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오래된 세계로
한 젊은 남성이 버스정류장의 유리면으로 뛰어들었다. “오 마이 갓”이라는 목소리와 함께 유리는 산산이 부서졌는데, 정작 위험천만한 행동을 벌인 당사자는 태연하게 일어나 사건의 장소를 벗어났다. 그의 동료가 영상으로 기록한 이 장면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져나갔다. 공공의 자산을 파괴한 행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댓글창을 채웠지만, 작가 마크 레키는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와 자신이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에게 너무도 강렬하게 다가온 이 장면을 토대로, 그 젊은 남성의 행동에 공명한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든 묘사하고 싶었다.
“닉 로의 ‘나는 유리 깨지는 소리를 사랑한다’는 노래에는 ‘나는 유리 깨지는 소리가 좋아요. 깊은 밤. 나는 그 상태의 소리가 좋아요’라는 가사가 있어요. 그도 나도 그런 상태에 있어요.”
일상적이고 익숙한 세계의 일부를 명분 없이 파괴하는 남성의 행동은 견고하지만 동시에 충분히 위태로운 세계의 실체를 각성시킨다. 작가는 ‘유년과 소비주의’ ‘요정과 트라우마’ ‘유령과 콘크리트’ ‘역사와 신화’처럼, 딱히 대비 관계에 놓여 있지는 않지만 병렬해 놓았을 때 기묘한 감각을 끌어내는 단어들을 상상하며 이 짧은 클립을 확장시켜 나가고, 소리를 입혔다.
“영국의 스트리트 블로그를 비롯한 여러 소셜미디어에 포스팅된 이 작은 사건은 기적적인 순간입니다. 훨씬 초자연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클립은 나에게 더 중요해졌습니다. 유리는 스크린이고, 포털이며, 그는 여기에서 저기로, 어쩌면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자신을 전송하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을 반복재생하다 보니, 나도 그처럼, 여기 있는 나를,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전송하고 싶어진다.
김지연 전시기획자·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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