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손님들과 즐거운 한때

김황식 전 국무총리 2023. 4.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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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 소통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양한 언론 매체에 더하여 SNS 등 소통 수단이 넘치지만, 사회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 섬처럼 떨어져 있습니다. 소통은 끼리끼리에 그치고 때론 편 가르기 수단이 되었습니다. 만남과 토론이 이루어져도 각자 애당초의 주장을 끝까지 고집할 뿐 주장을 바꾸거나 타협하는 것을 보기 힘듭니다. 소통의 기본은 듣는 것, 곧 경청입니다. 경청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자 존중으로 우선 인간관계를 좋게 만듭니다. 또한, 뻔한 얘기일지라도 듣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일러스트=김영석

총리 재직 시 소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을 공관으로 초청하여 만났습니다. 그들 가운데 삼청동 공관 주변에 살던 교동 초등학교 4학년생 4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청동 퇴근길이 차들로 막히면 옆으로 난 작은 골목길을 이용하여 퇴근할 때 가끔 만났던 아이들입니다. 해 질 녘 그 골목길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지나가는 제 차를 피하여 서며 큰 소리로 합창하듯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골목에서 구슬치기, 공놀이 등을 하며 왁자지껄 떠들며 놀다가 저녁밥 때가 되면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즈음에는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친 후 학원에 가거나 집에 틀어박혀 각자 자기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이 노는 골목 풍경은 지금은 낯선 모습입니다. 옛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우렁차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정다웠습니다.

그 아이들을 토요일 점심에 공관으로 초청하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 국정에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를 듣는데 이들의 생각도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관 초대 인사(?) 중에서는 최연소자였고, 연회장이 아닌 안방으로 초대하여 아내가 요리하여 대접한 유일한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오전은 괜스레 마음이 설레기까지 하였습니다. 빈손이 아니라 빼빼로 과자 등을 선물로 들고 왔습니다. 그 아이들이 거의 다 먹었지만.

아이들과 학교생활 이모저모, 취미, 장래 희망과 꿈, 애로 사항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장래 유엔 사무총장이 되고 싶고 피아니스트도 되고 싶다는 꿈이 많은 A군, 거실에 있는 피아노를 쳐보라 하였더니 스스럼없이 한 곡을 멋들어지게 연주하였습니다. B군은 아직은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요요를 취미 삼아 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세계적 달인이 되고 싶다며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며 보여주었습니다. C군은 어머니가 외국인인 다문화 가정 아이임을 밝히며 장래 축구 선수가, D군은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다문화 가정 아이인 C군을 조심스레 살펴보았으나 활달하고 구김살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당시 인기 TV 프로인 개그콘서트 멘붕스쿨 한 장면을 시연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전에 저희 내외를 어떻게 즐겁게 해줄지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어른스러웠습니다.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으나 어려움이 없다고 말하면서 한 가지 애로는 여자아이들이 가끔 때려 그것이 힘들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뜻밖의 하소연이었습니다. 웃음이 나왔지만 이렇게 세상이 변했나 하고 생각하면서, 폭력으로 맞대응하지 말고 좋은 말로 타이르되 그래도 안 되면 선생님께 말씀드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지금 그 아이들, 대학생이거나 군 복무 중일 것 같습니다.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합니다. 애당초 목표와 꿈을 아직도 간직하고 정진하고 있는지, 아니면 생각을 바꾸거나 목표가 흔들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흠이 될 일은 아닙니다. 무언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면. 그들을 만나면 시행착오는 젊음의 특권이니 어느 경우든 낙담하지 말고, 지금은 예전과는 달리 “인생도 길고, 예술도 길다”는 인생 2모작, 3모작 시대이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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