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대학인가요?”… 20년 청춘 바친 교직원은 고개를 숙였다
올해 신입생 27명
진주 한국국제대 가보니
경남 진주 시내에서 동쪽으로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월아산에 둘러싸인 대학 캠퍼스가 나온다. 4년제 사립대학인 한국국제대학교다. 지난 25일 찾은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본관 1층 유리문에 붙은 봉사동아리 홍보 포스터의 날짜는 ‘2019년 3월 4일’. 한 층 돌아 올라가면 나오는 주차장에는 총장 업무 차량으로 쓰던 에쿠스 승용차 두 대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중간고사 기간이지만 중앙도서관 열람실은 불 꺼진 채 아무도 없었다. 도서관 로비 ‘신간 코너’에는 2018년 1월 도장이 찍힌 책들이 빽빽했다. 교정에는 가지치기를 못한 나무들이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고 농구 골대와 벤치에는 녹이 두껍게 슬었다. 폐교된 대학 아니냐고 물을 법하지만 아니다, 아직은.
대학가에서 ‘1000원의 아침밥’이 유행이라지만 이곳과는 상관없는 얘기다. 하나 있던 학생식당은 지난해 문을 닫았고 기숙사식당도 올해부터 운영을 접었다. 컵밥집과 돈가스집, 카페도 있었지만 전부 폐업했다. 식당이랄 수 있는 건 학생복지관에 휑뎅그렁하게 불 켜진 프랜차이즈 편의점. 점심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컵라면과 삼각김밥, 도시락을 집어들고 편의점 간이 테이블에 앉았다. 특수교육학부 4학년 남학생은 “일주일에 세 번 등교하는데 매번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한다”고 말했다. 경찰행정학과 학생은 “복학해 보니 학생식당도, 진주 시내까지 다니던 통학 버스도 없어졌다”고 했다.
한국국제대는 지난달까지 수개월째 공과금을 못 내 전기와 수도가 끊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018년 4월부터 밀리기 시작한 교직원 임금은 체불액이 100억원에 이른다. 올해 신입생은 27명. 모집 인원은 393명이었는데 충원율이 6.9%에 그쳤다. 축제도, 동아리도, 학생회도 없다. 한 대학 탐방 유튜브는 이렇게 평가했다. “당장 내일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대학.”
◇대학은 어떻게 무너졌나
한국국제대는 1978년 전문대학인 진주여자실업전문학교로 개교했다. 이후 남녀공학 개편(1980년)을 거쳐 2003년 4년제로 다시 문을 열었다. 대학 설립 조건이 완화되면서 신생 대학들이 줄줄이 개교하고 대학 진학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였다. 당시 이 대학 입학 정원은 1265명. 지금까지 남아 있는 교수와 직원 대부분은 학교 규모가 가장 컸던 그때 들어왔다고 한다.
“학교가 멀쩡했을 때는 건물 한 동에 미화원이 한 명이었지. 학생들이 바글바글해서 일이 힘들기는 해도 산자락이라 꽃도 많고 명랑한 학교였는데.”
건물 바깥에 쌓인 박스를 정리하던 60대 환경미화 직원이 말했다. 환경미화 직원 4명도 지난 넉 달간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 지경으로 몰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8년 교육부가 실시한 ‘대학 기본역량진단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것이었다. 설립자의 장남인 전 이사장이 교비 횡령 등으로 수차례 구속된 이력 때문에 감점을 4배 받은 것이 치명적이었다. 이때부터 교육부 보조금이 모두 끊겼고 학생들은 국가 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다. 2018년 80.5%(738명 모집에 594명 등록)였던 신입생 충원율이 2019년에 42.6%(664명 모집에 283명 등록)로 고꾸라졌다. ‘부실 대학’으로 낙인 찍히며 교수 채용이 어려워지고, 가을이면 교직원 일동이 고교를 돌아다니며 입학 설명회를 하는 ‘신입생 영업’조차도 사치가 됐다.
