 100여 명은 될듯한 나름 ‘방귀깨나 뀐’ 사람들의 삶이 계기가 될 수 있다. 스치며 언급된 사람들도 최소 대학총장이나 4성 장군 정도는 지냈기에 그들의 짧은 에피소드가 독자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것도 같다.

‘인공지능이 줄 수 없는 대답’이라는 대학 보고서를 써야 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휴대전화도 쓰지 않는 전형적인 아날로그형 인간이 책에다 꾹꾹 눌러 쓴 고급 정보는 인공지능이 아직은 찾거나 만들어줄 수 없다. 박정희 시대부터 MB 시대까지 보수의 한 구석에서 혁신을 생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도 있다.

경제학자 우석훈

“동창회란, 명단이나 만들어 동창들이 어디 있겠거니 알게 할 정도면 되는 것입니다.” 육참총장을 지냈고, 박정희 때 국회의원을 세 번 한 민기식의 이 말을 읽으며 무척 웃었다. 동창 관계로 현 정부를 분석하던 여의도 사람 생각이 나서였다. 이는 민기식의 중학교 동창회장 취임 연설이었다고 한다. “나는 TK니 PK니 하고 지역별로 뭉치기 시작하던 시대에 매우 뛰어난 명연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신문의 칼럼에 그 연설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민기식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다룬 원고의 마무리 문장이었다.

책에서 남재희는 자신의 전성기를 ‘무인 정권 시대의 스케치’라는 은유적인 제목으로 소개한다. 어수선하고 슬픈 시대이기는 했지만, 낭만의 시대였고, 멋진 사람들의 시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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