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스마트 총’ 판매 소식에… 韓 전세 사기를 생각했다
총기 권리 강력한 美서 비극 막을 희망 보인다
지난주 토요일이었다. 아들이 다니고 있는 크리스천 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고등학교 캠퍼스처럼,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도 이번 주부터 무장 경찰관이 근무하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이 조용하고, 경치 아름답고, 살기 좋은 북뉴저지 타운에 자리 잡고 있는 크리스천 학교에서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방문하는 학부모 등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 경찰관들을 고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27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 이후 심각한 토론 끝에 내린 결정인 듯했다. 크리스천 초등학교인 커버넌트 스쿨에서 총격이 일어나 아홉 살 어린이 세 명과 어른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지방 초·중·고등학교에 총으로 무장한 경찰이 하루 종일 순찰을 돌아야 하는 현실 말이다.
나는 미국에서 거의 41년을 살았고 시민권을 획득한 지도 19년이 됐다. 하지만 미국 총기 문화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으로 생각해왔다.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총알을 맞아 다치거나 사망할 수 있는 가능성. 이는 미국에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미국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지불해야 하는 ‘또 하나의 세금’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에 따라 확률이 낮을 수는 있겠지만, 누구도 총기 폭력에서 자신이나 가족 등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는 없다. 미국에서 총기 소지 권리는 다른 법적 권리보다 훨씬 절대적이다. 예를 들어 작년 6월 대법원은 여성이 낙태할 수 있는 권리를 위헌으로 판결했는데, 낙태권은 50년 전 미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따라 주어졌기 때문에 뒤집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총기 소지 권리는 1791년 미 연방 헌법에 더해진 ‘권리장전(Bill of Rights)’ 중 하나다.
새롭게 법을 만들어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거란 희망은 오래전에 잃었다. 2012년 12월 14일, 코네티컷주 뉴타운에 있는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스무 명의 어린이와 여섯 명의 어른이 살해됐다. 이 사건으로 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의미 있는 제도 개정은 없었다. 그 많은 어린아이들의 희생에도 법이 바뀌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정치 지도자들이나 법에서 해결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사라졌다.
빛조차 볼 수 없는 나에게도 총기를 구입하고 소지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해주는 주가 몇 있단 말을 들었다. 심지어는 시각장애인인 내가 혼자 총을 갖고 사냥을 할 수 있는 권리까지 보호해주는 주도 있다고 한다. 시각 장애 때문에 나의 헌법적 권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절대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난센스일 것이다.
그런데 모처럼 희망의 빛을 보여주는 뉴스를 접했다. 총 주인이나 등록된 사용자만 발사할 수 있는 ‘스마트 총’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언급됐었다. 1990년대에 미 연방 정부는 총기 폭력을 줄이기 위해 스마트 총 기술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에 투자하기도 했단다. 2000년엔 총기 업체인 스미스앤드웨슨사(社)가 지문 센서를 통해 주인을 알아볼 수 있는 총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독일 회사 아마틱스는 2014년에 IP1이라는 스마트 총을 개발했는데, 사용자가 차고 있는 손목 시계를 통해 발사가 가능한 권총이었다. 이 밖에 사용자가 손가락에 끼는 반지, 총을 잡는 손 모양, RFID(무선 인식 전자 태그) 기술 등으로 발사를 제한하는 총 프로토타입들이 만들어졌으나 성공을 거둔 적은 없다. 정부가 스마트 총 기술 사용을 명령할 수 있다는 반대 주장, 필요할 때 즉시 총을 발사할 수 있는 확실성이 떨어진다는 염려, 그리고 스마트 총 판매 업체들을 보이콧하는 총기 권리 지지자들 때문에 스마트 총 판매가 큰 성과를 보지 못한 것이다.
콜로라도주에 있는 스타트업 바이오파이어(Biofire)의 대표는 올해 26세가 된 카이 클로퍼(Kai Kloepher)다. 그는 15살 때 집 근처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 이후로 스마트 총 아이디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2년 콜로라도 오로라시의 한 영화관에서 총격으로 12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클로퍼는 자신이 만든 스마트 총 모델로 국제 과학 경시대회에서 상금을 받았고, MIT에 합격하며 인정을 받았다. 많은 천재들이 그랬듯이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바이오파이어를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3000만달러의 벤처 펀딩을 받고 50명의 직원이 일하는 그의 회사는 드디어 사용자가 집어들자마자 발사 제한이 풀리는 총을 개발했고, 곧 판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지문 센서와 얼굴 인식 기술을 통해 항상 잠겨 있는 총의 발사 기능을 푸는 방식으로, 적어도 아이가 부모의 총으로 형제나 친구, 선생님 등을 해치는 일이나, 훔친 총으로 누군가 사살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총기 소지 권리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반대해 온 국민들도 이런 해결책을 계속 반대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매년 4만5000명 이상(2020년 통계)의 사망을 낳는 총기 문화도 변하기 시작하지 않을까?
문화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소비자 사기 범죄를 막기 위한 시스템을 너무 탄탄하게 만들어 놓은 탓에 외국인들, 예를 들어 나나 아내는 한국에 가면 음식 배달 앱이나 차를 부르는 앱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 우리 이름으로 모바일 계좌를 열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모바일로 인증하는 한국 문화가 소수의 방문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치킨 배달 따위의 사기를 막기 위해 이토록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은 나라에서 전세 사기는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스마트 총처럼 기술 개발, 시스템 설치, 그리고 정책만 잘 만들어 놓으면 피해자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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