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만 50건…IRA·반도체법 한국 기업 부담 줄이기로
윤 대통령 국빈 방미, 경제부문 성과
다른 산업 분야에선 반도체뿐 아니라 항공·로봇·사이버보안 등의 R&D 협력을 약속했다. 특히 에너지 분야 성과가 눈에 띈다. 최근 한국이 수출에 사활을 건 소형모듈원전(SMR) 관련 미국 내 3대 기업으로 꼽히는 테라파워·홀텍·뉴스케일파워와 모두 MOU를 체결하면서 해외 SMR 시장 개척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SMR은 기존 원전보다 경제성과 안전성이 뛰어나 에너지 분야 차세대 먹거리로 꼽힌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수력원자력과 SK이노베이션·두산에너빌리티·현대건설 등이 SMR 사업 확대와 수출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며 “미국의 기술력과 한국의 제조 역량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들이 MOU를 체결하는 사이,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SA)에 따른 한국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는 데 합의했다. 자국 산업 보호와 자국 중심의 공급망 강화에 중점을 둔 IRA와 CSA가 교역국인 한국엔 걸림돌이 된다는 국내 산업계 우려 및 전문가들 지적에 따른 것이다. 최 수석은 “양 정상 간에 한국 기업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여준다는 방향에 대해서 명확하게 합의했다”며 “바이든 대통령 역시 이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최 수석은 “이런 지침을 토대로 우리 산업통상자원부와 미국 상무부가 한·미 장관급 공급망·산업대화(SCCD)를 통해 기업 투자의 불확실성과 경영 부담을 최소화하기로 합의했다”면서 “그다음에 반도체 수출 통제 이행 과정에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저해를 최소화하고 반도체 신기술 개발을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외에 넷플릭스 등 8개 기업이 한국에 대한 59억 달러(약 7조9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26일 머스크 CEO와 만나 “입지와 인력, 세제 등 분야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며 테슬라의 기가팩토리(생산 공장)를 한국에 지을 것을 제안했다. 이에 머스크 CEO는 “한국은 기가팩토리를 세울 최우선 후보국 중 하나”라고 화답했다. 김대호 세한대 특임교수는 “테슬라가 한국에 기가팩토리를 만들면 국내 각종 첨단 산업과 연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수출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반면, 미국에 대한 비중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이번 국빈 방미 성과를 잘 살려야 한다고 분석한다. 김현겸 KB증권 연구원은 “한·미 간 첨단기술 동맹의 강화라는 의미가 있다”며 “우리가 강점을 가진 반도체와 배터리 등 분야의 투자 확대를 무기 삼아 원천기술이 부족한 바이오·우주·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협력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미국에서 한국 기업들의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서 대미(對美) 수출액이 지속해서 증가, 2020년대 후반엔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선 이번 국빈 방미에 따른 경제 분야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아쉬움도 제기 중이다. 익명을 원한 기업인은 “IRA와 CSA 관련 (양 정상 간) 합의에서 우리 기업들에 대한 예외조항 설정 또는 적용 기간 유예 등 실효성을 담보로 한 구체적 내용은 빠져 실망스러웠다”고 전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도 “IRA와 CSA에서 명문화된 추가 조치를 도출하지 못해 아쉽다”고 논평했다. 강대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8개 기업 59억 달러라는 투자 유치 규모도 한국 기업들의 기대치나 대미 투자액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이번 국빈 방미에서 정치·외교적으로 크게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중국이 경제 분야에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외교와 안보 쪽에선 성과가 컸지만, 경제 분야에선 반도체·배터리 등에서 중국이 의미 있고 새롭게 받아들일 만한 협력 내용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전 소장은 “중국이 자국 내에서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을 제재할 경우, 한국 기업들은 잘 달래서 (마이크론 이탈에 따른) 공급량 부족을 메워야 하는 상황이라 섣불리 한국 기업을 향해 제재 칼날을 들이대진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현정·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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