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오뚝이 정현, 될 때까지 한다
5년 전 1월 25일 자 본지 1면의 ‘톱기사’로 “당당한 22세 정현에 빠져들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국내 테니스 선수 관련 기사가 1면에 등장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는 정현(27)이 2018년 1월 24일에 한국인 최초로 테니스 메이저 대회(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인 호주오픈 단식 4강에 올랐기 때문이다. 정현 이전의 최고 기록은 이덕희(70)의 1981년 US오픈 16강 및 이형택(47)의 2000·2007년 US오픈 16강 진출이었다.
그는 당시 한국에 ‘정현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세계 강호 앞에서 기죽지 않고 분투하는 모습에 청년들은 “왜 스포츠 스타가 ‘국민 영웅’이 될 수 있는지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4강 신화’를 바탕으로 정현은 2018년 4월에 세계 19위까지 올랐다. 이는 여전히 역대 한국 선수 최고 순위로 남아 있다.
5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상황은 정반대다. 어느덧 기억 속에 희미해진 ‘잊힌 스타’가 됐고, 현재 마땅한 세계 랭킹조차 없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도 해결됐던 그에겐 올라갈 일만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2019년부터 대회 기권이 잦아지더니 2020년 9월 프랑스오픈 단식 예선 이후엔 아예 테니스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2021년 초엔 수술대에 올랐다. 작년 9월에 체력적 부담이 덜한 복식 대회에 나섰다가 허리 문제가 재발해 또다시 재활에 돌입했다. 정현은 이 기간 동안 ‘부상 트라우마(trauma)’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라켓을 내려놓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아니었다. 테니스는 격렬하기로 악명이 높다. 공을 치기 위해선 허리를 쉴 새 없이 돌려야 한다. 테니스 선수들에게 허리는 생명줄이다.
이렇게 끝날 수는 없다는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정현은 허리 통증을 최소화하는 동작을 찾아내 익혔다. 특히 수준급으로 개선됐던 서브와 안정적인 백핸드 등 자신의 주요 무기였던 폼을 바꿨다. 선수가 익숙했던 폼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뒤집는 일이다. 재활하면서 힘들 땐 하루하루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작은 행동을 찾고 이를 실천하며 소소한 행복을 만끽했다고 한다. 다시 일어서기 위한 그 나름대로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인고의 세월을 거쳐 그가 마침내 돌아왔다. 지난 26일 2년여 만에 치른 서울오픈 챌린저 단식 복귀전에서 비록 졌지만, 허리 통증이 없었다. 트라우마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출발선에 섰다”고 담담히 말했다.
나는 정현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완벽한 복귀는 아니었지만, 포기하지 않는 그의 스포츠 정신을 응원한다. 정현의 좌우명은 ‘될 때까지 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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