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연금술사' 의약화학자들의 신약 개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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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을 개발하는 화학자들은 분자를 조각하는 현대의 연금술사들이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피에타상을 조각하는 것처럼 분자 조각가들은 화합물에 탄소, 수소, 산소 같은 원자를 붙이거나 제거하고, 커다란 분자를 연결해 형태를 만든다.
하지만 분자 조각가들의 최종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조각한 화합물이 나쁜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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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 조각가들/백승만 지음/해나무/1만8500원
초기 화학자들은 우연에 기대거나 동식물에서 영감을 얻어 신약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해열진통제의 대명사 타이레놀의 선조 격 의약품인 ‘아세트아닐라이드’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조제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잘못된 약물이 전달되면서 해열 효과가 발견됐다. 아세트아닐라이드를 발전시킨 ‘4-아세트아미노페놀’은 뛰어난 해열진통 효과에도 불구하고 개발 당시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견돼 약이 되지 못했다. 나중에 부작용이 발견된 실험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타이레놀이 탄생했다.
현재 전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삭센다로’의 경우 미국 남서부 사막 지대에 서식하는 아메리카독도마뱀의 호르몬 연구에서 비롯됐다. 과학자들은 이 도마뱀이 특이한 혈당 조절 호르몬 덕에 사막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점에 주목하고 이 호르몬을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했다. 나아가 해당 호르몬이 소화관에도 작용해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준다는 점에 착안, 포만감을 늘려 살을 빼는 용도로 개량했다. 안전한 수면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개발돼 극과 극을 오간 탈리도마이드 이야기도 흥미롭다. 수면 효과와 진정 효과가 강했던 탈리도마이드는 입덧을 줄여주는 효과가 발견돼 많은 임산부가 복용했다. 이후 태아 기형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사용이 금지됐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 1만2000여명의 기형아가 태어난 뒤였다. 그런데 탈리도마이드는 현재 혈액암 치료제 등의 재료로 활용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신생아에게 기형을 유발하는 작용 기전을 역으로 이용해 악명 높은 다발 골수종을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된 것이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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