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에 맥주를 담가둔 예술가가 있었다
멋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끔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최근에도 그랬다. 어느 전시에 갔다가 쇼케이스에 진열된 옛날 잡지를 보고 나서다. 꼭지명은 ‘그 사람과 멋’. 그 호의 멋을 담당할 사람으로 왼쪽에는 시인 서정주, 오른쪽에는 화가 박래현이 있었다. 서정주를 다룬 면의 제목은 ‘도시에 사는 이방인’이었고, 박래현을 다룬 면의 제목은 ‘멋 부리지 않는 멋’. 서정주에 대한 글을 쓴 사람은 화가 김환기였다는 것도 밝혀둔다.
‘멋 부리지 않는 멋’을 읽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기에 전문을 소개하고 싶다. 쓰신 분의 성함은 이종환. “별로 멋을 부리려는 기색이 없는데 어딘가 멋이 들어 있는 멋이 멋 중의 멋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래현 여사는 여기에 속하는 보기 드문 멋쟁이다. 화장을 눈에 띄게 하는 법도 없고 머리는 밤낮 짱배기에 꽁져 얹은 데다가 항상 수수한 옷차림이다. 그런데 멋이 흐른다. 무르익은 예술가의 교양에서 우러나는 멋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짱배기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정수리’의 경상도 방언이라고 한다. 꽁지머리는 들어봤어도 ‘꽁지다’라고 동사형으로 쓰는 것은 처음 보았다. 1960년대의 잡지 같은데, 말이 이렇게 변해왔구나 싶었다. 또 이종환 님께서 쓰신 ‘짱배기에 꽁져 얹은’ 스타일은 수수함과는 거리가 멀다고도 말씀드리고 싶다. 사진 속의 박래현은 앞머리와 옆머리를 띄워서 볼륨을 준 후 머리를 뒤로 작게 똬리 튼 시뇽 스타일을 하고 있다. 소위 ‘혼주 화장’할 때 하는 올림머리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거기에 트위드 투피스와 쉬폰 블라우스를 입고 계시기에 어떻게 ‘멋 부리지 않는 멋’인지 나는 정녕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멋을 부리는 게 죄인가?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다. 영화배우처럼 외모 자본이 필요충분조건인 여성이 아닌 여성 화가라면 말이다. 그래서 멋을 낸 화가의 사진을 실어놓고도 ‘멋을 부렸다’하고 하지 못하고 ‘멋 부리지 않는 멋’이라고 한 건가 싶다. 너무 수세적이다. 선과 색으로 미적인 주장을 펼치는 게 직업인 사람이 자신의 분위기도 그럴듯하게 연출할 수 있는 건 능력이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기에 이런 금욕적인 광경을 보면 가슴이 조여온다.
하지만 마지막에 슬쩍 적어두신 이 문장에는 사로잡혔다. “그 밖에 또 하나, 샘에 언제나 맥주를 담가 놓고 사는 생활의 멋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상쾌해졌다. 힙플을 표방하는 술집에서나 맥주를 담가 놓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주로 파란 ‘바게쓰’에다가. 샴페인 쿨러를 모방한 금속 바스켓일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파란 바께쓰 쪽이 더 유쾌하다. 그 정도를 보며 즐거워했었는데, 샘이라니요!
샘은 물이 솟아나는 데를 이르는 말 아닌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낙수장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이게 가능해? 아니면 자연인입니까? 샘이라니요, 샘이 납니다. 이런 막말을 하게 된다. 정말 집에 샘이 있었다는 건지, 연못이나 우물을 샘이라고 한 건지, 집 근처에 전용으로 쓰는 샘이 있던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차가운 물에 맥주를 담가 놓았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집에 샘이 있다면 놀랍고도 부러운 일이지만, 유사 샘이라도 그게 어딘가 싶기에.
아마도 우물일까? 물이 지면에 노출되어 있는 것보다 지하에 있어야 맥주가 시원하게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1960년대 한국의 가정에서 맥주를 마시려면 집에 최소한 샘이나 우물이 있어야 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가 전시에서 본 잡지의 발행년을 1960년대로 추정하는 이유는 1960년대 후반에 박래현이 미국으로 갔기 때문이다. 박래현과 김기창 부부는 1954년에 군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이후 성북동에 한옥을 장만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이 샘은 성북동 한옥에 있던 것일 테다.
샘에 맥주를 담가 놓고 마셨다는 글은 내게 영향을 끼쳤다. 그게 어떤 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술을 쟁여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일었다고 해야 할까. 아직까지 술을 쟁인 적이 없다는 게 겸연쩍기까지 했다. 생활의 멋은커녕 어떤 문턱조차 넘지 못한 느낌이랄까. 내가 술꾼이라고 자부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이 년 넘게 쓰고 있는데 너무 온건하달지… 그렇다. 너무 수세적이라는 느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술을 마시는 것 이상으로 몸 걱정을 하는 편이니까.
최소한 와인 한 박스, 그러니까 한 종류의 술을 6병 정도는 사야 ‘쟁인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맛있어도 한 병 더 사는 정도다. 내가 아는 술꾼 중에 소주를 궤짝으로 쌓아놓고 마신다는 분, 혼자서 소주 열일곱(어떤 의미의 숫자인지는 알 수 없다) 병을 드신다는 분, 맥주를 궤짝으로 사놓고 잔치를 하신다는 분이 계시긴 한데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랬던 내가 맥주 8캔을 쟁였다. 처음이다.
이네딧 담이었으니까. 처음으로 한 모금 마시고서 ‘아, 맛있어!’라고 말해버린 맥주가 이네딧 담이었다. 오렌지와 고수 향이 훅 끼치기도 했지만, 어두운 유리병의 병목에 빨간색 라벨이, 병의 하단에 황금색 별이 있는 병의 생김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못하겠다. 나중에 캔으로 출시된 이네딧 담도 마음에 들었다. 빨간색 라벨과 황금색 별은 유지하되 검정색인 이네딧 담의 캔은 아름답다고 해야 한다.
이번에 이네딧 담을 쟁일 수 있던 이유는 맥주 4개 행사에 이네딧 담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데 이네딧 담이 있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이네딧 담은 값이 나가는 편이라 나는 다 팔릴까 봐 조급해졌고, 8개를 집어들었다. 더 살까 하다가 너무 많으면 질릴 수 있어 타협한 숫자가 8개였다.
시원한 동시에 향기롭고, 솔티하기까지 하다. 알고 보니 페란 아드리아가 스페인 맥주 회사 담과 함께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대신할 맥주로 개발한 게 이네딧 담이었다. 맥주 캔에 페란 아드리아의 이름이 적혀 있던 것이다. 페란 아드리아가 누구인가? 분자요리의 대가이자 세상에서 가장 유명했던 레스토랑 엘 불리의 오너 셰프가 아니던가. 엘 불리는 2011년 폐업했는데 2008년 출시된 이네딧 담은 여전히 있다.
이네딧(inedit)은 ‘예전에 시도된 적이 없는’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라거 맥주와 밀 맥주를 결합한 스타일이라 그런 이름을 붙인 것 같다. ‘내가 만든 이 맥주가 최고’라는 뜻일지도 모르겠지만. 난생처음으로 술 쟁이기를 시도하게 한 술의 뜻이 ‘예전에 시도된 적이 없는’이라니, 좀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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