임금 체불이 길어지자 교수와 직원들은 하나 둘 떠났다. 155명이었던 교수는 5년 만에 48명으로 줄고 행정 직원은 80명에서 8명이 됐다. 이 대학에서 주요 보직을 맡았던 한 교수는 “잘못은 법인이 했는데 피해는 교직원과 학생들이 감당하고 있다”며 “비리 사학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부실 대학 낙인을 찍어 팔다리를 잘라놓고 법인 정상화를 후속 지원해주지 않은 교육부도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일부 퇴직 교직원이 밀린 급여를 받고 싶다며 법원에 압류 신청을 넣어 106개에 달하는 교비 계좌가 전부 압류되기도 했다. 현행법상 사립 대학 수업료 계좌는 압류할 수 없게 돼 있지만 법인이 압류 해제 신청을 하지 않아 등록금을 받지도, 공공요금을 내지도 못하는 상황까지 달했다.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뒤로 새 통장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받고 3개월치 공과금도 납부하면서 전기가 끊길 위기는 겨우 면했다.
◇교직원은 빚 내고, 교수는 ‘편입 상담’
“이런 게 학교예요? 이럴 거면 왜 입학생을 받았어요?”
올 3월 편입 합격한 한 학생이 자퇴 서류를 떼면서 따져 물었다고 한다. 20대에 첫 직장으로 들어와 20년 청춘을 바친 교직원은 아무 대답도 못했다. “화도 안 나요. 그 학생한테 너무 미안했죠. 학교가 이 지경이면 입학 안 받는 게 맞거든요.”
이날 캠퍼스에서 만난 학교 구성원들 얼굴엔 우울이 짙었다. 사회체육학과 한 교수는 “아직 수업을 듣겠다는 학생들이 있어서 어떻게든 졸업을 시키려고 남아 있는데 계속 신입생을 모집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편입 상담을 해준 지도 꽤 됐다”며 “꿈이 있어 들어온 학생한테 다른 학교로 가라고 상담해주는 게 얼마나 착잡한지 모른다”고 했다.
직원들은 빚을 내 버티고 있다. 한 교직원은 “옛날에는 선 보러 나가면 대학 교직원은 ‘신의 직장’ 아니냐며 연봉이 얼마인지 떠보는 사람도 많았는데 지금은 우리끼리 ‘신이 버린 직장’이라고 자조하는 처지가 됐다”고 했다. 이 대학 졸업생인 다른 교직원은 “처음에는 한두 달씩 월급이 밀려도 들어오곤 했으니까 기다리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고 했다.
학생 대부분이 폐교는 예정된 수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수체육교육학과 학생(22)은 “폐교가 되면 교육부에서 특별편입학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전국에 특수체육교육학과가 몇 개 없어서 같은 학과로 편입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재정 한계’ 대학 32곳
교육부는 지난 12~14일 사흘간 이 대학을 현장 조사했다. ‘강의할 교수가 없어 졸업 이수 학점을 채우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제보가 다수 들어왔기 때문이다. 조만간 본격적인 감사를 할 예정이다. 학사 운영이 파행이라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면 강제 폐쇄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 현행법상 교육부는 경영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정상적인 학사운영이 불가능한 경우 폐쇄를 명령할 수 있다. 2000년 이후 이런 식으로 폐교한 4년제 일반대는 모두 6곳. 최근에는 지난 2018년 2월 대구외대·서남대·한중대가 나란히 문을 닫았다. 이 대학들은 한국국제대와 마찬가지로 경영진 비리로 교육부에서 부실 대학 철퇴를 맞고 학령인구 감소의 타격까지 덮친 경우다.
한국국제대 사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작년 기준으로 입학생이 50명도 안 되는 대학은 11곳. 교직원 임금을 체불했거나, 여유 자금으로 운영 손실을 보전할 수 없어 교육부가 재정 한계에 도달했다고 추정하는 대학은 32곳(2021년 결산 기준)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경영 비리 같은 내부 문제가 없더라도, 학령인구 급감과 지방에 있다는 외부 환경만으로 폐교로 내몰리는 대학이 많아질 것”(홍덕률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이라고 본다. 교육부 관계자는 “작년 국회에 발의된 사립대구조개선법이 통과되면 학생에게 피해가 닿기 전 사립대 재정 진단을 실시하고 회생 컨설팅 혹은 선제적 폐쇄 명령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직원이 둘밖에 남지 않은 한국국제대 교무처 사무실엔 “내가 낸 등록금이 교수 인건비로 제대로 집행되는지 보자”며 찾아온 학부형들이 오후 내내 지키고 있었다. 모교라서, 청춘을 바친 첫 직장이라서, 책임져야 할 학생들이 남아서. 갖가지 이유로 개점 휴업한 대학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 길, 정문 앞 누렇게 바랜 캠퍼스맵 아래 적힌 글귀가 비에 젖고 있었다. ‘이 시대 최고의 주인공을 길러내겠습니다. 한국국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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