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상준]나라마저 늙는 건 더 슬픈 일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2023. 4. 29. 03:00
日고령사회 쓸쓸한 풍경, 한국도 머지않아
노인 건강-부양 문제, 국가 차원 계획 필요
간병로봇 등 요양 비용 줄일 방안 고민해야
노인 건강-부양 문제, 국가 차원 계획 필요
간병로봇 등 요양 비용 줄일 방안 고민해야
일본의 수도인 도쿄도에는 23구와 26개의 시가 있다. 23구 중 하나인 신주쿠구에 도청이 위치해 있다. 신주쿠구에서 15년을 살았는데, 좀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어서 한 달 전에 26개 시 중 하나로 이사했다. 도심에서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교통편도 그리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공원이 많아서 쾌적한 곳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주민자치회라는 것이 있어서 이사 첫날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새집에도 동네에도 아주 만족했다. 그런데 며칠 뒤 퇴근이 늦어서 오후 9시경에 전철역에 도착했는데, 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무서워서 혼이 났다. 10여 분 넘게 사람이 없는 길을 나 혼자 걸어야 했다. 겨우 9시였는데 그리고 대단지 아파트가 연이어 있고 그 아파트마다 불은 켜져 있는데, 길에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곳은 범죄율이 매우 낮은, 강력범죄가 거의 없는 동네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에게 밤에는 절대 혼자서 밖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동네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은 오래전 일이다. 버블기에 도심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면서 도심에서 탈출한 인구가 몰려들었고 베드타운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도심의 집값이 떨어지고 직장인이 도심으로 회귀하자 그 동네는 아이를 양육하는 젊은 부모와 은퇴한 노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인구가 늘어날 때 보육원과 초등학교가 많이 들어섰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다. 공원이 많고 깨끗해서 노인이 살기에도 좋은 곳이다.
그렇다 보니 낮에는 아이와 노인을 많이 볼 수 있지만 밤에는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후 9시면 아이를 가진 가정에도 80대 노인에게도 나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사람이 없으면 무섭기 때문에 40, 50대도 밤에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가게를 열 일도 없고 연 가게가 없으니 더욱 나갈 일이 없다. 그나마 이 동네는 아이들이 있어서 사정이 낫다. 아이마저 없는 과거의 베드타운에서는 이제 하나둘씩 빈집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사 첫날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자치회 분들도 모두 내 부모님 세대의 노인들이었다.
내 아버지는 여든에도 혈압과 혈당치가 정상일 정도로 무척 건강한 분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아버지는 점점 쇠약해졌고 나는 고통스럽게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나마 대한민국이 부유해진 것이 나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30년 가까이 나라로부터 연금을 받았다. 요양보호사 제도도 말년의 아버지와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혜택이 없었다면’ 하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해진다.
나도 언젠가는 내 아버지처럼 80대 노인이 될 것이다. 그때 내가 살 한국의 동네는, 지금 일본에서 살고 있는 동네의 풍경보다 더 쓸쓸할 것이다. 그곳에는 어린아이들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대한민국은 세상에서 가장 고령화된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을 부양하는 것이 힘에 벅차 불평을 늘어놓는 젊은이들을 보며 노쇠한 나는 더 위축될지도 모른다. 나는 꼬박꼬박 연금을 붓고 있지만, 그 곳간이 제대로 지켜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늘 한국의 기업을 응원한다. 그들이 더 성장하고 더 많은 법인세를 내고, 더 많이 고용하고 더 많은 월급을 줘서, 기업에 고용된 이들이 더 많은 소득세를 낼 수 있기를. 그래야 내 노후가 그나마 편해질 것이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많이들 애를 쓰고 있지만, 지금 출생률이 높아진다고 해도 내 세대를 부양할 미래의 직장인 인구는 이미 쪼그라진 상태다. 그래서 걱정이다.
나는 나대로 건강과 노후의 경제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나라 전체로도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으면 좋겠다. 돈을 써서 하는 노인 복지도 필요하지만, 돈을 절약하는 노인 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노인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 요양에 드는 예산도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미리미리 간병 로봇 등에 투자해서 장기적으로 간병과 요양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애를 쓰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늙지만 나라는 늙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늙는데 나라마저 늙는 것은 더 슬픈 일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주민자치회라는 것이 있어서 이사 첫날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새집에도 동네에도 아주 만족했다. 그런데 며칠 뒤 퇴근이 늦어서 오후 9시경에 전철역에 도착했는데, 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무서워서 혼이 났다. 10여 분 넘게 사람이 없는 길을 나 혼자 걸어야 했다. 겨우 9시였는데 그리고 대단지 아파트가 연이어 있고 그 아파트마다 불은 켜져 있는데, 길에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곳은 범죄율이 매우 낮은, 강력범죄가 거의 없는 동네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에게 밤에는 절대 혼자서 밖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동네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은 오래전 일이다. 버블기에 도심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면서 도심에서 탈출한 인구가 몰려들었고 베드타운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도심의 집값이 떨어지고 직장인이 도심으로 회귀하자 그 동네는 아이를 양육하는 젊은 부모와 은퇴한 노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인구가 늘어날 때 보육원과 초등학교가 많이 들어섰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다. 공원이 많고 깨끗해서 노인이 살기에도 좋은 곳이다.
그렇다 보니 낮에는 아이와 노인을 많이 볼 수 있지만 밤에는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후 9시면 아이를 가진 가정에도 80대 노인에게도 나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사람이 없으면 무섭기 때문에 40, 50대도 밤에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가게를 열 일도 없고 연 가게가 없으니 더욱 나갈 일이 없다. 그나마 이 동네는 아이들이 있어서 사정이 낫다. 아이마저 없는 과거의 베드타운에서는 이제 하나둘씩 빈집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사 첫날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자치회 분들도 모두 내 부모님 세대의 노인들이었다.
내 아버지는 여든에도 혈압과 혈당치가 정상일 정도로 무척 건강한 분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아버지는 점점 쇠약해졌고 나는 고통스럽게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나마 대한민국이 부유해진 것이 나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30년 가까이 나라로부터 연금을 받았다. 요양보호사 제도도 말년의 아버지와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혜택이 없었다면’ 하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해진다.
나도 언젠가는 내 아버지처럼 80대 노인이 될 것이다. 그때 내가 살 한국의 동네는, 지금 일본에서 살고 있는 동네의 풍경보다 더 쓸쓸할 것이다. 그곳에는 어린아이들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대한민국은 세상에서 가장 고령화된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을 부양하는 것이 힘에 벅차 불평을 늘어놓는 젊은이들을 보며 노쇠한 나는 더 위축될지도 모른다. 나는 꼬박꼬박 연금을 붓고 있지만, 그 곳간이 제대로 지켜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늘 한국의 기업을 응원한다. 그들이 더 성장하고 더 많은 법인세를 내고, 더 많이 고용하고 더 많은 월급을 줘서, 기업에 고용된 이들이 더 많은 소득세를 낼 수 있기를. 그래야 내 노후가 그나마 편해질 것이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많이들 애를 쓰고 있지만, 지금 출생률이 높아진다고 해도 내 세대를 부양할 미래의 직장인 인구는 이미 쪼그라진 상태다. 그래서 걱정이다.
나는 나대로 건강과 노후의 경제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나라 전체로도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으면 좋겠다. 돈을 써서 하는 노인 복지도 필요하지만, 돈을 절약하는 노인 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노인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 요양에 드는 예산도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미리미리 간병 로봇 등에 투자해서 장기적으로 간병과 요양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애를 쓰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늙지만 나라는 늙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늙는데 나라마저 늙는 것은 더 슬픈 일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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