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 불안과 싸운 카프카 “책, 내 안의 얼음바다 깨는 도끼”

이영관 기자 2023. 4.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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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작가] 탄생 140주년 맞은 카프카
돌연한 출발

돌연한 출발

프란츠 카프카 지음 |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만6000원

나의 카프카

나의 카프카

막스 브로트 지음 | 편영수 옮김 | 솔 출판사 | 3만5000원

“그러나 모든 것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었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1923년 집필한 단편 ‘굴’은 이렇게 끝난다. 그가 죽던 해, 마지막 연인 도라 디아만트에게 자신의 원고를 불태우게 하며 유일하게 제외한 소설. ‘나’는 안락한 세상을 꿈꾸며 굴을 파고 들어간다.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적을 끝없이 상상하며 불안에 떤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결말. 생의 불꽃이 꺼져가던 때, 카프카는 자신의 삶이 이와 같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올해는 카프카가 태어난 지 140년 되는 해다. 그가 남긴 작품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에 불안과 상상의 연료로서 살아 있다. Books는 두 권의 책을 중심으로 카프카를 소환한다. 하나는 탄생 140주년을 기념해 카프카의 단편 32편과 육필 원고·드로잉 등에 대한 해설을 묶은 ‘돌연한 출발’. 다른 하나는 카프카의 오랜 친구이자 최초의 독자 막스 브로트(1884~1968)가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해 쓴 글을 묶은 ‘나의 카프카’다.

◇배신인가, 우정인가

카프카 문학은 친구 막스 브로트의 배신(?)으로 빛을 발했다. 카프카는 브로트에게 자신의 유고(遺稿)를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브로트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세 장편소설(‘성’ ‘소송’ ‘실종자’) 등 미완성 작품을 비롯해, 생전 출간되지 않은 카프카의 작품들을 모아 냈다. 브로트가 유언을 지켰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작품들이 다수다. 그는 카프카가 정말 유고를 없앨 생각이었다면, 다른 이에게 유언을 남겼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브로트는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을 처음 보여주고 함께 평가하는 독자이자, 원고를 책으로 출간하도록 독촉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입에서는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브로트가 일기에 적은 카프카의 첫인상이다. 둘의 첫 만남은 1902년 대학생들의 독서 모임. 강연자였던 브로트가 니체를 ‘사기꾼’이라고 하자, 당시 니체에 심취했던 카프카가 강하게 반박했다. 언쟁을 계기로 친해진 것이다. 브로트는 체코의 작가이자 비평가였으며, 카프카와 같은 유대인이었다. 둘의 문학적·정신적 유대감은 ‘우정’이라는 단어 그 이상이다. 물론, 브로트는 가독성을 위해 카프카의 일부 원고를 임의로 편집했다는 점에서 비판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원고·스케치·편지 등을 보존해 오늘날 우리가 카프카를 만날 수 있게 했다는 점만큼은 변함없다.

◇프라하 토박이

카프카는 대다수 작품을 독일어로 썼기 때문에, ‘독일 작가’로 종종 오해받는다. 그러나 그는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토박이’다. 잠시 독일 베를린에서 지낸 적이 있으나 평생을 프라하에 살았고, 폐결핵으로 죽은 뒤 그곳에 묻혔다. 이런 삶의 조건은 어릴 적부터 그에게 정체성 혼란을 가져다 줬다.

‘돌연한 출발’을 옮긴 독문학자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는 카프카를 “삶의 국외자적 상황에 처한 이방인”이라고 했다. 프라하 시민의 상류층 10% 정도만 썼던 독일어가 모국어였고, 독일어가 모국어지만 유대인이었고, 동시에 유대교 신앙은 없었다는 설명이다. 전 교수는 이것을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으로 정체성 확립의 어려움을 조성하는 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불행한 가정 환경, ‘변신’의 모티브로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에는 작가의 가족사에서 비롯한 고민이 반영돼 있다. 가장 역할을 하다 어느 날 해충으로 변해 쓸모없어지면서 죽어간다는 설정. 강압적이지만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선한 인물이나 결국 이빨을 드러내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단편 ‘학술원에의 보고’ 역시 감옥과 같은 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원숭이가 인간을 모방해 출구를 찾는 이야기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특히 그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카프카는 문학 청년이었으나 가부장적 아버지에 못 이겨 법률을 공부했고, 관립 보험 회사에서 수년간 일했다. 동시에 밤에는 독일어로 글을 쓰는 삶을 지속하며 자신의 삶을 갉아먹었다. 우울증을 앓았던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의 갈등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다. 카프카는 자신을 둘러싼 불안 속에서도 온몸을 글에 바쳤다. 그는 임종 전날까지 새 작품의 교정지를 읽다가 사망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카프카가 1904년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속 이 문장은 자신에게 보낸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가 작품에서 그린 인물들은 자신의 삶처럼 불안과 우울에서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 그럼에도 ‘굴’을 파고 들어간다. 독자들에게 그곳에 들어오라고 손짓하며 각자 내면의 불안을 마주보도록 만든다. 카프카의 소설은 앞으로도 각자의 ‘굴’을 파는 이들에게 ‘도끼’와 같은 존재가 되리라 생각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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