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식사했어요?”… 요즘 초등학생은 회사원처럼 경어 씁니다
초등학생, 왜 경어 사용하나
“○○님, ㅁㅁ아파트 1단지에 살죠? 아침에 학교 같이 갈래요?”
“좋아요, △△님. 우리 몇 시에 만날까요?”
썸 타는 청춘 대학생들이나 나눌 법한 정중한 대화, 요즘 초등학교 학생 무리 사이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학생들이 서로 존댓말을 쓰고, 또래 친구를 부를 때 이름 뒤에 ‘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도록 학교에서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 ‘님’ 호칭은 10여 년 전부터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평적 조직 문화를 위해 시작했는데 최근엔 학생 언어 순화를 위한 교육 차원으로 초등학교에까지 확산된 것이다.
학생들이 친구들을 향해 ‘○○야’라고 부르거나 반말을 사용하면 교사가 학생에게 벌점을 주는 초등학교도 생기고 있다. 초등 3학년 아들을 둔 김용수씨는 “지난달 학부모 공개 수업 때 아들이 옆 친구에게 ‘지우개 빌려줄래요’라고 하는 걸 봤는데 집에서 부모한테 반말을 하던 모습과 달라 놀랐다”며 “친구들에게 ‘야, 너’라고 부르거나 가끔은 가벼운 욕설을 했던 내 학창 시절과 너무 달라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했다.
초등학생들의 경어 사용은 최근 4~5년 사이 크게 늘고 있다. 학생, 교사 모든 구성원이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큼은 높임말을 쓰는 게 원칙이다. 아직 한국에선 낯선 풍경이지만 이런 시도는 꽤 오래 전부터 있었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2019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애국계몽단체 계명구락부를 설립한 국어학자 박승빈(1880~1943)이 1921년 조선총독부 학무국과 보통학교 교장에게 아동 상호 간 경어를 사용을 건의한 게 그 시작이다.
박승빈은 신분제가 폐지된 이후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동등하게 쓸 수 있는 ‘씨’와 ‘당신’이라는 호칭, 표현 사용을 처음 제안한 인물이다. 그는 어린이 경어 사용에 대해 “아이들이 자존감을 함양할 수 있고 사교에도 좋다”고 했다. 이후 방정환이 1923년 첫 어린이날을 맞아 언론에 발표한 선전문에도 어린이 상호 간 경어를 쓰자는 주장이 담겼다. 실제 당시 서울 보통학교에서는 경어 사용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광복 이후 끊기다시피 했지만 100년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최근 ‘학폭’ 논란은 초등학생 경어 사용 운동을 다시 불러왔다. 학교 폭력 경험 연령이 낮아지면서 경어를 사용하게 하는 초등학교가 크게 늘어난 것. 학부모들은 학생 사이에 싸움이나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들었다며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초등생 학부모는 “애들이 평소 ‘씨○’ 욕설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는데 경어를 쓰기 시작한 뒤로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신지영 교수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은 높임말을 하려면 우선 상대를 부르는 호칭부터 달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너무 이른 나이의 학생들에게 높임말 사용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경어를 쓰다가 놀이터에서는 바로 친구들에게 반말을 한다”며 “집에선 반말을, 학교에서는 경어를 쓰는 ‘이중 생활’을 하는 셈”이라고 했다. 서울 어느 초등학교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며 “무작정 경어만 쓰게 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르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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