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잘난 척 말고 쉬운 단어로” 영어 연설 부정관사도 직접 고쳐

박태인.김은지 2023. 4. 29.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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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하지 말고 쉬운 단어로 갑시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을 준비하며 참모들에게 가장 처음 했던 말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순방 전 영어 연설 초안을 보고받고 이같이 말한 뒤 “중학교만 졸업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써야 한다”며 초안을 다시 돌려보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전담 통역사인 김원집 외교부 사무관도 언급하며 “김 사무관이 통역하듯 쉽게 부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28일 통화에서 “미국 국민에게 한·미동맹 70주년의 역사와 미래를 직접 전하는 것인 만큼 윤 대통령이 표현 하나하나를 세심히 살펴봤다”고 전했다.

그렇게 공을 들여 준비한 지난 27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은 상·하원 의원들로부터 56차례의 박수갈채를 끌어냈다. 이날 연설에서는 구한말 미국 선교사에서 시작해 6·25전쟁 영웅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꿈, 한·미동맹의 미래로 이어지는 전개뿐 아니라 윤 대통령이 처음 공개한 영어 실력과 즉흥 애드리브도 주목을 받았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을 만난 미 의원들이 ‘역사적인 연설’이란 찬사를 보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영어 연설’을 택한 계기로 1998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을 들었다. 당시 DJ는 한국어로 연설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영어 연설을 택했고 “내 생명의 은인은 미국”이라며 자신에 대한 미 의회의 불신을 깨뜨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미국 시민과 영어로 직접 소통하겠다는 DJ의 의지를 당시 미국에서 높이 평가했다”며 “윤 대통령은 이런 사례를 보고받은 뒤 흔쾌히 영어 연설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미국 국빈 방문의 백미라 불릴 연설이었기에 윤 대통령은 출국 전 참모들과 10차례 이상 연설문 독회를 했다. 연설문 준비 과정에선 문법적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의 한 참모는 “부정관사 ‘a’가 잘못 들어간 부분을 윤 대통령이 직접 고쳤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참모조차 윤 대통령의 실제 영어 발음을 들어본 적이 없다 보니 첫 리허설이 끝난 뒤엔 “발음이 생각보다 굉장히 좋다”는 반응도 나왔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영어 연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고의 명연설가로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을 꼽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이번 연설문에도 케네디 전 대통령의 취임사 중 한 부분인 “우리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마십시오. 인류의 자유를 위해 우리가 힘을 모아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물으십시오”라는 대목이 들어갔다. 윤 대통령은 이를 언급하며 국제사회의 자유를 위한 대한민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신냉전이 가속화되는 현재의 국제정세가 과거 케네디 전 대통령 시대와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고에 없던 ‘국제시장’ 꺼내 K컬처 홍보

윤석열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글로벌 영상 콘텐트 리더십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혹시 한국의 유명한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27일(현지시간) 워싱턴 마지막 일정으로 미국영화협회(MPA)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원고에 없던 ‘국제시장’ 얘기를 꺼내며 한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MPA가 공동 주최한 ‘글로벌 영상 콘텐트 리더십 포럼’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은 한·미동맹이 성립되기 직전의 한국 상황”이라며 “이젠 경제만 성장한 게 아니라 한국의 문화도 굉장히 많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달라진 한국의 문화 위상을 드러내듯 이날 포럼엔 MPA 회장단과 파라마운트·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NBC유니버설·소니픽쳐스·월트디즈니·넷플릭스 리더들이 총출동했다. 한국에선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 정경문 SLL 대표·박태훈 왓챠 대표 등이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한·미 양국이 전 세계 문화 시장에서 함께 리더십을 발휘해 나갈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찰스 리브킨 MPA 회장은 인기 영화 ‘블랙 팬서’ 감독과 주인공이었던 고 채드윅 보스만의 사인이 담긴 포스터를 선물했고, 윤 대통령은 “포스터를 대통령실에 걸어두고 영상 콘텐트 산업 진흥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화답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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