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잘난 척 말고 쉬운 단어로” 영어 연설 부정관사도 직접 고쳐
“잘난 척하지 말고 쉬운 단어로 갑시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을 준비하며 참모들에게 가장 처음 했던 말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순방 전 영어 연설 초안을 보고받고 이같이 말한 뒤 “중학교만 졸업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써야 한다”며 초안을 다시 돌려보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전담 통역사인 김원집 외교부 사무관도 언급하며 “김 사무관이 통역하듯 쉽게 부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28일 통화에서 “미국 국민에게 한·미동맹 70주년의 역사와 미래를 직접 전하는 것인 만큼 윤 대통령이 표현 하나하나를 세심히 살펴봤다”고 전했다.
그렇게 공을 들여 준비한 지난 27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은 상·하원 의원들로부터 56차례의 박수갈채를 끌어냈다. 이날 연설에서는 구한말 미국 선교사에서 시작해 6·25전쟁 영웅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꿈, 한·미동맹의 미래로 이어지는 전개뿐 아니라 윤 대통령이 처음 공개한 영어 실력과 즉흥 애드리브도 주목을 받았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을 만난 미 의원들이 ‘역사적인 연설’이란 찬사를 보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영어 연설’을 택한 계기로 1998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을 들었다. 당시 DJ는 한국어로 연설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영어 연설을 택했고 “내 생명의 은인은 미국”이라며 자신에 대한 미 의회의 불신을 깨뜨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미국 시민과 영어로 직접 소통하겠다는 DJ의 의지를 당시 미국에서 높이 평가했다”며 “윤 대통령은 이런 사례를 보고받은 뒤 흔쾌히 영어 연설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미국 국빈 방문의 백미라 불릴 연설이었기에 윤 대통령은 출국 전 참모들과 10차례 이상 연설문 독회를 했다. 연설문 준비 과정에선 문법적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의 한 참모는 “부정관사 ‘a’가 잘못 들어간 부분을 윤 대통령이 직접 고쳤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참모조차 윤 대통령의 실제 영어 발음을 들어본 적이 없다 보니 첫 리허설이 끝난 뒤엔 “발음이 생각보다 굉장히 좋다”는 반응도 나왔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영어 연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고의 명연설가로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을 꼽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이번 연설문에도 케네디 전 대통령의 취임사 중 한 부분인 “우리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마십시오. 인류의 자유를 위해 우리가 힘을 모아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물으십시오”라는 대목이 들어갔다. 윤 대통령은 이를 언급하며 국제사회의 자유를 위한 대한민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신냉전이 가속화되는 현재의 국제정세가 과거 케네디 전 대통령 시대와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
원고에 없던 ‘국제시장’ 꺼내 K컬처 홍보
이처럼 달라진 한국의 문화 위상을 드러내듯 이날 포럼엔 MPA 회장단과 파라마운트·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NBC유니버설·소니픽쳐스·월트디즈니·넷플릭스 리더들이 총출동했다. 한국에선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 정경문 SLL 대표·박태훈 왓챠 대표 등이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한·미 양국이 전 세계 문화 시장에서 함께 리더십을 발휘해 나갈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찰스 리브킨 MPA 회장은 인기 영화 ‘블랙 팬서’ 감독과 주인공이었던 고 채드윅 보스만의 사인이 담긴 포스터를 선물했고, 윤 대통령은 “포스터를 대통령실에 걸어두고 영상 콘텐트 산업 진흥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화답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