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병원도 ‘오픈런’… “시급 5만원에 줄 서드려요”

김아진 기자 2023. 4. 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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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밤샘하는 줄서기에
대행 알바까지 등장
지난 22일 새벽, 서울의 한 복합건물 내 병원 앞에 다이어트 약을 짓기 위해 수십 명이 줄을 서 있다. 한 30대 여성은 “새벽 4시에 왔지만 늦은 오후에나 의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 김아진 기자

“오늘은 꼭 성공할 거예요.”

지난 22일 토요일 새벽 6시 서울의 한 복합건물 1층. 캠핑용 의자와 깔개, 이불까지 대동한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줄을 섰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롤렉스 같은 명품을 사려고? 아니다. ‘△△△의원 오픈런’을 위해 밤샘을 자처한 이들이었다. △△△의원은 전국 3대 다이어트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노출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다이어트 약을 잘 짓는다는 병원 앞에 대기 줄이 이어지고 있다. 지방에서 왔다는 20대 여성은 “지난달부터 여기서 약을 먹었는데 7㎏을 뺐다”는 얘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놨다. “두 달 더 먹고 확 빼려고 새벽 4시부터 줄 섰는데 오후 늦게나 약을 탈 수 있겠어요. 지난번에 왔을 때는 외국에서 이 약 사려고 온 분도 봤어요.”

이 얘기를 듣고 있던 50대도 “내 친구도 여기서 13㎏이나 뺐더라”며 “‘결정을 늦출수록 너만 손해’라는 말에 오늘은 딸과 함께 작정하고 왔다”고 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모녀는 각자 돗자리와 담요를 챙겨왔다.

물건으로 줄 서면 경찰 부르기도

병원 앞 공지문에는 진료를 보기 위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는 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물건으로 줄서는 일은 금지한다면서 “분쟁 시 다른 분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경찰 중재를 요청한다”고 돼 있었다. 토요일엔 70명까지, 평일엔 90~120명까지만 번호표를 나눠준다고 했다. 백화점 명품 매장과 같은 모객법이다.

이날도 오전 8시쯤 병원 관계자가 나와 번호표를 주기 시작했다. 줄을 섰지만 번호표를 받지 못한 십수 명은 울상으로 돌아섰다. 번호표를 받은 이들도 오전 10시 개원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이 건물 관리인은 “코로나 시절에도 건물 밖까지 줄을 섰는데 최근 미국에서 다이어트 주사가 나온 뒤로 줄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충남의 ○○○의원도 줄을 서야만 다이어트 약을 받을 수 있다. 소문이 나서 전국 곳곳에서 환자들이 몰려드는데, 토요일에는 텐트까지 등장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이곳에 다녀왔다는 한 네티즌은 블로그에 “오전 7시 전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은 꽉 차고 갓길에 주차했더라”며 “평일 내 앞에 100명이 넘게 서 있었다”고 적었다.

일각에선 마약류 식욕 억제제 과다 복용에 대한 우려도 표하고 있다. 해당 병원에 다녔다는 한 20대 여성은 후기 글에서 “다이어트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 약은 정신을 지배하는 약”이라며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최근 제주도에서도 마약성 다이어트 약을 다량으로 먹고 경찰차, 버스, 승용차 등 총 6대의 차량을 추돌한 혐의로 20대 여성 A씨가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약은 A씨 어머니가 처방받은 약인데 몰래 복용했다고 한다.

줄 서기 알바 비용은 20만원

유명 병원만 타깃해 줄을 서주는 알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의원 최저가 대행’이라고 선전하는 한 업체는 밤 11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줄을 서주는 조건으로 16만원을 요구했다. 시간당 2만원꼴이다. 비싼 곳은 시간당 5만원을 달라고 했다. 8시간을 서면 40만원인 셈이다. 지방에 있는 ○○○의원 줄 서기 대행 업체는 주중 6만원, 주말 9만원을 불렀다.

검색 포털사이트에 ‘○○○’ ‘△△△’ 줄 서기 대행을 치면 여러 업체가 나왔다. 일부는 병원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처럼 다이어트 약을 대신 홍보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했다. 오히려 줄 서기 대행 폐해를 줄이기 위해 번호표를 나눠주면서 신분증을 확인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 알바 업체 관계자는 “번호표를 나눠주기 직전에 고객님이 오셔서 손을 바꿔야 한다”며 “눈치 못 채게 혼잡할 때 몰래 자리 바꿈을 하면 된다”고 했다. 줄 서기 알바는 카카오톡 오픈채팅, 네이버 블로그·카페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알바생은 “병·의원은 절실한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그 심리를 이용해 비용을 더 비싸게 부른다”고 했다.

인천의 한 어린이병원은 코로나 치료로 유명해진 뒤 알바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 대행 업체를 이용하자 지역 환자들 불만이 컸던 것이다. 큰 싸움이 난 적도 있다. 그래서 신분증 지참은 물론 아이를 데리고 와야만 번호표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을 바꿨다.

한 육아 카페에서는 아동 병원 대리 접수 알바에 대한 찬반을 묻는 글도 올라왔다. 독박 육아를 한다는 엄마는 “몇만원에서 몇십만원까지 주고 퀵서비스를 쓴다”며 “돈이 들어도 저한테는 꼭 필요하다”고 썼다. 하지만 다른 엄마는 “시간을 돈으로도 살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도의적으로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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