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난임 부부에게 ‘내일’이란…

이지윤 기자 2023. 4.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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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모임 날, 서른네 살 주인공 바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애 안 낳을 거야. 일하고 싶거든." 그러나 집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기 쉬운 자세'를 취하고, 임신이 잘되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검색한다.

임신 불가능성이 주는 형언하기 어려운 불안은 특히 그림으로 효과적으로 표현됐다.

임신에 또다시 실패했음을 직감했을 때 바다가 느낀 정체불명의 공포감은 말 풍선 하나 없이 강렬한 흑백의 대비만으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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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또 다른 날/김금숙 지음/244쪽·2만 원·딸기책방
친구들과의 모임 날, 서른네 살 주인공 바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애 안 낳을 거야. 일하고 싶거든.” 그러나 집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기 쉬운 자세’를 취하고, 임신이 잘되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검색한다. 바다 자신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마음이 확실하지 않지만 친정과 시댁의 ‘손주’ 압박에 이듬해 시험관 시술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임신은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바다는 스스로에게 “내가 진정 엄마가 되고 싶은가? 난임이라니까 더 매달리나?”라면서 되묻고 “모든 것이 내 잘못 같다”며 자신을 옥죈다.

책은 난임 부부의 내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을 통해 가감 없이 풀어냈다. 임신 불가능성이 주는 형언하기 어려운 불안은 특히 그림으로 효과적으로 표현됐다. “난임입니다”라는 의사의 말 한마디는 페이지 한쪽이 꽉 차도록 확대된 입 모양 덕에 청천벽력처럼 들리는 게 보인다. 먹빛으로 채색된 그림은 정겨움을 주는 동시에 갑갑함과 우울함을 배가한다. 임신에 또다시 실패했음을 직감했을 때 바다가 느낀 정체불명의 공포감은 말 풍선 하나 없이 강렬한 흑백의 대비만으로 전달된다.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다룬 만화 ‘풀’로 2020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만화상인 미국 하비상(국제도서부문)을 받았다. 또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룬 ‘기다림’, 발달장애 뮤지션의 이야기를 담은 ‘준이 오빠’를 펴내 국내외에서 조명 받았다. 무게감 있는 주제를 세밀한 묘사와 다감한 그림체로 풀어온 내공이 여전하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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